추억이 있어 더 아름다운 수원 이야기
우리는 그때 거기에 있었구나
2021-08-24 14:28:27최종 업데이트 : 2021-08-24 14:28:48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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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행기념관은 수원시민의 효 교육에 크게 기여했지만, 이용객이 많지 않아 어린이 미술 체험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수납장에 상자를 열어보니 앨범이 여러 권 있다. 오래된 시간의 무더기다. 정리되지 않은 앨범 사이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 본다. 순간 가슴을 마구 두드리는 이야기가 들린다.
서울에서 수원에 올 때 처음 들어서는 곳이 지지대 고개다. 그리고 좌측에 효행공원이 있다. 수원은 정조가 건설한 도시답게 그와 관련된 유적이 많다. 특히 정조대왕이 효를 실천한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효행공원은 정조의 효성을 추모하고 본받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효행기념관과 함께 정조대왕 동상이 있고, 노송이 있다. 효행기념관은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를 지금의 융건릉 자리로 옮긴 지 200주년에 맞춰 건립했다. 정조의 치적, 일대기 및 그의 효행과 화성 축성모형도 등 사료를 전시했다. 효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윤리 덕목이다. 그러나 효는 구체적 실상이 없어서 어린아이들에게 교육하기 어렵다. 기념관은 정조의 효심을 실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이곳에 자주 갔다. 주변 자연환경이 좋아서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고, 여기서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지금은 효행기념관이 없다. 시민이 찾지 않아서다. 어린이 미술 체험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수원을 효의 도시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는 지지대고개와 노송지대가 있다. 모두 정조의 효심이 깃든 유적지다. 효행기념관도 유적지와 잘 어울리는 시설물이었다. 주변 환경과 전혀 관련성이 없는 어린이 미술 체험관으로 바꾼 것은 이상하다. 미술 체험관이 필요했다면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 오히려 수원의 초입이라는 공간적 의미를 살리고, 정조의 효심을 상징하는 콘텐츠를 개발해 기념관을 발전시켜야 했다. 삼풍 농원은 연못, 야외예식장, 음식점이 있고, 꽃과 나무가 우거진 휴식공간이다. 수영장은 북수원 권의 시민들이 즐겨 찾는 최고의 놀이 공원이었다. 효행공원에도 노송이 있지만, 수원으로 들어오는 옛날 도로에 노송이 군락을 이룬다. 일명 노송지대라고 한다. 노송은 인자하고 근엄한 모습이다. 족히 수백 년은 넘었을 나이가 믿기지 않게 훤칠하고 멋들어진 노송들이다. 키가 큰 소나무들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것이 기품이 있다. 노송지대 앞에 삼풍 농원도 나무가 울창하다. 연못이 있고, 하천도 있다. 큰 잉어들이 놀고, 나무와 꽃들이 하천을 감싸고 있다. 건물은 서양식 성처럼 위풍당당하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봄에는 사람들이 꽃을 보러 더 많이 찾는다. 아름다운 정원은 수원을 더욱 유명하게 만드는데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포도, 딸기 등 농작물을 재배해 농원으로 출발했지만, 갈비를 먹는 고급 음식점이다. 음식점에는 자주 가지 못했다. 다행히 여기에 수영장이 있다. 그래서 여름에는 아이들과 함께 갔다. 야외에서 식사를 할 수 있고,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다. 수영장에 워낙 사람이 많아서, 어깨가 부딪히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마냥 즐거웠다. 해서 종일 놀았다. 지금은 물가에서도 두 시간을 넘기지 못하는데, 그때는 어떻게 가능했는지. 지나간 시간이 허무하다. 수영장은 여전히 영업한다. 무엇이든 빨리 변하고, 여차하면 헐어버리는 시대에 나이를 먹고 남아있다는 것이 대견하다. 이곳을 지나면 그때 가족끼리, 이웃과 함께하던 추억이 떠올라 좋다. 하지만 풍경은 예전 같지 않다. 농원 뒤에는 산이 웅장했었다. 영동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산이 다 잘려 나가고, 풍경도 사라졌다. 아쉬운 대목이다. 만석공원이 조성되기 전에 있던 스케이트장. 뒤에 정자초등학교와 동신아파트가 보인다. 가운데가 시민기자. 오른쪽 아들은 결혼해 딸을 두고 있고, 딸 아이도 작년에 결혼했다. 노송지대 길을 따라오면 만석거가 있다. 여기도 정조의 개혁 정책, 애민 정신이 깊게 들어있다. 정조는 수원 주변 농가의 가뭄에 대비한 구휼 대책과 수원화성 운영 재원 마련을 위해 만석거를 조성했다. 모인 물을 농업용수로 이용하여 대규모 농장인 대유둔을 설치해 풍요로움을 누리고자 했다.
만석거 저수지 옆에 스케이트장이 열린 때가 있다. 돈을 내고 썰매도 빌렸다. 겨울에 아이들과 얼음판에서 놀았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신이 나서 스케이트를 타던 기억이 난다. 앨범 메모에 보니 1994년 1월 몹시 추운 날이라고 쓰여 있다. 겨울이 추우므로 꺼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겨울도 나름대로 즐겁다. 눈이 와서 좋고, 얼음판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재미도 있다. 먹을거리도 많이 팔았다. 어린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군것질을 즐겼다. 떡볶이를 좋아하는데, 그때 떡볶이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석거 주변을 비롯해 정자동과 천천동은 온통 논밭이었다. 이곳에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개발로 인구가 폭증하고 수원이 대도시가 되는데 이바지했다. 대규모 개발은 시민에게 편의를 주지만, 아파트가 숲을 이뤄 개성 없는 동네로 변한다. 이런 모습에 주민들은 삭막한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자지구는 그렇지 않다. 옆에 저수지를 품고 있는 만석공원이 아름답다. 공원에 역사의 유적까지 있어 동네 품격도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 장안공원에서는 행사가 많았다. 그때마다 가족이 함께 갔다. 화성과 장안공원은 휴식 공간으로 지금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장안공원은 역사가 남긴 축복이다. 성벽이 팔을 넓게 뻗어 공원을 만들었다. 성벽이 바람도 막아주고, 때로는 부드럽게 흐르게 해 푸근한 공원이다. 사람들은 두툼한 녹색 풍경에 기대어 천천히 걷기도 하고, 삥 둘러앉아 놀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삶의 공간은 어쩔 수 없이 변한다. 장안공원은 화성 덕에 옛 모습 그대로다. 세월이 흘러 나무가 몸집이 커지면서 공원의 품위와 개성이 멋지게 변한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오래된 사진에도 변하지 않은 공간적 감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1994년 9월 10일 토요일이다. 아들 녀석이 수원성 그리기 대회에 참가했다. 그림을 일찍 그리고 아내와 녀석들이 한가롭게 지내고 있다. 공원에서는 백일장도 자주 열렸다. 그때 아들이 참가했는데 가족이 모두 동행했다. 행사 참석 후 공원에서 노는 재미가 있어 함께 갔다. 지금도 마음이 어지러울 때 공원 산책을 한다. 그러다가 성곽에 오른다. 어느 지역에서도 누릴 수 없는 힐링 풍경이다. 결혼하고 줄곧 수원에서 살았다. 그 덕에 수원에 얽힌 이야기와 사연은 화성 성벽의 돌만큼이나 많다. 옛날 삶이 그렇듯이 과거의 추억은 남루한 것도 많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온기가 있다. 그 따뜻함이 삶에 지칠 때마다 소박한 위로를 준다. 사람들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 부를 좇는 경우가 많다. 수원에서 오래 살다 보니 과거 추억이 늘 곁에 있다. 그때의 시간이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흘러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특별히 열중하지 않아도 늘 마음이 부유하다. 누구도 부럽지 않은 재산을 지니고 사는 셈이다. 효행기념관, 노송지대, 지지대고개, 삼풍농원, 장안공원, 화성, 만석공원, 윤재열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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