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해가 떠오르는 땅…소아시아 ② 빛나는 유산
2024-11-21 09:36:27최종 업데이트 : 2024-11-21 09:00:03 작성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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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알렉산더에 의해 서방에 알려지기 시작한 아나톨리아 지방은 고대 문명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인류 최초로 철기 시대를 연 히타이트의 본거지였다. 이곳에는 고대와 중세 인류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산도 즐비하다. ◇ 히타이트의 땅 아나톨리아 지금의 아나톨리아 지방은 히타이트 제국(BC 1700∼1200년)의 중심지였다. 아나톨리아를 지배한 히타이트는 인류 최초의 철기시대를 열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꽃피웠다. 청동기 시대에 머물렀던 메소포타미아 인근 국가와 이집트에 앞서 철기를 사용함으로써 이 지역을 평정할 수 있었다. 암석 기념물로 유명한 애플라툰 피나르피나르는 대표적인 히타이트 유산이다. 아나톨리아 남부 코냐 인근의 이 유적은 하늘과 땅의 관계를 암석으로 형상화한 유적지다.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거대한 석상 사이로 샘물이 샘솟도록 했고, 이후 그 물을 가둬 운동장 크기의 연못으로 만들었다. 히타이트 문명을 잘 알 수 있는 곳은 수도 앙카라에 세워진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이다. 이곳에 문명 박물관이 세워진 것은 앙카라가 인류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히타이트 제국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앙카라는 히타이트 이후 아나톨리아를 주름잡던 프리기아 왕국(BC 1200∼700년)의 수도였기도 했다. 문명박물관이 있던 곳은 오스만 시대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이 묵던 여관인 '쿠르순루 한'과 102개의 상점으로 이뤄진 '베데스텐'이라는 이름의 시장을 통합해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1466년 메메트 파샤의 명령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튀르키예의 국부 아타튀르크 대통령의 명령으로 박물관이 됐다. 아타튀르크 사후인 1938년 복원 작업이 시작돼 1968년 완공됐다. 이곳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아나톨리아 지역의 고대 문명 유물이 20만 점 이상 전시돼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히타이트시대 유물부터,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 시대, 오스만 튀르크 시대 문화재 등이다. 눈을 사로잡는 유물이 있었는데 '무탈루 왕의 석상'이다. 아슬란테페에서 발견된 이 석상은 프리기아 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무탈은 작은 지역의 왕으로 추정된다. 왼쪽 어깨를 덮고 있는 긴 드레스와 망토를 입고 있는 이 석상은 건물 3층 높이나 될 만큼 거대했다. 당시의 위세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그렇게 오래전 인류가 이런 정교한 석상을 다듬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 아피온의 카파도키아…아야지니 아피온에는 꼭 방문해야 할 유적지가 있다. 아야지니라는 이름의 마을이다. 동굴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생활하던 지역으로, 이곳에는 성모마리아 석굴교회가 있어 무척 흥미롭다. 석굴교회는 타포니현상으로 거대 암석에 공간이 생긴 것을 사람 손으로 다듬어 만든 곳이다. 마치 카파도키아의 축소판 같았다. 이곳은 1세기 기독교 태동기부터 예배하는 공간으로 쓰였으며, 10세기 무렵 이 동굴 내부를 파내 멋진 석조 교회로 만들었다. 인근에는 석굴 생활 공간들이 즐비하다. 해설사의 '인류 최초의 아파트'라는 코믹한 해석을 듣고 웃었지만, 어쩌면 아파트와 다름없는 공용거주 시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곳은 거주 시설로 쓰였지만, 또 다른 곳은 매장 공간으로도 활용됐다. 한 동굴 내부에는 모두 4구의 시신을 묻은 관 같은 공간이 보였다. 그 위에는 메두사의 표식이 있었다. 죽은 자가 되살아나길 막기 위한 부적이었을까. 마을 곳곳은 아기자기한 장식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곳 길가에서 파는 포도 몇송이를 사서 먹었는데 샤인 머스캣의 축소판 같은 포도는 무척이나 달고 맛있었다. ◇ 실레와 안디옥의 기독교 유적들 코냐 주변의 실레는 서기 1세기 사도 바오로의 순례지였다. 이곳에는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가 세운 성당이 있다. 덕분에 성지순례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헬레나는 327년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도중 이곳에 성당을 세웠고 이곳은 그의 이름을 따 '아야 엘리니'로 불린다. 한편 코냐 시내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기념 성당도 있어 교인들이 많이 들른다. 코냐와 아피온 사이에 있는 피시디아의 바오로 기념교회 터도 크리스트교 전파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기원전 290년경 조성된 교회는 터만 남아 있고 원형경기장과 수로가 남아 있다. 도시 서쪽에 있는 교회의 크기는 가로 70m에 세로 27m가량이며 바실리카 양식을 띠고 있다. 바오로는 이곳에서 설교를 통해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구세주가 바로 예수라고 설파했다. 그는 "유대인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면서 "이제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나톨리아의 자존심 울루 모스크, 그리고 차탈회위크 튀르키예의 5개 이슬람 사원이 지난해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번 일정에는 앙카라, 시브리히사르, 아피온카라히사르 등지의 사원 3곳을 둘러봤다. 이 모스크들의 특징은 돔형이 아니라 서양식 박공지붕 형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모두 내부가 목재로 장식돼 있다. 가장 처음 들른 앙카라에 있는 아슬란하네 카미 사원은 기둥과 천장이 모두 나무로 지어졌다. 다음으로 들렀던 튀르키예 중부 소도시 시브리히사르에 있는 울루 사원과 아피온의 울루 사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목재 건축물로, 내부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코냐 인근의 신석기 유적지 '차탈회위크'를 빠뜨리는 것은 왠지 아쉽다. 고고학에 큰 흥미가 없는 사람들은 따분한 곳으로 여겨지기 쉽겠지만 이곳은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선사유적지 가운데 하나다. 이곳에서는 8천500년 전 사람의 이빨에 구멍을 뚫어 장신구로 사용한 유물이 최근 발견되기도 했다. 1958년에 처음 발굴된 차탈회위크는 빙하시대가 끝난 뒤 수렵채집 문화에서 농경시대로 전환되면서 형성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13ha(약 4만평)에 걸쳐 21m 깊이로 형성된 이곳은 신석기 시대 주거지로 이용됐다. 진흙을 쌓아 슬라브식으로 만든 주거지는 동물과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출입구가 1층이 아닌 지붕에 있었다. 거주 공간에 죽은 가족의 시체를 파묻고 쓰레기 구덩이를 만들어놓는 등 위생 문제가 발생해, 당시 인류의 생존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오래 산 여성의 나이가 35살가량으로 추정된다고 해설사는 말했다. 이 지역에서 발굴된 유해 중 3분의 1이 뼈에 감염병 흔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imazine] 해가 떠오르는 땅…소아시아 ② 빛나는 유산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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