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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 ②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미식
2025-12-04 09:08:05최종 업데이트 : 2025-12-04 08:11:00 작성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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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먹고 마시는 일'이 곧 도시를 이해하는 방식이 된다. 이곳의 식탁에는 축구 영웅이 사랑하는 스테이크, 해발 1천400m 포도밭에서 생산된 '고고도' 와인이 나란히 놓인다. 아르헨티나의 미식은 맛에서 끝나지 않고, 한 도시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요소다. ◇ 메시가 사랑한 '돈 훌리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미식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꼭 경험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세계 최고의 스테이크'다.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를 비롯해 정·재계 인사들의 단골 레스토랑 '돈 훌리오'(Don Julio)는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수년 전 메시가 이곳에서 식사한다는 소식이 소셜미디어(SNS)로 전해지자 수백명의 팬들이 갑자기 식당 앞으로 몰려들어 야단법석이 난 적이 있었다. 돈 훌리오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경험'이다. 팔레르모 지구 중심에서 말베크 와인 잔을 손에 들고 그윽한 연기 향과 고기즙이 어우러진 스테이크를 맛보는 순간, 이곳이 '미슐랭'이나 '50 레스토랑' 등 세계 최상의 레스토랑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첫 번째 메뉴로 나온 '살치차 파리예라'는 소시지 본연의 향과 톡톡 씹히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다음 메뉴로, 와인과 함께 먹기 좋은 '몰레하스'가 나왔다. 몰레하스는 스페인을 통해 유럽에서 남미로 전해진 전통적인 '송아지 목샘 요리'로, 아르헨티나 아사도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료다. 한국에서는 따로 조리해 먹지 않는 부위로, 프렌치 정찬이나 고급 남미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다. 송아지 목샘은 가슴 부위에 있는 면역 기관으로, 어린 송아지에만 있고, 성장하면 퇴화하는 부위다. 이 요리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고소하게 완성돼 있었다. 지방이 잘 녹아내린 덕분에 와인과도 잘 어울려, 처음 접한 필자에게 무척 강렬한 인상을 남겨줬다. 주메뉴인 꽃등심을 활용한 '스파이널리스 스테이크'는 진한 풍미가 매력적이었다. 마지막 디저트로 나온 파타고니아 산 벌꿀과 특제 치즈는 예상 밖의 신선함을 남겼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1천400m 안데스 고지대에서 자란 포도로 만들어진 '에스페란토 아 로스 바르바로스'(Esperando a los Barbaros) 와인이었다. 석회질과 자갈이 섞인 토양이 빚어낸 선명한 산도와 미네랄 감이 특징이다. 낮에는 강렬한 일사량을 받고,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고고도 특유의 기후 덕분에 과실 농도는 응축되고, 구조감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 와인은 오크 향으로 맛을 덮기보다, 포도밭의 고도·바람·토양을 그대로 병 속에 옮기는 데 집중했다. 아사도(숯불 소고기)와의 조합은 거의 정답에 가깝다. 고기가 지닌 지방과 감칠맛을, 높은 고도에서 온 또렷한 산도가 끌어올리고, 미세한 미네랄 감이 입안을 정리해준다. 한 모금 후 다시 고기를 집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직화로만 요리한다 '네스'의 신개념 요리 누녜스 지구에 자리한 레스토랑 '네스'(NESS)는 최근 현지 미식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으로 떠오른 곳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곳의 모든 요리는 숯불을 이용한 직화(直火)로만 조리된다. 이 식당은 아르헨티나 전통의 '아사도'(숯불구이) 정신을 해산물과 채소, 곡물까지 확장했다. 주방에는 전기·가스레인지가 없고, 나무 장작·숯·화덕·그릴이 유일한 조리 도구다. 현지 언론들은 이곳을 두고 "불이 곧 조리법이며, 불맛이 곧 문화인 레스토랑"이라고 정의했다. 가장 인상적인 요리는 한 접시의 문어였다. 불 위에서 바로 구워낸 문어 다리는 겉면에 은은한 숯 향을 머금고 있었고, 속살은 탱글탱글하게 살아 있었다. 그 식감은 한국의 '돌문어 숙회'를 연상케 했고, 씹을수록 감칠맛이 응축됐다. 또 하나의 대표 요리는 화덕에서 껍데기째 구워낸 조개다. 불이 직접 조갯살에 닿으며 만들어낸 육즙과 은은한 스모크 향은 한국식 조개구이를 떠올리게 했다. 껍질 속에서 바다 향과 연기 향이 함께 살아 있었고, 담백하면서도 짭조름한 감칠맛이 한입에 퍼졌다. 이는 과한 양념 대신, 식재료 자체에 연기 향을 더한 아르헨티나만의 독특한 요리법이다. 직화에 익숙한 한국 손님이라면 '현지식이지만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 [imazine]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 ②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미식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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