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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 ④ 탱고로 느낀 남미
2025-12-11 08:54:43최종 업데이트 : 2025-12-11 08:00:10 작성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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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남미의 파리'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탱고 무희의 심장 박동과 땀 냄새, 그리고 애잔한 선율로 상징된다. 19세기 말, 항구 주변의 거리와 선술집에서 하층민·이민자·노동자들의 삶 속에서 태어난 탱고는 유럽 상류층 문화와 대중 예술로 확산하며 아르헨티나의 정체성이 됐다. 지금도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이 춤은 도심 곳곳의 밀롱가와 거리 공연에서 살아 숨 쉰다. ◇ 옛 산텔모 골목에서 마주한 '진짜 탱고' 밤에는 산텔모 구도심의 탱고 바 '바르 수르'(Bar Sur)를 찾았다. 1967년부터 전통적 탱고 쇼를 이어온 이곳은 현지 매체에서도 '가장 오래된 탱고 하우스 중 하나'로 소개된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저녁 식사를 한 뒤 테이블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탱고를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극장식 탱고 쇼의 경우 무대가 떨어져 있어 몰입도가 높지 않을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조도가 낮은 내부에 나무 탁자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고, 무대는 관객과 거의 맞닿아 있다. 관객 30명 남짓이 모인 소규모 공간은 숨결까지 맞닿는 밀도감이 가득했다. 본격적인 쇼가 펼쳐지기에 앞서 외국인 관객이 직접 무대에 올라 간단한 탱고 스텝을 배우는 시간도 있었다. 무대가 단순히 '공연'이 아니라 '문화의 현장'임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첫 장면에서 남녀 무용수가 손을 맞잡고 무대로 들어서는 순간, '탱고'는 시간을 찢고 현재로 흘러 들어왔다. 반도네온과 피아노 반주에 맞춰 무용수들은 정적과 폭발을 넘나드는 정열을 뿜어냈다. 때로는 그들의 춤사위가 내 머리 위를 훑고 지나가기도 했고, 그들의 땀 내음과 숨소리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열정적인 쇼가 끝난 뒤, 스태프가 건네준 포도주잔을 들고 건배하며 객석은 작은 축하의 자리가 됐다. 어둑한 조명 아래 벽에 걸린 창립자 사진과 1910년대 제작된 거울, 이 모든 것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탱고는 그저 춤이 아니라, '숨 쉬는 역사'였다. ◇ 탱고의 곡선을 닮은 '여인의 다리' 푸에르토 마데로 지구의 운하 옆, 하얀 돛대 하나가 우뚝 서 있는 다리가 있다. 스페인 출신 설계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푸엔테 데 라 무헤르'. 스페인어로 '여인의 다리'라는 뜻을 가졌다. 이른 아침, 강물 위로 떠 오른 여명과 함께 다리 아래 고요히 아르헨티나 군함 '코르베타 아라 우르과이호'를 개조한 박물관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주변 건물들의 불빛이 잔잔한 물결에 반사된다. 주말 오전부터 이 다리는 하나의 무대가 된다. 상아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이 다리의 중심부로 나와 탱고 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곡이 시작되자, 여인의 흰 치맛자락이 바람에 가볍게 날리고, 남성의 손끝이 허리선을 따라 미끄러진다. 음악에 이끌려 모여든 사람들은 박수로 호응하고, 스마트폰을 들어 순간을 기록한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각기 다른 언어와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남미 감성의 정점인 탱고 리듬으로 하나가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는 공연장이 아닌 거리에서 살아 있고, 여인의 다리는 그 무대가 된다. 가족 단위 여행자와 산책을 즐기는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사색에 잠기고, 젊은이들은 커피를 들고 여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 도시의 기억이 살아 있는 산텔모 시장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산텔모는 이 도시의 가장 오래된 지역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 귀족들의 주거 공간으로 개발됐던 이곳은 19세기 말 황열병 창궐로 한때 쇠락했으나, 20세기 중반부터 예술가와 장인, 음악가들이 다시 모여들며 되살아났다. 매주 일요일이면 이 지역의 중심가인 데펜사 거리는 '페리아 데 산텔모'라는 벼룩시장으로 변신한다. 오래된 잡지와 가죽 공예품, 빛바랜 시계와 축음기 레코드판, 한 세기를 버텨온 듯한 은제 커틀러리까지. 골동품을 비롯해 수공예품과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의 '시간'이 고객들을 기다린다. 때마침 골목에서 탱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남녀 여행자가 자연스레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연출도, 장치도 없는 이 장면 앞에서 지나가던 이들이 멈춘다. 이곳 사람들에겐 탱고가 과시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삶의 일부라는 게 느껴졌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imazine]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 ④ 탱고로 느낀 남미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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