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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수원뉴스 시민기자들 충무공의 흔적을 찾다
충렬사, 세병관, 동피랑 벽화골목 등을 돌아보다
2012-10-14 06:18:44최종 업데이트 : 2012-10-14 06:18:44 작성자 : 시민기자   하주성

e수원뉴스 시민기자들 충무공의 흔적을 찾다_1
e수원뉴스 시민기자들 충무공의 흔적을 찾다_1

e수원뉴스 시민기자들의 워크숍 이틀 째 일정은 오전에는 SNS 활용법과 사진촬영기법 등을 배운 후, 오후에는 빡센 일정으로 통영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을 모시는 충렬사로 부터 시작이 되었다. 

충렬사는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하는 마음과 위업을 만대에 전하기 위해, 제7대 통제사인 이운봉이 선조의 명을 받아 세운 후, 300여 년간 제향을 받들어 온 사당이다. 

시민기자들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해설사의 설명을 일일이 필기를 하는 등 열심을 보이기도 했다. 
두 번째의 답사지는 바로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 본영이 자리하고 있던 사적 제402호인 통제영지이다. 통제영지는 조선조 선조 37년인 1604년에 설치되어, 고종 32년인 1895년에 폐영이 될 때까지 3도(충청, 전라, 경상) 을 총 지휘한 관방유적이다.

e수원뉴스 시민기자들 충무공의 흔적을 찾다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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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쎈 일정 소화하느라 고생한 시민기자들 

13일의 일정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을 정도. 날씨마져 더운데, 몇 곳을 돌아보느라 상당히 지쳐있는 모습들도 보있다. 
통제영지는 한창 복원중이라 여기저기 공사를 하느라 부산하고, 국보 제305호인 세병관 주변도 온통 공사를 하느라고 중장비의 굉음 등으로 제대로 설명을 들을 수 없을 정도.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이곳으로 통제영을 옮긴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으로 지은 건물이다.

그 후 몇 차레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정면 9칸, 측면 5칸의 구조로 경복궁 경회루와 연수 진남관과 더불어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물 중에서는 가장 바닥면적이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통제영지 앞에 있는 향토사료관을 거쳐, 통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동피랑 벽화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동피랑보다는 지동이 좋아요"

e수원뉴스 시민기자들 충무공의 흔적을 찾다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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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지동에도 골목길 벽화그리기가 한창 진행 중에 있어, 개인적으로 동피랑의 벽화마을에 대해서는 딴 곳보다 유심히 살펴보았다. 
수원 지동의 벽화골목은 자원봉사자와 어린이, 그리고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조성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이곳은 전문적인 사람들이 일정액을 지원받고 그렸다는 것이다. 골목길마다 그려진 그림들은 상당히 재미있다. 

e수원뉴스 시민기자들 충무공의 흔적을 찾다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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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후들어 무리한 일정 때문인가? 제대로 따라오지를 못하고 조금씩 뒤쳐지는 시민기자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날이 더운데다가 빡센 일정이 원인이었는가 보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재래시장이었다. 
항구에는 조선시대 거북선을 그대로 조형물로 만들어 놓아 사람들이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게 이틀 째의 시민기자들의 바쁜 일정은 끝이났고, 세째날인 14일에는 한산도를 거쳐 귀가를 할 예정이다.

충렬사, 동피랑, 세병관, 재래시장, 무리한 일정, 탈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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