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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 재래시장으로 나들이 간 날
지동 시장, 미나리광 시장, 못골 시장으로 장 보러 오세요
2013-10-13 13:53:22최종 업데이트 : 2013-10-13 13:53:22 작성자 : 시민기자   홍승화
파란 가을 하늘에 따스한 온기가 더해진 10월은 나들이 가기에 딱 좋다. 아들 녀석이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해 반나절이 지나간다. 계획대로라면 정선의 민둥산을 오를 시간인데……. 남편은 떠나려던 발걸음이 아쉬운지 엉덩이를 내려놓지 못한다. 

아픈 아들 챙기랴, 뿔난 남편 눈치 보랴 나만 괜스레 바늘방석이다. 차선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남문 재래시장 나들이다. 우리 부부는 유독 재래시장 다니는 걸 좋아한다. 
북수원 살 때는 역전시장, 화서시장으로 장을 보러 다녔고, 동수원 사는 지금은 남문시장을 간다. 서울, 성남, 영천, 포항, 속초, 정선 등의 재래시장 골목길을 지치지 않고 돌던 여행의 추억도 있다. 

남문 재래시장으로 나들이 간 날_1
남문 재래시장으로 나들이 간 날_1
 
남편의 애마 스쿠터 뒤꽁무니에 올라탄다. 요리조리 샛길을 이용해 십 여 분만에 지동교에 도착한다. 지동교 위, 왼쪽으로는 대형 천막이, 오른쪽으로는 무대가 설치되어있다. 호기심이 생겨 천막 쪽으로 발길을 잡는다. 젊은 엄마들이 아이 손을 잡고 '추억의 달고나'를 만들고 있다. 
침 발라가며 조심조심 별모양을 만들다 십중팔구 실패하고, 혀끝에 남은 달짝지근한 맛으로 위로 받던 어릴 적 기억이 난다. 다른 천막에는 거울, 머리끈, 핀을 파는데 색깔이 곱다. 자투리 한복 천으로 만든 액세서리란다. 흰 머리카락 들킬라 조심스럽게 핀 하나를 머리에 꽂아본다. 

'추억의 만두집'옆으로 십여 명이 줄지어 서있다. 이 집의 팥 도넛은 정말 맛있다. 갓 튀겨 낸 따끈한 도넛을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찰진 반죽에 폭 쌓인 단팥이 스르르 녹아나온다. 쫄깃쫄깃 해 정말 맛있다고 하니, 달걀과 우유로 반죽을 한다고 귀띔해준 사장님. 내가 도넛 가게 차리면 어쩌시려고……. 

생선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 걷는다. 좁은 통로, 물기로 젖은 바닥이 불편하지만 온갖 생선들이 얼음 위에 누워 손님을 기다리는 공손한 모습이 재미있다. 수족관의 미꾸라지, 잉어, 메기가 파닥파닥 요동을 치며 싱싱함을 다툰다. 언제쯤 저런 것들을 손질해 먹을 용기가 생길런지. 

미나리 광시장에는 '살 테면 사고, 사기 싫으면 말던지.'하는 식의 걸걸한 말투로 배추, 무를 파는 할머니가 있는데 가게 문이 닫혀있다. 맞은 편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뻥튀기 가게가 있다. 웃는 얼굴이 선한 남편과 차돌같이 씩씩한 아내가 콤비를 이루어 가게를 운영한다. 서너 명의 손님이 앉아있다. 밤 담은 깡통이 여럿 놓여 있는 것을 보니 군밤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작년에 나도 밤 한 되를 튀겨 실컷 먹었는데. 

남문 재래시장으로 나들이 간 날_2
남문 재래시장으로 나들이 간 날_2
 
두부 가게를 끼고 왼쪽으로 돌면 못골 시장 골목이 나온다. 떡, 과일, 반찬, 채소, 도넛, 약초, 건어물, 생선, 정육점, 이불, 어묵. 게장……. 등이 손님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다. 
싱싱한 꽃게가 9마리에 만원. 갈치 한 상자에 만원. 떡 세 팩에 오천 원. 오이 8개에 2000원. 사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이 지천이다. 허기진 배를 먼저 채워야겠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단골 손칼국수 집으로 들어간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테이블마다 사람이 앉아 있다. 칼국수를 주문하니, 십 여분 만에 뚝딱 내 앞에 놓여진다. 두 그릇 값 7천원을 선불로 낸다. 멸치 육수로 끓인 국물이 시원하다. 국내산 김치는 셀프다. 세 접시 째 갖다 먹어도 눈치 주는 사람 없다. 

배가 꽉 차 오니, 장을 봐야겠다. 이 골목에서 가장 자주 가는 곳은 갖은 채소를 단정히 진열해 놓고 파는 가게다. 여사장은 공무원이나 복지사를 하면 딱 어울릴 것 같은 외모와 말투다. 
얼굴을 내밀면'뭘 찾으세요?'라고 속삭이듯 묻는다. 그러면 나도 '오이 주세요.'소곤소곤 대답한다. 걸쭉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달인의 포스가 느껴지는 옆 가게 족발 집 여사장과 비교된다. 그래도 손님은 많다. 톱밥에 덮여 있는 꽃게가 비좁은 상자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사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 살아있는 꽃게를 어떻게 죽여야 할지. 수돗물에 담그면 금방 죽는다는 사장님 말에 이만 원어치를 산다. 꽃게가 꿈틀댈 때마다 스으윽 스으윽 봉지 긁히는 소리가 난다. 

좌판의 고들빼기도 발길을 잡는다. 잘 익은 고들빼기김치에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수 있는데, 해본 적은 없다. 인터넷 검색하면 요리 방법이 세세하게 나올 테니 냉큼 사버린다. 할머니가 덤을 한 움큼 주며, 맛있게 담그면 막걸리 안주하게 가져오란다. 나도 그러고 싶다. 까놓은 쪽파도 한 뭉치 산다. 쪽파 산 김에 배추 세통을 산다. 양파, 붉은 고추도 필요하네....... 남편의 양손 가득 보따리가 매달려있다. 

남문 재래시장으로 나들이 간 날_3
남문 재래시장으로 나들이 간 날_3
 
재래시장이 왜 좋을까. 시장 골목에서 스치는 사람들 속에 억척스럽게 살아간 친할머니, 친정엄마, 시어머니가 있다. 다 팔아도 몇 만원 안 될 채소를 놓고,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는 상인들. 그곳엔 노동의 가치, 생물의 가치가 있다. 
돈 1천원도 소중하고, 천원어치 채소도 소중하다. 그래서 꼭 필요한 물건만 산다. 덩달아 나도 소중한 고객이 된다. 값을 흥정하거나, 덤을 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무 하나도 큰 것을 골라주는 상인의 후한 인심을 믿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이 활성화 되어, 인산인해를 이루는 시장 통을 누비고 다닐 그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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