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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VS ‘서울도성’..무엇이 다를까?
2013-10-14 16:31:54최종 업데이트 : 2013-10-14 16:31:54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과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흔히들 이야기하듯 그들의 경험은 우리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과거가 현재의 답을 모두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혜를 준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는 것을, 지나온 역사는 말해준다.

주말, 옛것을 탐색하러 500여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호)으로 향한다. 산림이 우겨진 가을, 트레킹하기에는 최고의 계절에, 2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수원화성(사적 제3호)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사단법인 화성연구회(이사장·이낙천) 회원들과 함께하는 '번개' 성곽비교답사다. 

'수원화성' VS '서울도성'..무엇이 다를까?_4
'수원화성' VS '서울도성'..무엇이 다를까?_4

고색창연한 빛으로 왕조의 얼을 품고 있는 곳, 한양도성이다. 도성의 으뜸 성문으로 꼽히는 숭례문 앞에서 답사는 시작됐다. 수원화성 전공자로서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으로 받고 있는 김준혁 박사가 안내에 나섰다. '순성(巡城)놀이를 통해 본 한양성곽, 수원화성 성곽과는 무엇이 다른가!'에 초점을 맞춘 답사다.

순성놀이가 뭐람?

요즘 지자체마다 최고의 힘을 기울이는 사업이 길(road)사업이다. 이른바 둘레길, 올레길, 산막이 옛길, 갈맷길 등 건강과 치유라는 화두로 전국방방곡곡에서 걷고 싶은 길을 조성해 관광객들을 서로 우리 마을로 끌어 모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순성놀이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 
조선후기 정조대의 학자 유득공(1749~1807)의 저서 '경도잡지(京都雜志)'에 나오는데, 하루 만에 한양도성의 안과 밖을 돌면서 멋있는 풍경을 구경하는 놀이다. 올레길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멋진 풍습은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일제가 도시계획이란 미명하에 성곽을 파괴하면서 그 유래는 끊어졌다.

그리고 다시, 서울시가 국가지정문화재인 한양도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끊어진 성곽을 복원하면서 옛것을 불러들인 것이 '순성놀이'다. 끊어진 길 7Km를 포함해 총 성곽 길은 18.6Km, 한 바퀴 도는데 대략 10시간이 걸린다. 단계별 코스를 선택해 걸어도 무방하다. 각각의 난이도나 풍광도 다르니 내가 마음에 드는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인왕제색도' 현장확인하고 수려한 성곽도 보고!

겸재 정선의 산수화로 유명한 '인왕제색도'를 만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루트는 '인왕코스'다. 당연히 수원화성과의 성곽비교가 핵심이니 편한 코스인 내성만 보는 것은 금물이다. 
숭례문에서 시작해 지금은 사라진 소의문 터와 돈의문 터를 지난 후 성곽으로 오르는 트레킹이다. 인왕산 정상에 올랐다가 북쪽 문 창의문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수원화성' VS '서울도성'..무엇이 다를까?_2
'수원화성' VS '서울도성'..무엇이 다를까?_2

1396년 한양성곽과 함께 축성된 4대문의 남쪽 문 '숭례문' 성벽부터 단절되어 있다. 이미 도심의 거대한 건물들이 꽉 들어차있으니 복원은 힘들 터이다. 시(市)의 자구책은 이를 상징하는 표석을 곳곳에 새겨놓는 것. 대궐이나 왕릉에서만 볼 수 있는 박석(薄石)을 깔기도 하고, 건물 사이사이로 성벽이 이어진다는 표시를 해놓는 등 약식으로 성벽복원중이다. 

흔적만을 찾는 여로, 정동길, 경교장을 지나 드디어 인왕산 자락으로 들어선다. 아, 저 위 거대하고도 단단한 위세를 당당히 보여주는 인왕산 바위군락 정상을 올려다보니 아찔하다. 그러나 오르는 길 성곽왼편 우거진 산림사이로 성벽이 얼핏얼핏 보이니 힘이 절로 솟는다. 
출발이다. 앞만 보고 가면 훨씬 수월하겠으나 한 치도 허투루 보지 않기 위해 마음을 바로 잡는다. 좌우와 뒤를 돌아보며 풍광을 한껏 마음에 담는다. 

긴 꼬리에 꼬리를 문 성곽능선이 비록 복원된 시간만큼 일지라도 북경의 만리장성을 연상시킬 만큼 유려한 미를 발산한다. 오가는 인파들 모두 헉헉거리는 들숨과 날숨이 지척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들의 낯빛을 보니 하나같이 건강미가 줄줄 흐른다. 인왕제색도를 상상하며 풍광을 즐긴 까닭일 테다. 
가쁜 호흡 끝에 드디어 정상이다. 서울이 한눈에 보인다. 경세가이자 문필가로서 한양도성을 설계한 삼봉 정도전을 생각하면서 남산을, 경복궁을, 그리고 청와대를 바라본다. 감동을 꾹꾹 누르고 답사의 종착지 자하문 쪽으로 나선다.

'수원화성' VS '서울도성'..무엇이 다를까?_3
'수원화성' VS '서울도성'..무엇이 다를까?_3

이제부터 성곽 밖이다. 성벽 안과는 또 다른 미(美)의 세계가 펼쳐지는 외성(外城) 길 탐색이다. 태조 때부터 500여년을 버틴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개축한 성돌은 매우 다른 색깔과 크기로서 확연이 구별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성벽과의 대화가 한동안 이어진다. 
우거진 잡풀과 꽃과 나무만 우리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인적이 드문 관계로 무척이나 난코스의 연속이다. 엄청 높은 곳은 철 계단으로, 미끄러운 곳은 밧줄을 잡고 엉금엉금, 온몸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성곽을 타고 흐르는 시간 속 여행에서 오는 기쁨이 더 크니, 이쯤 고통이야 문제가 될 수 없다. 켜켜이 쌓인 역사와 문화의 옛 소리는 창의문에 닿는 순간까지 붙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수원화성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성곽의 나라로 불릴 만큼 2천 여 개의 성터가 남아있다. 모두가 외침에 대비한 호국의 한 방편으로 축성됐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마을 안에 조성한 읍성들도 많고 자연 산세를 이용한 산성도 부지기수다. 또 수원화성처럼 읍성과 산성의 장점만을 골라 축성한 성곽도 있다. 

한양도성의 성곽은 크고 작은 산들과 지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었다. 당연히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동원해 지었을 게다. 그러나 14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의 시간이 흐르면서 끊임없이 증축과 복원을 거듭하면서 구간마다 확연히 구분될 만큼 가치차이가 도드라진다. 멋스러운 기술을 자랑하는 여장과 성돌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근래에 복원한 성벽은 지극히 인위적이라 미적 가치가 확 떨어진다. 그리고 성벽을 잇는 과정에 있어서 도저히 이을 수없는 현실의 벽 때문에 안타까움은 극에 달한다. 

'수원화성' VS '서울도성'..무엇이 다를까?_1
'수원화성' VS '서울도성'..무엇이 다를까?_1

반면 수원화성은 '성곽의 백미'라고 불릴 만큼 단 한곳도 아름답지 않는 곳이 없다. 물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인 '화성성역의궤'라는 기록문화가 남아있었기에 완벽한 복원이 가능했다. 
비록 팔달문 좌우로 도심을 관통하는 차들과 건물 때문에 성곽이 끊어져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완벽하게 이어져있다. 도성의 성돌 만큼의 연륜은 아니지만 220여 년 동안 온기를 간직한 채 세련미를 발산하는 건축물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성벽의 아우라며 소소한 누조까지 실용성을 가미한 미가 대단하다.

한양도성 성벽을 걸으며 생각했다. 문화재 복원에 있어서 더디더라도 천천히 가야한다는 것을. 조상들의 혜안 속에서 후대까지 물려줄 문화유산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것을. 
2008년 2월 화재로 소실된 지 5년 3개월 만에 복원한 남대문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단청이 벗겨지는 등 문제들이 드러나는 것을 볼 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얼마나 깊이 심사숙고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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