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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지리산에 올라보니
2012-08-07 12:29:20최종 업데이트 : 2012-08-07 12:29:20 작성자 : 시민기자   오선진

지리산 칠선계곡!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칠선계곡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오르고 싶은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다.
희귀한 산새들, 보기 드문 나무와 풀들, 살아서 백년 죽어서도 백년, 수백년 썩지 않는 고사목, 온갖 형태의 바위들, 넓고도 좁은 소(沼), 굽이쳐 흐르는 수 많은 물줄기와 폭포들, 험준한 등산로, 7시간은 걸어야 오를 수 있는 칠선계곡-천왕봉 코스가 우려내는 진풍경들이다.

주말에 혼자 지리산에 갔다. 오래전부터 작정해온 일을 결행한 것이다. 
지리산은 진정 광활하기 그지없다. 홀로 산행이라서 더 휑하다. 삼남을 껴안고 있는 거대한 산의 실체는 보이지 않고 군소 봉우리만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오를 수 있을까? 지리지리한 저 산을 왜 올라가야 하나." 스스로에게 자문하지만. 답을 얻기도 전에 산으로 가는 길을 찾는다. 

보통 지리산을 제대로 오르는 사람들은 2박3일 종주를 하거나 기본 9시간에서 12시간까지의 코스를 잡아 산행을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시민기자는 그정도 주제가 못되어 7시간 정도의 코스를 잡았다.
기념품 상점과 상점 사이로 나있는 조그만 길옆으로 들어선다. 그 앞에 '정상'이라는 팻말과 화살표를 보고도 근처의 주민들에게 묻는다. 단체 산행일 때에야 앞선 사람을 쫓아만 가면 되었던 일이 혼자일 때에는 사뭇 달라진다. 거듭 길을 확인하게 되고 그래도 미심쩍어서 주민들에게 확인질문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혼자 지리산에 올라보니_1
혼자 지리산에 올라보니_1

"이 길로 똑바로 가면 지리산 정상으로 오르는게 맞나요?"
길의 방향을 확인하고 난 뒤 공원관리소를 지나고 야영장을 지나자 비로소 본격 산길로 접어드는데 이마에서는 멀써 땀이 흘러내리면서 이내 숨이 찬다. 터벅터벅 발걸음은 무거워지기 시작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딛고 올라가면 산은 미동도 않고 가만히 받아 주기만 한다. 

다만 산속에서 울려오는 엄청난 진폭의 자연의 합창소리만 반겨줄 뿐이다. 계곡물은 바위를 치며 내달리고 때로는 낭떠러지를 만나 폭포가 되기도 한다. 계곡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면서 물소리가 온산을 뒤덮는다. 
풀벌레 소리가 협주곡의 선율처럼 물소리와 어울리며 매미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도심 가로수의 매미는 매~하고 극악스레 울지만 지리산 산속의 매미는 미~하고 청아하고 길게 운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교향곡 아니겠는가.

잠시전까지의 산길은 금방 험준한 절벽으로 변하고 가파른 절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어떻게 올라 갈 수 있을까?' 숨은 턱까지 차오르는데. 그래도 한발씩 오르노라면 절벽은 결국 오르게 된다. 
돌 틈 사이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샘물을 한 컵 받아 마시니 싸르르르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물의 전율을 느낀다. 맛이라면 이만큼 단맛이 또 있겠는가. 굴참나무 아래서 싸 들고 간 오이로 수분과 원기를 충전한다. 

산행이란 워낙 자연과의 일대일 대면이긴 하지만 홀로 산에 오를 때는 나무와 바위와 풀을 보는 마음이 좀 더 너그러워진다. 

다시 일어나 발걸음을 재촉한다. 앗, '반달곰 출몰지역'이 나타난다.
그러나 반달곰이 무서울게 아니라 먼발치에서라도 반달곰 그녀석을 한 번 보게 된다면 아마도 뜻밖의 횡재일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쫓아가 "어이구 반갑다, 내새끼. 우리 땅에서 잘 자라주어서 고마워 죽겠다 이녀석아!!"라며 볼따구니를 어루만져 주고 싶지만...

걷고 또 걷기를 반복하여 마폭포(마주본다 하여 마폭포, 마지막 폭포라 하여 마폭포)길에 다달았다.
말없는 바위에 흔적만 남기며 세월이 흐른만큼 물도 흘렀을 것이고, 물이 흘러 깊숙히 패인 물자국만큼 시간이 지나갔겠다. 마폭포의 물줄기를 두갈래로 흐르게 하는 돌과 나무가 마르고 닳아서 한줄기로 합쳐진다면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렇게 갈라지지 않고 늘 하나로 합쳐져 더 큰 에너지를 발할수 있을까?

산행을 마칠때쯤 허기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내겐 굶주림을 면할 요기꺼리 한조각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은 젊어서 그랬는지, 일찍 닿아서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그랬는지 하산길은 산악구보 하듯 달려서 내려왔다.

어둑어둑한 즈음에 산길에선 다람쥐 한 마리가 줄장미 덮힌 바윗틈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고, 하늘은 저녁 구름이 뒤덮고 있었다. 지리산의 산행길은 내 머리위에서 자유만만한 즐거움과 상상력을 남겨 주고 있었다.
산을 빙빙 돌며 독사진 남기기의 여유로움, 그리고 자연학습의 넉넉한 소득에 그 산을 다시 상상하면서도 또 그리워하고 있을 다음 산행까지의 기다림.
지리의 산죽도 그립고, 메마른 계곡도 반겨 안아 보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채 돌아왔다. 다음에 또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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