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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죽여야만 했을까?
영화‘킬러스’vs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2010-09-15 18:19:13최종 업데이트 : 2010-09-15 18:19:13 작성자 : 시민기자 최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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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왜 죽여야만 했을까? _1 현실에서 '인간'하면 지겹도록 듣는 말이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며 제일 강조하는 것도 '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현실에서 그렇게 강조하던 인간의 존엄성은 우습게도 사라진다. 칼부림 한 번에 사람의 목이 댕강 잘려나가고 총질 한 번에 피가 철철 흐르는 설정들. 사람의 목숨이 우습게 비춰지는 이런 설정들은 영화에서 어떤 장치로 등장하는 것일까? 역시나 '살인'이 소재인 두 영화 '킬러스'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하 김살전)을 통해 알아보자. 영화 '킬러스'와 '김살전'의 두 주인공 스펜서와 복남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스펜서는 전직 킬러였지만 첫눈에 반한 젠과 결혼하기 위해 킬러를 관두자 부유하고도 정착된 삶을 살게 되었다. 허나 복남은 30년이 넘도록 지옥 같은 섬 '무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시동생에겐 강간을, 남편에겐 폭력을 당하며 살아왔다. 스펜서는 정착하게 된 곳에서 새 직업도 얻고 새 이웃, 동료 그리고 친구를 만났지만, 복남은 온갖 핍박에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방관자와 무법자들의 세계, 무도를 탈피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각각 난데없는 '손님'이 찾아온다. 스펜서의 반갑지 않은 손님은 바로 킬러시절의 상사로부터 날아온 난데없는 엽서 한 장이었다. 스펜서는 그 엽서를 발단으로 전직 상사가 자신을 노릴 것이라는 생각에 긴장을 풀지 않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를 공격해온 건 그의 이웃, 동료 그리고 친구였다. 그의 목숨에 걸린 포상금에 눈이 멀어 킬러로 돌변하고만 것이었다. 그들을 죽여야 하는 스펜서는 잠시 고통스러워하지만 자신의 사랑과 소중한 것들을 위해 킬러의 본성을 되살린다. 반대로 복남에겐 너무나도 반가운 어린 시절의 단짝, 해원이 찾아왔다. 그동안 자신과 딸을 이 지옥으로부터 꺼내달라고 수십 통의 편지를 썼었는데, 드디어 만난 것이었다. 허나 해원은 돕기는커녕 서울여자의 특징이라도 된다는 듯 시크함 혹은 방관자의 객기를 부리며, 복남의 딸이 계부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외면했다. 그와 동시에 복남은 그동안 참아왔던 온갖 무시와 고난을 잔인한 복수로 표출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의 '살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나? 아마 두 영화 속에서 살인이란 하나의 정당방위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이기적인 방법 혹은 참고 억눌려왔던 고통의 타당한 분출구로써. 허나 킬러스의 '살인'은 오락적인 요소가 더 컸다. 물론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는 죽게 된 친구들에게 일말의 감정도 전혀 주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특성상 관객으로 하여금도 죽은 사람에 대한 연민이나 아쉬움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반대로 김살전의 경우에는 어느새 복남에게 완벽히 이입되어 살인을 당한 피해자 아닌 피해자들에게 진정 분노함과 동시에 그들의 죽음이 통쾌했다. 비록 살인이라는 '단어'는 이해도 납득도 해줄 수 없는 존재지만, 영화에서의 살인은 오락으로서 혹은 하나의 메세지 즉, '장치'로서 등장하는 순간 관객의 동의와 지지를 얻게 된다. 영화 속 살인이라는 소재에 대해 한번쯤 깊이 생각해보고 싶었다면 두 영화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아마 두 영화 모두 각각 다른 의미로서 당신을 '껌뻑 죽게' 만들 것이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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