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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가난하다고 말하지 마라
2011-01-27 01:27:15최종 업데이트 : 2011-01-27 01:27:15 작성자 : 시민기자   김동언

수원시 인계동에 위치한 수원청소년문화센터에는 한아름도서관이 있다. 
오늘 나는 도서관을 방문하여 김종래 저자의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이라는 책을 읽었다. 역사속의 인물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나서 징기스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전하려고 한다.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_2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_2


책을 통하여 진취적인 사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좌우명을 평생 칭기스칸은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땅을 정복하였을 때 작은 것에 만족하여 성을 쌓았다면 다른 외세의 침략을 받아 칭기스칸은 패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천하를 통일 하겠다는 열정으로 땅을 개척한 칭기스칸은 틀을 깨는 사고를 통하여 1260만 평방 킬로미터를 개척한 세계최고의 개척가이다. 
1260만 평방 킬로미터라는 어마어마한 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 그리고 히틀러의 개척한 땅을 모두 합해도 징기스칸의 개척지를 따라 잡지 못한다고 한다.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_1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_1


징기스칸의 명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어려서는 이복형제와 싸우면서 자랐고, 커서는 사촌과 육촌의 배신속에서 두려워했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들쥐를 잡아 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었고 유일한 내일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부족장이 된 뒤에도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적진을 누비면서 먹을 것을 찾아 다녔다. 나는 먹을 것을 훔치고 빼앗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었고, 꼬리 말고는 채찍도 없는데서 자랐다. 내가 세계를 정복하는데 동원한 몽골인은 병사로는 고작 10만, 백성으로는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타고 달리기에 세상이 너무 좁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결코 내가 큰 것은 아니었다.

배운게 없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글이라고는 내 이름도 쓸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또한 나는 힘이 없기 때문에 평생 친구와 동지들을 많이 사귀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나를 위해 비가 오는 들판에서 밤새도록 비를 막아주고 나를 위해 끼니를 굶었다.

너무 막막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고 가슴에 화살을 맞고 꼬리가 빠져라 도망친 적도 있었다. 나는 사랑하는 아내가 납치됐을 때도, 아내가 남의 자식을 낳았을 때도 눈을 감지 않았다.

숨을 쉴 수 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마라.
알고 보니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_3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_3


징기스칸의 이 명언들과 이야기는 지금도 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그리고 나의 생활을 한번 되돌아 보며 반성의 시간도 가지게 된다. 
징기스칸은 가난한 유목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수많은 수난을 당하며 강인한 군인, 현명한 지도자, 가슴 따뜻한 군주가 되었다. 몽골 유목민들은 징기스칸에 대한 믿음 하나로 감히 겁도 없이 사막을 가로 지르고 눈보라를 헤치고 강을 넘어 광활한 몽골제국을 건설하였다.

적은 내 안에 있었다. 징기스칸과 같이 나 자신을 먼저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사물을 보고 판단할 때 겉으로만 보이는 판단보다는 '틀을 깨는 사고'를 통한 '진취적인 사고'가 나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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