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진화와 창조에 대한 이야기
진화는 살아남았을 때나 진화라고 하는 것이다
2011-01-30 20:50:30최종 업데이트 : 2011-01-30 20:50:30 작성자 : 시민기자   유진하

창조와 진화라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진화는 다르게 보면 창조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무언가가 처음 생길 때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특정 조건을 만족할 때, 특정한 환경의 영향이 작용해서 반응을 일으키면 창조의 과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가지 것들이 반응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진화라고 할 것인가 창조라고 할 것인가는 개개인의 생각에 따라 다르다.   

흔히들 인간의 기원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 진화론과 창조론이 대립적인 논리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런 논쟁은 단어의 정의를 확실히 하면 더 확실해질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것으로 다른 의견을 갖는 이유는 정의의 범위를 서로 다르게 규정하기 때문이다. 진화라는 단어는 작게는 생물학적인 진화를 뜻하지만, 무기적인 현상의 진화도 진화라고 칭할 수 있다. 

진화와 창조에 대한 이야기_1
진화와 창조에 대한 이야기_1


따라서 진화의 범위를 크게 규정하면, 자연에 있는 많은 현상을 진화의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반면에 범위를 작게 규정한다면 그런 자연 현상은 진화가 아니라 창조인 것이다. 
저절로 생겼다는 것이 과연 정말 유에서 무로 생긴 것인지 혹은 자연의 특정적인 사건에 의해 생긴 것인지 밝혀낼 수 없는 시점에서, 창조와 진화가 대립적인 구도를 갖는다는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진화는 일종의 현상이다. 현대 시대의 사람들이 현상을 제일 잘 규명하는 방법은 바로 과학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은 진화론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진화가 과학인 것은 아니다. 모든 생물이 진화한다는 것이 사실이어도, 확실하게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그것은 신앙일 뿐이기 때문이다. 

창조도 마찬가지다. 창조를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 된다. 만약에 연금술사가 실제로 연금에 성공했다면 창조는 신앙이 아니라 과학으로 더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진화든 창조든 그것을 증명하는 데에 있어서는 모두 과학적이지만, 조금만 다르게 본다면 둘 다 신앙적인 것이다. 

아직까지 진화를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정하지 못 한 만큼, 진화가 진보인가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과정인가에 대한 말도 많다. 다양하게 진화했지만 살아남은 것이 적은 것인지, 처음부터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한 것인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다양성이 증가하여 살아남는 것도 진보로 볼 수 있다. 다양해진다는 것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특징을 가진 것들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다양성이 증가했기 때문에 진보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진보와 다양성의 문제가 계속 생기는 것은 아마 적자생존의 결과 때문일 것이다. 다양성이 계속 보존되었다면 다양성이 진보라는 논리가 힘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테지만, 다양하게 형성된 것들 중에는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서로 다른 특징들을 가진 개체들 중에서도 환경에 알맞은 특징을 가진 개체들이 살아남고 약점을 지닌 개체들은 사라져가는 것이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다보면 결국 살아남는 것은 다양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진보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강한 개체가 살아남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당연한 현상일 지는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모든 개체가 진화의 과정에 있다면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어차피 모든 개체는 생겨나면 소멸되기 마련이고, 환경의 변화에 맞는 개체들이 그 환경을 살아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명심해야할 것은 모든 개체가 진화의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개체가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진화를 해나간다면, 사라지는 것도 있을 것이며 새로 생기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창조가 개입할 때이다. 창조와 진화를 작은 개념으로 생각해봤을 때, 창조는 특정 시점에서 발생하는 일이지만 진화는 불특정 지점으로부터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자연스러운 진화가 일어나고 있는 데, 예상치 못한 창조가 발생한다면 그 때의 환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창조라는 것은 자연 환경에서 우연하게 생긴 창조가 아니라, 특정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건물을 세우듯 하는 그런 창조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도태되는 것들을 보호하는 것은 창조에 관련된 사람들의 일이다. 창조로 인해서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지 알아서 생각하고, 보호의 유무를 잘 판단해야 한다. 지금 환경 문제가 전세계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을 막은 우리 인간들의 창조가 너무 무분별하고 책임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자생존, 우승열패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어느 생물이든 상황에 따라 우열이 바뀔 수 있다. 인간이 지금은 함부로 창조하고 진화의 흐름을 방해할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간의 창조로 인해 예상치 못하게 바뀌어버린 환경에서, 또 다시 인간이 강한 힘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 때에는 인간이 진화에 발맞추지 못한 개체가 되어 도태되고 만다. 

사실 창조와 진화라는 개념을 넓게 생각해본다면, 이런 논의는 무의미하다. 크게 생각해보자면 인간이 생긴 것도 이유가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고,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 방법을 가지고 있듯이 인간도 인간만의 살아가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다. 

인간은 인간대로 삶의 다양성을 증가시켰으며, 자연스럽게 진화에서 승리한 강자가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인간이 도태되는 것들을 보호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상태를 지속시킨다면 인간이 언제까지나 강자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보호가 필요한 것일까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도, 보호의 필요성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진화에서 도태되는 것들을 보호하는 것이, 강자에게 또 다른 진화가 될 지 혹은 소멸이 될 지 잘 생각해보고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진화는 살아남았을 때 진화라고 하는 것이지, 사라지고서 하는 것이 아니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