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누구나 군복무라는 시간을 거치게 된다.
군대를 다녀온지도 벌서 14년이 다 되어간다. 나의 아버지는 3년 6개월을 근무했지만 나와 친구들은 2년 2개월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을 군대에서 보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3년이 되었을 때도 가끔씩 입대를 하는 꿈을 꾸곤 한다. 그런 꿈을 꾸면 나도 모르게 놀라고 잠에서 깨어난다.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악몽을 꾼 것은 아니지만 다시는 가기 싫은 곳이 군대였기에 그런 의식이 꿈속에서도 반응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전역하기 3개월 전으로 돌아가라면 충분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전역하기 3개월 전이라면 부대에서 힘든 일도 시키지 않고 가능한 쉬운 일만 골라서 할 수 있으며 간부들도 별다른 잔소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생활이 정말 편하다.
때를 맞춰 밥을 먹고 일과 시간만 무사히 보내면 하루하루가 잘 흘러가는 시간이다. 소위 말년 병장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편한 시간이다.
말년 병장이 되면 소대(군생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 내에서 그다지 할 일이 없다.
그래서 후임병들이 가지런히 정리해둔 수건, 모포, 베개, 총기 등을 흐트러뜨리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상황판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상황판은 소대 내에 있는 병력의 인원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서류다.
하지만 말년 병장들은 이 중요한 상황판을 숨겨서 후임병들을 난처하게 한다. 특히 상병들은 소대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소대 내에서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관리한다.
그런데 최고참들의 장난으로 이런 물건들이 안보이며 그 밑에 있는 일병, 이병들이 고생을 한다. 그 물건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상병들도 말년 병장들의 장난을 받아주다가도 한계에 도달하면 참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계급이 높은 선임병에게 반항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말년 병장의 장난에 한해서는 상병의 지시에 의해 말년 병장들을 혼내 줄 수가 있다.
그게 전통이면 전통이랄까? 군대에서 조촐하게 마지막을 보내는 병장 말년과의 재미난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말년병장을 혼내주는 여러 방법들이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후임병들이 말년 병장의 다리를 붙잡고 양쪽으로 벌리는 것이다. 2년 동안 태권도를 열심히 해서 몸이 유연하기는 하지만 대여섯명의 장정들이 말년 병장의 다리를 부여잡고 양쪽으로 벌리고 위해서 상체를 누르면 말년 병장들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다시는 장난을 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면 놓아준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말년 병장을 또다시 장난을 친다.
2년 2개월 동안 선임병들에게 많이 맞기도 했지만 그다지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 있지는 않다. 엄청나게 느리게 지나가던 국방부 시계도 어느덧 지나서 전역한지 14년이 지났다.
한번쯤은 군생활을 한 번 더 해보고 싶은 '끔찍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