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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천 발원지에 하심비(下心碑)를 세우자
2011-08-04 22:10:00최종 업데이트 : 2011-08-04 22:10:00 작성자 : 시민기자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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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교산 헬기장 아래에 있는 수원천 발원지 '하심(下心)이란 나를, 내 마음을 완전히 낮추는 것으로 내 마음을 낮추어 공경하고 뜻을 겸손히 가져 화합하는 삶을 이루는 것이 하심이다' 기자는 수원천 발원지 입구에 하심비(下心碑)를 세우자는 주장을 글로 남기고자 한다. 사실 하마비란 단어는 있어도 하심비라는 단어는 없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는 인터넷에서 조차 검색되지 않는 단어다. 도대체 하심비가 뭐며 더구나 수원천 발원지 앞에 웬 하심비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먼저 하마비(下馬碑)를 설명하면, 궁궐이나 사찰 등의 입구에 세워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하심비(下心碑)는 이곳에서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마음을 내려놓는 즉, 마음을 낮추라는 뜻이다. 그래서 수원천 발원지 앞에 하심비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2010년 4월, 수원천 발원지를 최초로 찾아 나선 팔달구 양재섭 건축과장은 '옛 수원 (현 수원, 화성, 오산)을 두루 흐르고, 수원(화)성 축성의 모태가 되고, 융건릉 자리의 한 획이 되며, 독산성의 자연방어물이었던 수원천은 이 지역의 소중한 존재로 근본(발원)은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어 지난 2010년 7월, 수원천 발원지 (광교산 소재)를 방문해 정화작업을 벌였던 양재섭, 신건정, 서정일 세 사람은 발원지를 다듬으며 '물은 생명으로, 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 사람이 모여들고 마을이 형성됐으며 공동체를 이뤘다. 하나의 물줄기를 함께 사용한다는 것은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하며 여기서 발원한 물이 수원, 화성, 오산, 평택을 거쳐 서해바다까지 흘러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얘기의 방향을 좀 틀어서, 지난 7월, 수원지명 740년 학술세미나가 화성박물관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서 옛 수원인 수원, 화성, 오산은 한 조상을 모시던 한 가족이었음을 재천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다양한 욕심들로 한 핏줄이 헤어져 단절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보고 서로를 연결해 주던 수원천이라는 물의 의미도 생각해 본다. 이 지역에 사람이 살지 않았을 때도 그 물은 흘렀으며 물줄기 따라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뤘고 커다란 공동체가 생겼다. 지역이 생기게 된 태초의 발생지는 물이며 그 물의 발원지가 바로 광교산 자락에 있는 가칭 '수원천 발원지'다. 우리가 물의 발원지를 찾고 그 앞에서 경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를 돌아보고 모든 분란의 불씨가 되고 있는 욕심을 버릴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그 발원지 앞에서만큼은 진정 하심(下心)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적어도 한 물줄기 한 공동체였던 옛 수원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론이다. 세상은 마음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한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행로를 결정하고 우리 모두의 마음은 이 지역의 행로를 결정한다. 낮은 마음으로 함께 할 때 옛 수원이 진정한 한반도의 중심(배꼽)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 낮은 마음을 갖는 최적의 장소가 수원천 발원지이다. 그래서 수원천 발원지 앞에 하심비(下心碑)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광교산 수원천 발원지 찾아가는 길 상광교동 13번 버스 종점 하차 -> 창성사 앞을 지나가는 도로 진입 (상광교동에서 통신대(미군기지)까지 가는 군 작전도로) -> 약 2km 진행하면 U자 형태로 꺾인 도로가 있음 그곳에서 멈춤-> 우측 물길 따라 약 150m 능선타고 진행 -> 좌측으로 바위 두 개가 보임 그 아래 깃발 표시해 놓은 곳. (소요시간 도보로 총 약 40~50분) (기자 주: 이 주장은 개인적 관점임을 명시한 것이며 독자 개개인별 생각은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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