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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녘의 친구 허수아비
2011-09-16 19:27:52최종 업데이트 : 2011-09-16 19:27:52 작성자 : 시민기자 이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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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판을 나가 들녘의 정겨운 친구 같은 허수아비를 만났다. 아직은 푸릇푸릇하지만 곧 황금색으로 물들 들판에 벌써 허수아비가 나타났다.
들판이 허수아비는 곧 몰래 올 참새를 쫒기 위해서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험상궂은 얼굴로 들녘에 서있었다. 저렇게 넓은 들판에 혼자 서 있는 모습이 오늘은 왠지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할 허수아비가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농촌에서 성장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허수아비를 보면 여러 가지 추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가을 들판이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 되면 어른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지신다. 그런데 어른들 못지않게 이 무렵이 되면 농촌의 아이들도 바빠진다. 나는 이 무렵 학교에 다녀오면 작은 가방을 챙겨, 우산과 비닐을 들고 논으로 갔다. 작은 가방 안에는 학교에서 내 준 숙제, 꽹과리가 들어 있었다. 내가 논에 가서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저 허수아비가 해야 하는 일과 같았다. ![]() 들판의 정겨운 허수아비의 모습 참새가 떼를 지어 잘 익어가고 있는 벼를 먹으려고 내려오면, "워이~ 워이~"하고 큰소리를 지르면서, 꽹과리를 시끄럽게 두드려야 한다. 그래야 떼를 지어 내려온 참새들이 내가 지르는 소리와 꽹과리 소리에 놀라서 도망을 가기 때문이다. 가을 들녘은 한낮에도 지금처럼 덥다. 어린 나는 이렇게 더운 날에 큰소리로 '워이~ 워이~'하고 소리 지르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꽤가 나서 그냥 앉아 있으면 참새 떼들이 어떻게 알고서 바로 우리 논 위로 날아들곤 했다. 그러면 다시 꽹과리를 치고, 큰소리를 질러 참새 떼를 쫒아 내곤 했다. 참새 떼가 잠시 물러간 짬에는 바닥에 엎드려서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해야했다. 커다란 우산 밑에서 숙제를 하려면 왜 햇살은 자꾸 내게 비추는지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숙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한참 숙제를 하다 보면 다시금 참새 떼가 날라 오고, 나는 다시 꽹과리를 치고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가끔은 만만치 않은 참새 떼 녀석들이 나타난다. 이 녀석들은 내가 아무리 소리를 치고 꽹과리를 두드려도 우리 집 논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최후의 방법으로 둑 밑으로 내려가서 논길을 따라 "워이~ 워이~" 더 큰 소리를 지르면서 신나게 꽹과리를 쳐 참새 떼를 몰아내곤 했다. 어린 날에는 도무지 포기할 줄 모르던 그 참새 떼들이 얼마나 얄미웠는지 모른다. 한참을 이렇게 참새 떼와 씨름을 마치면 논둑에서 잠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논둑에서 스스로 잠이 들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에 엄마나 언니들이 나를 깨워 데려가던 기억이 난다. 보통 참새 떼를 쫒는 일은 학교에서 일찍 오는 초등학교 자식들에게 맡겨지는 임무였는데, 중학교에 다니던 언니가 보충수업을 마치고 나서 하교 길에 내가 논둑에 우산을 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게 와서 나를 데려 갔었다. 어스름한 저녁, 언니가 나를 데려갈 때쯤 되면 이제 그 얄밉던 참새 떼들도 집으로 돌아갔는지 잠잠해 지곤 했다. 참새 떼가 사라져서 평온해진 들판을 보면 내가 승리한 느낌이 들어서 신이 나서 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때로는 참새 떼를 쫒는 것이 힘들어서 엄마를 피해를 도망 다니기도 했는데, 이번에 허수아비를 바라보며 그 모습까지도 다 소중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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