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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수표처럼 어려운 영어로 된 아파트 이름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쩌시고, 우리 한글은 또 어쩌라구요?
2012-07-30 18:15:34최종 업데이트 : 2012-07-30 18:15:34 작성자 : 시민기자 윤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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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봐요. 이거... 이거.. 여기가 어디여?" ![]() 난수표처럼 어려운 영어로 된 아파트 이름_1 저녁 퇴근길. 온종일 뜨끈뜨끈한 36도나 이르는 여름 불볕더위에 길이든 건물이든 콘크리트가 달아올라 용광로 같은 열대야 속에 땀을 훔치며 바삐 집으로 가던 길에 빨간 보따리를 하나 든 70대 중반쯤의 할머니 한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할머니도 옷이 땀에 젖으신 채였다. 얼굴은 무척 지쳐 보이셨다. 할머니는 내게 웬 종이쪽지 하나를 건네주는 게 아닌가. 어디엔가 가셔야 하는데 지명을 못 찾아 그러시나 싶어 쪽지를 받아들었다. 누군가 볼펜으로 써준 종이 위의 글씨였다. 뭔지 금세 알 것 같았다. 할머니가 내게 건네신 종이쪽지에는 당신이 찾는 아파트 이름이었고, 그걸 찾다가 여의치 않자 내게 도움을 청하신 것이었다. 할머니가 찾으시는 아파트는 근처에 있기는 한건데 그 영어로만 된 아파트 이름을 할머니가 알아듣고 이해 하시기 에는 참 어려운 낱말이었다. 영어도 배우고 젊은 축에 드는 내가 이해하기에도 복잡하고 무슨 의미인지 쉽게 다가오지 않는 그 긴 이름을 연세 드신 할머니가 알기에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할머니께 "여기 저기 돌아 여기저기로 가시면 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자니 또 헤매실 것 같아 할머니를 모시고 직접 거기까지 가기로 했다. 보따리를 드신 할머니는 시골에서 아들 집에 오신 건데 택시에서 내려서 그 아파트를 찾아가시는 중이라 했다. 그곳은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선 택지지구라 여러 아파트들이 성냥갑처럼 세워져 있어서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은 상황이라 도시를 잘 모르시는 노인 분들이 쉽게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10분 정도 걸어 목적지 아파트에 다가서니 또 한번 놀라웠다. 역시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이야 상관없지만 아파트 이름조차도 약 15층 정도 높이에 씌어져 있으니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이 바라봐야만 볼 수 있었다. 이래저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찾기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동. 호수까지 확인해 초인종을 눌러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까지 한 다음 할머니께 조심해서 들어가시라며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주변에 아파트 이름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동안은 별거 아니려니 생각하며 무심코 지나쳤던 아파트 이름을 다른 시각으로 보니 전부다 무슨 뜻인지도 알기 어려운 영어로만 되어 있었다. 이름을 찾는 건 고사하고 발음조차도 어려웠다. 대개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여러 나라의 언어를 조합해 만든 아파트 이름도 많았다. 요즘엔 거리의 간판도 외국어 일색인데 아파트 이름도 초기에는 우리말 아파트가 제법 나오다가 다시 외국어가 유행이다. 아파트 이름만 보면 과연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인지 아니면 어느 외국의 도시인지 혼돈스러울 정도였다. 예전에 지은 아파트들을 보면 샘머리, 무궁화, 백조, 호수 이런 예쁘고 정겨운 것들이었는데 요즘은 아예 건설사들이 다른 아파트와의 차별화를 위해 영어 등 외국어로 이름을 짓는 게 유행이다. 그리고 그렇게 지으면 고급스럽게 보이고 또 분양이 잘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아파트 이름의 외국어 명은 갈수록 더할 것 같다. 아파트 이름의 외국어 난립은 결국 우리나라 국어의 정체성을 해치게 하며 어린이나 노인 분들은 잘 외우지도 못한다. 꼭 노인 분들이 못 찾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말이 아파트 이름에서 완전히 사라지고야 말 것 같다. 사기업인 건설사들에게 아파트 이름마저 강제적으로 외래어로 못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건축허가시 순 우리말로 아파트 이름을 짓도록 유도하는 방안은 없을까.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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