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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의 스트레스 탈출구, 수다
2012-08-23 23:08:49최종 업데이트 : 2012-08-23 23:08:49 작성자 : 시민기자 최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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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엔 허름하지만 그래도 오래 된 찻집이 하나 있다. 이 찻집은 동네 아줌마들이 심심풀이로 들르기도 하고, 그냥 차 한잔 마시고 싶어 지나가다 들르기도 하는, 그저 사랑방 같기도 하면서 때론 쉼터 역할도 해주면서 결정적으로는 아줌마들의 뒷담화를 전문으로 하는 수다방의 역할도 한다.
그래서 우린 이 찻집을 수다방으로 부른다. 며칠전에도 이웃집 주부와 수다방에 갔다. 원래 금요일 저녁 그 시간쯤이면 토요일, 일요일 휴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맘 편히 느긋하게 만나 수다 떨기 딱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 아줌마들의 스트레스 탈출구, 수다_1 토요일과 일요일은 가족간에 행사나 여행이나 외출을 갈수 있기 때문에 아줌마들끼리 모여 수다 떨기에는 이 금요일 밤이 딱이다. 그 금요일 밤시간쯤이면 평소 한가했던 동네 아줌마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슬슬 꾸역꾸역 모여든다. 응당 자리가 남아나지는 않는다. "어서오세요." 콧소리를 내며 호들갑을 떠는 인사가 벌써 수다방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아유, 선생님은 한 패션 한다니까. 허리가 잘록한 게 어쩜 이리 날씬하실까! 스타일이 요즘 젊은 애들 못지않다니까요. 호호호 이리 앉으세요." 역시 칭찬 일색인 멘트다. 들어오는 사람, 차 마시고 나가는 사람 부담 없이 드나드는데 수다방 주인으로부터 한 패션 한다는 둥, 날씬 하다는 둥, 스타일이 젊은 애들 못잖다는 둥의 말을 들으니 굳이 싫지는 않다. "좋겠어, 자기는... 여고생 같아서. 호호호" 같이 간 주부가 칭찬인지, 부러움인지, 아니면 은근한 질투(?)인지 모를 야릇한 웃음을 살짝 지어준다. 비싸지 않고 스타일은 젊게, 패션 감각은 살리면서 나는 그런 여자라는 걸 뽐내기라도 하듯 발걸음을 옮기며 의자에 앉았다. 비로소 여왕이 된 듯한 기분으로. 영양가 없이 뻗쳐있던 머리끝을 찰랑이며 에센스를 살짝 바른 입술로 차 한잔 마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저만치 날아가는 느낌이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뒷담화는 시작됐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우리 대화의 소재가 된 무수히 많은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와 대소사가 뒷담화의 줄거리로 등장했고, 원래 처음부터 가십거리로 시작된 담소는 결국 우리나라의 경제 살리기, 요즘 사회가 너무 흉흉하고 길거리의 묻지마 살인 같은 사회적 이슈까지 숨 가쁘게 타고 넘어갔다. 우리의 뒷담화 덕분에 밤 몰래 뒷골목에 쓰레기 봉다리 던져 놓고 달아난 나쁜 아줌마의 인격이 싹둑싹둑 잘려나갔음은 물론, 매주 주말이면 그동안 영업하다가 조금 남은 음식 싸들고 양로원으로 찾아가는 뷔페식당 아줌마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대한 감사와 칭찬도 아끼지 않았으니 그런저런 '동네 통신'에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시는 모든분들께 고마울 지경이었다. 애들 키우랴, 직장 일 하랴, 시댁 챙기랴 바쁜 우리 직딩 아줌마들의 스트레스를 날려 주시니... "오늘따라 손님이 많네요?" 차를 가져온 사장님에게 물었다. "휴가 끝물이잖아요. 7월 중순부터 8월중순까지는 파리 날렸다니까요. 이제 손님들이 좀 많아 져야죠" "여태 저녁도 못 먹었죠?" "저희들 하는 일이 그렇죠 뭐. 실컷 웃고 맛있게 차 마시고 환한 얼굴로 수다방을 나가는 손님들을 보고 있음 마음이 그렇게 편하고 좋은 걸요. 어떤 분은 우리 수다방에서 쉬다 가시면 주말 내내 일이 잘풀렸다고 어찌나 기분이 좋으셨던지. 그렇지만 그게 저희 덕분인가요? 손님들이 마음 먹기에 달린거죠. 수다방 단골 손님들이 마음먹은 것 잘 실천해서 부자 되고 승진도 하고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이죠." "혹 특별한 손님은 없었나요?" "저희들한텐 모든 분들이 특별하죠. 아, 선생님도 한 특별 하시잖아요. 저희 수다방에 왔다가면 맨날 1주일 스트레스가 쫙 풀리고 기분 좋다고 그러셨죠?" 늘 가까이 있는 손님을 특별한 부류에 넣어주는 센스는 수다방 여자 사장님의 전매특허다. "작년은 저희들이나 손님들에게도 무척 힘든 한 해였어요. 손님이 많이 줄었었지요. 오는 손님들 또한 표정이 어둡고 하는 일이 잘 안돼서 고민하는 손님들이 많았거든요. 수다방이 경기를 빨리 느끼는 곳이잖아요. 일도 잘 안되고 살림도 어려우면 차 마시러도 안오시니까" "그렇죠 뭐. 누구나 다 만만치 않아요. 세상에 쉬운 일은 없어요. 다 애로가 있기 마련이죠. 전 이렇게 자기 사업 하면서 매일 다른 손님들 맞이하시는게 부러운걸요?" "에이, 무슨 말씀을요. 저는 선생님처럼 나이 드신 여성분들이 자기 전공 살려서 직장에 다니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이시던데..." "서로 부럽기만 하네요. 호호호"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쫙 풀린 스트레스 덕분에 머릿결도 살아나 반짝거리고 찰랑거림을 느끼며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내리는 빗줄기 속에 벌써 선선해진 가을 바람이 휙 하고 콧잔등을 스친다. 여자들의 수다에 대해 남자들은 잘 모른다. 남자들이 하는 말로 "여자들끼리 모여 앉아 쓸데 없이 수다나 떨고..."라고 힐난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여자들 나름대로 유일한 탈출구이자 스트레스 푸는 방식이 바로 이 '수다'이다. 하물며 마음 놓고 맘 통하는 이웃과 함께 앉아 실컷 떠들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으니 더더욱 안성맞춤이다. 저마다의 방식이 있겠지만 우리 주부들의 어려움과 애로를 푸는 수다. 댁에 계신 남편분들께서 모르는 척 넘어가 주면서 가끔은 직접 수다의 상대가 돼 주기도 하고, 수다의 주 재료가 되어 주는 센스를 발휘해 보심이 어떨런지.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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