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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 전통시장의 정겨움
시장 아주머니의 구수한 노랫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듯
2012-12-20 02:46:52최종 업데이트 : 2012-12-20 02:46:52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애

수원은 물론이고 전국 어디를 가 봐도 각지에 대형 할인마트가 들어서다 보니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그곳으로만 몰려드는 것은 이제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나름 도시 주부인 나 역시 가끔은 집 앞의 가게들을 뒤로한 채 자가용을 타고 대형 할인마트를 찾고 싶은 마음이 앞설 정도이니.

며칠전 예고하지 않고 찾아온 손님들이 집에 들이닥쳤다. 점심식사는 간단히 해결했으나 저녁은 그냥 대충 넘길 일이 아니었기에 장바구니를 들고 지동시장으로 나섰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대형 할인마트나 백화점으로 장 보러 나간 이유에서였는지 시장이 좀 썰렁하다고 느껴질 만큼 한산했다.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진실인거야, 한사람 사랑하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나 좋다고 말해놓고 그냥 가면 나는 어쩌나…'

뜬금없는 노랫가사? 아니, 뜬금이 있다. 예상보다 훨씬 한가하고 조용한 시장 안에서 적막을 깨는 풍경이 내 발길을 붙잡는다. 
낮술을 한잔 걸치신 듯, 아주머니 한분이 시장 한쪽에 앉아서 조개를 까면서 아주 구수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노랫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나도 입속으로 흥얼거리며 옆 가게에서 과일을 사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반갑게 아는 척을 하셨다.
"아유, 오랜만에 보네요. 여기 자주 않와요? 하긴 요새 마트가 생겼으니... 근처에 마트에 자주 가시나 봐요?"
과일이 달고 맛있어서 내가 시장에 들를때마다 꼭 들르는 과일가게. 이 아주머니 말씀 속에는 재래시장보다는 집 근처에 생겼을법한 대형 마트에 자주 가다 보니 재래시장에는 이제 발길을 뚝 끊은거 아니냐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그건 아닌데...

훈훈한 전통시장의 정겨움_1
훈훈한 전통시장의 정겨움_1

아주머니는 내가 산 사과봉지에 두 개를 더 얹어주셨다.
그렇다. 품목별로 가지런히 정돈된 물건들은 없지만 재래시장에는 정성스레 손으로 정돈한 물건이 있다. 한복을 입고 안내하는 어여쁜 아가씨들은 없지만 재래시장에는 땀에 젖은 행주치마를 두른 그 아주머니가 계신다. 그리고 그아주머니의 정이 흠뻑 담긴 함박웃음이 여전히 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고추장에 조물조물 묻혀 먹어봐, 끝내줘." 
사과를 사 들고 나서니 바로 옆에서는 나이 지긋한 야채가게 아주머니의 정감어린 목소리에 젊은 주부가 신기한 듯 이것저것을 물으며 야채거리를 고르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자, 덤이야."라며 검정 비닐봉투에 한 움큼 콩나물을 찔러주자, 젊은 주부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번진다. 

지동시장에는 시장 상인들의 재미있는 입담과 소박한 정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말만 잘하면 덤으로 얻는 후한 인심은 항상 대기중에 있다. 
내가 코흘리개 시절, 시골에서 명절을 앞두고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을 따라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상인들의 모습, 뭉게뭉게 뽀얀 수증기를 뿜어내던 찐빵과 만두, 순댓국 등 먹거리, 알록달록 화려한 색상의 옷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흘러흘러 도시에는 커다란 마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정말이지 세상이 화악, 달라졌다. 주부들은 찬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대형 마트를 더 찾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알게 모르게 '골목상권 장악'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마트에 가 보면 어디서 몰려온 것인지 실내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주부들은 인파 사이를 헤집어가며 카트를 밀고 다닌다.

그러다가 찬거리 외에 눈길을 파고드는 미끼상품들의 유혹에 낚이고 만다. 1+2 행사의 미끼에 낚여 서너 봉지 묶음의 과자를 아이들 주전부리용으로 거머쥐면서 "역시 마트가 대량의 물건을 팔고 사니 더 좋아"라며 마트의 마술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장을 보고나면 그 양이 만만찮다. 봉투 밖으로 부피가 큰 과자와 과일이 고개를 내밀 정도가 된다. 과소비란 말이 생각나지만 장을 본 것을 승용차에 싣고 그냥 집으로 향한다. 

주부들은 그렇게 슬금슬금 재래시장을 잊어가고 있었고, 대형 마트들은 낚시용 미끼 상품을 적절히 뿌려 가면서 주부들을 홀려대고 있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재래시장의 옛 정취를 잊지 못해, 그리고 우리 서민들의 풋풋한 인정이 넘치는 재래시장이 좋아서 열심히 지동시장, 못골시장, 팔달문 시장을 찾아 주는 주부들 덕분에 이곳 서민 상인들이 근근히 희망을 갖고  버티는것 아닌가.

과일과 손님 접대용 찬거리 이것저것 듬뿍 사 들고 차에 싣고 오는 동안 내 귓가에서는 시장 아주머니의 구수한 노랫소리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들리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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