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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주클럽' 멤버다!
2012-12-23 23:50:12최종 업데이트 : 2012-12-23 23:50:12 작성자 : 시민기자   임윤빈
"여보, 다음주말에 가족을 위해 시간 좀 내줘야겠어요. 맨날 망년회 한다고 늦게 들어오지만 말구"
"아니 이사람. 내가 늦고 싶어 늦나? 직장생활 하려다 보니 업무상 만날 사람도 있고, 연말이라 비즈니스 때문인걸. 참 내. 하여튼 다음주엔 시간이 날건데, 왜?"

직장 때문이란거 알면서 좀 늦는 일 가지고 타박을 했더니 곧바로 서운하다는 표정을 짓는 남편. 그 심정 알기는 하길래 더 이상 그것 가지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내 용건 추가.
"다음주요? 당신 우리 공주클럽 잘 모르죠? 우리 아줌마들끼리 공주클럽 만들었거든. 거기 행사에 함께 가야 돼서요"
"공주 클럽? 이 아줌마들이 왜이래?" 
공주 클럽에 가입했고, 거기에 참석해야 한다는 내 말에 남편의 눈이 확 커지면서 '아줌마들이 할 일 없이 몰려다니면서 씰데 없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남편 눈에 공주클럽이라는건 여편네들이 돈이나 쓰며  싸돌아다니는 그런걸로 비쳤을게다. 

하지만 우리 공주클럽은 공부하는 주부 클럽이다. 
물가는 날로 치솟고 사교육비도 비싸서 가계부 적기가 겁난다. 거기다가 우리처럼 맞벌이 하는 주부들은 학교 소식도 제대로 못 듣고 정보도 부족하니 그런 엄마들끼리라도 아이들 뒷바라지에 뒤지지 않게 하려고 이웃의 맘이 맞는 주부 4명이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는 주부가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주클럽의 본연의 목적을 말하자 그제서야 남편이 이해를 한다.
내가 남편에게 다음주에 시간을 내 달라고 요구한건 다음주 일요일에 아이들과 엄마 아빠 다같이 강화도로 역사체험을 함께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남편들은 운전수 역할도 하고,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아빠와의 정도 쌓으라고.
남편도 OK싸인을 주었다.

공주클럽을 만들고 엄마들이 돌아가며 전문분야의 공부를 해서 아이를 직접 가르치기로 했다고 하자 남편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직접 공부해서 아이를 가르치고, 나도 더 배우면 나쁠것도 없을듯 했다. 
학원으로만 내쫓기 보다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는 보람이 얼마나 클까 싶었다. 그래, 난 열공하는 공주(공부하는 주부)다. 아자자!

우리 주부들이 공주클럽을 만든건 사실 우연이었다. 
얼마전에 이웃집 초등학교 4학년 아이 엄마가 아이의 영어를 봐 주던중 우유(milk)를 "밀크"라고 읽어주었더니 아이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더란다. 

학교 다닐때는 그래도 '한 영어' 했다고 자부한 그의 발음을 아이가 못 알아 듣는게 이상해 "너는 초등학교 3학년이 밀크도 모르냐?"며 면박을 줬더니 직접 단어를 확인한 아이가 '참을수 없이 억울한' 표정으로 제 엄마를 쳐다 보며 이렇게 말하더라나. 
"엄마, 그건 밀크가 아니고 '미역'이야!"
'뭐, 미역? 밀크를 미역이라고 발음한다구?'

그랬다. 그 주부는 오래전의 소위 새마을 발음으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려 한 것이니 사실상 '미역'에 가깝게 발음하는 milk를 밀크라 하여 못 알아들은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원어민에게서 배우는 영어이고, 매일 CD를 통해 진짜 발음을 듣는 판국에  옛날에 배운 발음으로 설명을 하니 아이가 그  발음을 이해 못할 수밖에. 
어디 그뿐인가. 사과(apple)는 '애플'이 아니라 '애포'라고 하고...

그러자 이 주부가 나서서 아이 또래들에 맞는 다른 주부들을 규합, 공주클럽을 만들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집에는 큰애가 초등학교 6학년인데 우리집 둘째아이도 초6이고, 다른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있는 두 집 주부가 합세해서 4가족이 공주클럽 회원이 되었다. 어차피 아이들이 똑같은 학교에 학년도 같으니 교과 영역도 같고, 특히 영어나 수학, 사회, 과학 같은 주요과목은 같이 공부하고 가르치기도 서로 맞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려다 보니 방 안에서 교과목만 가르치기 보다는 야외로 나가 역사나 사회수업을 함께 하는게 좋을듯 하여 다음주말에 강화도에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아이는 벌써 좋다며 펄쩍 뛴다. 사실 아이가 좋아하는 이유는 공부를 해서가 아니다. 한창 놀 나이의 아이가 역사문화 탐방을 간다고 해서 좋아할리도 없다.

 
나는 '공주클럽' 멤버다!_1
나는 '공주클럽' 멤버다!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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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주클럽' 멤버다!_2
나는 '공주클럽' 멤버다!_2

아이는 3년전쯤 서해에 놀러 갔을때 그곳에서 새우구이를 해 먹은 맛을 잊지 못한다. 아이는 바닷가에 간다 하니 거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물론 그곳에 가면 아이에게 그런 맛있는 것도 선물해 줄 것이다. 그러면서 바람도 쏘이고, 또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강화도의 유적지를 돌며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국난을 극복했고, 어찌어찌 하여 외침에 대비하며 항전했는지 그런 소중한 것들을 가르쳐 줄 것이다.

남편은 슬그머니 컴퓨터를 켜고 강화도의 역사 유적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오래전에 배운거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며. "알아야 면장을 해먹지"라며 중요한 내용은 발췌해서 프린트까지 할 모양이다. 남편의 열공 자세도 보기에 좋다. 우리 남편 화이팅이다.
가족의 행복과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분위기도 알고 보면 주부하기 나름인듯 하다. 우리 이웃 주부들 모두 공주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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