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가훈은 '사랑과 자랑이 넘치는 집'
2012-12-27 08:43:16최종 업데이트 : 2012-12-27 08:43:16 작성자 : 시민기자 김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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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영화관에서 본 코믹영화가 한편 있었다. 실력이 없는 자식을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법정 투쟁까지 벌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인데, 그 집안의 가훈이 벽에 걸려 있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집 가훈은 '사랑과 자랑이 넘치는 집'_1 우리나라 국가 발전의 원동력은 가정교육에서 나왔다. 집집마다 걸려 있는 가훈과 공부하는 학생의 책상 위에 걸려있는 좌우명에서 국가와 사회 발전의 근원적인 힘이 나온 것이다. 좋은 글귀 한 점 벽에 걸어두는 것은 자기 암시이고, 의지의 표현이다. 의지가 나약해질 땐 용기를 주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이에겐 나름대로 큰 역할도 한다. 공적으로는 도덕적 양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되고, 사적으로는 마음 수련과 겸양의 자기 최면효과도 발휘한다. 최근에 개인적인 일로 분당에 다녀오던 중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에게 특별 서비스 행사로 새해 계사년을 맞아 가훈을 무료로 써주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살아오면서 늘 마음속으로는 나도 붓글씨좀 배워 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기는 했다. 붓을 잡는다는 것은 마음을 가다듬는 일이고 서예라는 말도 좋지만 그것이 도(道)가 됨으로 해서 더 느낌이 좋다. 서도란 글씨를 쓰는 방법, 또는 그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일이지만, 길 도(道)자에는 엄격함이 묻어난다. 도(道)는 연마와 수련의 과정을 거쳐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이어서 붓은 기능을 익히는 일도 중요하지만 마음수련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단박에 이뤄지지 않는 인내심과 절차탁마의 정신도 깃드는 것이 바로 이 붓글씨 아닌가 한다. 그렇게 붓글씨와 지필묵에 대한 막연한 동경의 마음은 있었지만 워낙 재주가 없는지라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던 희망사항이었다. 그 때문에 여러 서예 전문가들이 쓰는 붓글씨를 구경하고 싶어서 무료로 가훈을 써준다는 행사장으로 쓱 들어가 보았다. 행사장에 들렀더니, 누구나 마음에 드는 문구를 말해주면 선착순으로 써준다고 했다. 서예의 대가들이 진땀을 흘리면서 그 많은 분량을 혼자 써내고 있었다. 글자 한자 쓰기가 원래 힘드는 일인건 알고 있었지만 과묵한 표정으로 오로지 글씨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존경심마저 생겨났다. 가훈으로 쓰는 여러 가지 좋은 문구가 견본처럼 놓여 있었다. 가정주부들은 가화만사성, 가화길상, 진인사대천명, 경천애인, 효제충신, 역지사지 같은 문구들이 모두 다 한문으로 씌여져 있었다. 서예가가 글을 쓰면 감상평을 하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붓 참 잘 돌아간다. 편안할 가난할 빈(貧)자를 저렇게도 쓰는구나!"라고 감탄하는가 하면, "글씨도 좋지만 뜻도 참 좋네."라면서 뜻풀이를 상세히 해주는 박학다식한 사람도 있었다. 쉴 틈 없이 글을 써내느라 진땀을 흘리는 서예가의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어느 40대 아주머니는 음료수를 권하며 "너무 무리하셔서 몸살 나시겠어요."라고 위로하기도 했다. 가훈 한 점 받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좋은 글귀를 벽에 걸어두기 좋아하는 전통적인 문화 민족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상들은 집안마다 가훈을 세우고 대대로 집안 가르침의 기본 덕목으로 삼았다. 국가로 치자면 일종의 국민교육헌장 같은 셈이었고 그걸 내리우면서 생활의 실천규범으로 삼았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집집마다 가 보면 개중에는 성실, 사랑, 건강, 절약, 효도 등의 내용을 주제로 한 여러 가지 가훈들을 걸어 놓고 가족의 삶의 지표로 삼는 가정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요즘 들어서는 가훈을 가지고 있는 집을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아니 가훈이란 개념 자체를 아예 잊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이 사회에 도덕불감증이 팽배하고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정신적 혼란이 야기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영화에서 본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가훈이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새해 계사년을 맞이할 날도 며칠 안 남았는데 이 기회에 가족들의 삶의 지표가 되는 가훈 하나 멋지게 써서 걸어두시면 좋지 않을까 권해드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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