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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 받아주기'도 좋은 봉사다
2013-01-19 11:28:18최종 업데이트 : 2013-01-19 11:28:18 작성자 : 시민기자   김지영
그동안 참 많은 눈이 내렸다. 아직도 광교산은 물론 화성 근처나 주변 야산을 보면 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눈이 이틀 후에 또 내린다고 한다. 얼마나 올지 알수 없지만 웬만한 사람 치고 눈 내리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낭만적이고, 자연의 혜택이 주는 계절적인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일전에도 눈발이 날리자마자 주인 손을 잡고 뛰쳐 나온 강아지부터, 온 마을 아이들이 밖으로 나와 펄펄 뛰며 좋아들 했다.

그러나 생업에 지장을 받는 사람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전단지 돌리는 어떤 사람이 "어휴, 또 눈이야?"하며 한숨을 푹 쉬는 모습, 리어카에 우유와 야쿠르트를 잔뜩 싣고 회사 앞이나 길거리에 세워놓고 파시는 야쿠르트 아줌마, 야채 조금 놓고 파시는 노점상 할머니 아줌마들.

눈이 내리면... 에고, 내가 괜히 더 죄스럽다. 그분들과 아무 관련도 없는 이 아줌마가 더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그분들이나 시민기자나 다 똑같은 서민이기 때문일듯 하다.
그중에서도 전단지 - 일명 찌라시 - 를 돌리는 아줌마와 할머니들이 유난히 더 힘들어 보인다. 왜냐면 사람들이 이 전단지를 덥석덥석 받아가 주지 않고 자꾸만 피하기 때문이다.

 
'전단지 받아주기'도 좋은 봉사다_1
'전단지 받아주기'도 좋은 봉사다_1

내가 다니는 회사에 직원이 비교적 많기 때문에 일을 마치고 회사 문을 나서면 항상 몇 명의 아줌마들이 최근에 새로 오픈한 음식점이나 술집 또는 안마방 광고용 전단지를 나누어 준다.  
요즈음은 대출 광고용 전단지나 신규 아파트 광고용 전단지도 많이 나누어 준다.  광고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능성이 높은 고객의 손에 직접 쥐어 주는 방법 만한 광고가 없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버리기 전에 호기심에 한 번은 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늘 보는 일이지만 전단지를 받아서 잘 보지도 않는 데다가 어디 버릴 때도 없어 아줌마들을 피하거나 아예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도 않아 전단지를 돌리는 아줌마들을 무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돈 좀 있는 화장품회사 같은 경우는 전단지에 물 티슈나 라이타, 볼펜 같은걸 끼워서 나눠주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그나마 효과가 있으니 이 전단지를 돌리는 분은 운이 좋은 축에 들 것이다.

영하 13도의 한파가 몰아치던 얼마전이었다. 그날따라 눈발마저 풀풀 내리고 있었다.
정말 살을 에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실감하면서 옷깃을 여민채 종종걸음으로 출근길을 재촉하는데 저만치 인도 한가운데 우뚝 선 채로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줌마가 보였다.
'아줌마는 지금 얼마나 추우실까' 하는 마음에 나라도 한 장 받아 들어야 저 아줌마가 1분이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 쉬실수 있을것 같아 가까이 다가섰다. 예상대로 아줌마는 내게 전단지를 불쑥 내밀었고 나도 선뜻 받아 들었다. 내용을 보니 근처에 최근에 오픈한 유명 마트에서 한우 세일 대축제를 한다는 광고지였다. 

아마도 광고 내용상 나 같은 아줌마들이 주 타켓트였던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전단지를 받은것 말고는 나보다 앞서서 아줌마 옆을 지나간 사람들중 전단지를 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전단지를 받을때도 얼마나 기뻤으면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꾸벅 했을까. 
전단지를 받아 들고 저만치 가면서 몇 번이나 힐끗힐끗 뒤돌아 봤지만 역시 사람들은 전단지를 받지 않고 마치 바람처럼 그 옆을 휙휙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날씨 탓이기도 했다. 
워낙 추운 날씨이니 사람들마다 모두 손을 호주머니에 꾹 찔러 넣고 있었기에 전단지 받자고 손을 빼기가 싫었던 것이다. 눈마저 내리고 있었으니 어떤 사람들은 우산도 들고 있었고 나머지 한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는 경우 전단지를 받고 싶어도 받기 힘든 일이었다.

볼펜이나 라이터를 끼워서 돌리는 아줌마에 비해 이분은 참 운도 억세게 없는 일이었다. 그날 전단지를 돌리고자 나선 아줌마는 과연 몇시간을 그 자리에 서 있었을까...
전단지를 건네 주시던 아줌마의 꽁꽁 언 손과, 일이 잘 풀리지 않음에서 오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 빛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엊그제는 퇴근길에도 다른 전단지 아줌마와 마주쳤는데 그때는 호프집 개업 전단지였다. 술집이어서인지 퇴근길에 맞춰 돌리는것 같았다.
전단지를 받아 들면서 "어머, 동네에 호프집 개업했네. 추우시죠?"라며 말을 건네 보았다. 왼종일 우두커니 서서 추위와 맞서면서 전단지를 돌리느라 입 한번 뗄 일이 없던 차에 웬 아줌마가 말을 건네와서 신기했는지 이 아줌마도 얼굴색이 금세 바뀌었다.

빨리 돌리고 가서 쉬고 싶으셨을텐데 내 말을 듣자마자 전단지 묶음이 들린 손을 내리며 한숨을 몰아 쉬셨다. 이참에 한 5분 쉬실 모양새였다.
"평소에도 전단지를 받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요. 오늘같이 추운 날은 더 말할 것 없고요. 광고지를 받아주는 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그 말씀 속에 힘겨움이 잔뜩 묻어났다. 생각 같아서는 함께 서서 좀 돌려 드리고 싶을만큼. 

아줌마더러 추위에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시라는 인사가 내가 드릴수 있는 도움의 전부였지만 그 인사마저 따뜻하게 받아 주시니 다행이었다.
내일도 모레도 길거리에서 또 만날 전단지 아줌마들. 그거 어려운 일 아니니 한 장쯤 선뜻 받아 들자. 해외에까지 나가서 봉사활동과 불우이웃돕기 하는 우리인데, 출퇴근길 30초도 안걸리는 이 일이야말로 쉬운 봉사활동 이웃사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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