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함잡이의 "함사세요" 외치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며 경찰에 신고했다는 뉴스가 흘러 나왔다. 가슴이 갑갑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진다 한들, 어쩌면 이토록 남김없이 메말라 가는 걸까 하는 속상함. 그걸 소음이라며 신고하다니. 우리는 진정 무엇으로 사는걸까.
문득 어둠이 내린 초저녁 골목길에 울려 퍼지던 "함사세요"라던 그 구성지고 정겨운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듯 하다.
"다음달 보름에 동칠이 장가 간댜"
"색시는 누구랴?" 하며 다그치듯 궁금하다며 묻는다.
"산아래 느티나무집 춘선이라능게벼"
"호오메...! 고것이 연애질을 했능갑네... 하이고야, 요것이 깜찍하네. 내숭, 내숭!.... 깨가 쏟아지것네"
70년대만 해도 그때 시골에서 결혼식때는 젊은 아낙들이 모여 수다와 호들갑을 떠는걸로 결혼식이 있음을 알렸다.
그런 빅뉴스가 터지면 햇살이 따스한 골목어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깔깔대며 시간 가는줄 몰랐다. 우리네 고향 시골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벌써 40년이 더 지난 정겹고도 따스한 추억거리다.
때가 되어 결혼전날 함잡이와 함꾼들이 색시네 집으로 함을 팔러 가게되면 100m 전방에서 부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함파는 장사가 시작된다. 식을 올리기 전에 신랑의 사주와 청혼서, 분홍 저고리감과 가락지 1쌍을 예단으로 마련해 사주함에 넣어 신부집에 보낸게 함이었다.
"함사세요!"
"함사실분 없어요?!"
"말만 잘하시면 거저도 줄수 있어요! "
신랑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함을 진 친구들로 구성된 함잡이는 함을 그냥 신부집에 내려 놓는 것이 아니라 신부집 동네에서 이렇게 소리치며 분위기를 잡는다. 그리고는 신부집 대문으로 들어서기까지 길에다 돈을 깔게 한다. 신부집 앞에서 함잡이들이 과도한 함값을 요구하다가 신부집 친인척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지만, 신부 친구들의 권주와 아양에 슬쩍 넘어가기도 한다.
가벼운 실랑이 끝에 급기야는 땅바닥에 돈을 깔아놓고 함잡이를 집안으로 끌어 들인다. 집안에 들어서면 돌아설수는 없는 것이 법칙이자 풍습이다. 이날 함잡이를 맞아들였던 신부 친구들도 질세라 함잡이 측에 꽃값을 요구했다.
함잡이는 부부간에 금실이 좋고 첫 아들을 낳은 사람에게 시킨다고 한다. 함잡이는 오징어 가면을 쓰는데 이는 얼굴에 검댕을 칠해 잡귀를 막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함이 도착하면 신부의 아버지가 함을 받아 시루 위에 먼저 얹는다. 함을 받은 뒤엔 함잡이와 신부 아버지가 맞절을 한다. 함잡이에게 예를 다해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다.
신부집의 어른이 함 안에 손을 넣어 채단을 꺼내는데 이때 청색에 싼 채단이면 아들을, 홍색이면 딸을 낳는다고 했다.
신부는 받은 함과 그 내용물, 무명을 잘 챙겨두었다가 시집갈 때 가지고 갔다. 이렇게 하여 길고 긴 함의 여정은 끝이 난다. 그 한밤 떠들썩했던 함팔이 행사를 거쳐 다음날 결혼식을 치뤘다.
동네 넓은 마당에 큼직한 양은솥을 서너개 걸어놓고 국수를 삶아 대는 동네아낙이 있고 잘게 썰은 고기와 계란 을 부쳐 잘게 썰어 국수위에 고명으로 얹어 멸치국물 부어 잔치국수를 끓여내면, 세상에 그보다 맛있는 음식이 없었다.
널찍한 철판에 돼지기름으로 몇번 씻어내고 녹두부친개 붙여내는 동네아낙, 그리고 동태전 부쳐내는 낯익은 아주머니도 있었다. 그시절, 시골에서는 네집 내집 없이 온동네 집들이 손님받는 잔치집 되고 동네잔치가 되었다.
드디어 결혼식 시간.
사모관대 신랑과 연지곤지 신부가 나서면 마당을 채우고도 모자라 축하객들은 까맣게 주변에 진을 치고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처음 하는 결혼식, 엉거주춤 서투른 신랑을 두고 신랑 친구들은 "첨엔 다 그래. 다음엔 잘하겠지."라며 키득거렸다.
처음 술잔으로 마시는 술은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는 것을 의미하며, 표주박 잔으로 마시는 술은 부부의 화합을 의미한다. 성스럽고 기쁜 혼례를 하늘에 고하여 이 뜻을 만천하에 전하여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원하고 양가부모님과 축하객 여러분들께 감사의 큰절을 올린다. 이윽고 다산을 기원하며 하늘 높이 장닭과 암탉을 날린다.
새내기 부부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신명나는 풍물소리에 맞춰 힘찬 성혼 행진을 하자 축하객들은 초례상 위에 있던 팥과 쌀을 한줌씩 나누어 쥐고 있다가 성혼 행진을 할 때 신랑, 신부를 향해 "행복하게 잘 살아라" 라는 덕담과 함께 던진다.
드디어 신부를 태운 가마가 대문을 나서자 대문을 막아서고 있던 축하객들은 약속처럼 비켜서 길을 열면서 결혼이라는 성대한 인륜지 대사는 아름답게 대미를 장식한다.
옛날 혼인식은 이처럼 정겹게 왁짜왁짜 소란했고 인정미, 사람 사는 맛이 넘쳤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들의 이야기꽃과 신랑신부 친구들의 흥분어린 웅성댐,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의 수선거림이 정겨웠다.
잠시 옛 추억을 떠올려 보는 사이 어디선가 "가마 앞을 막으면 징 맞고 동티 나 오래 못산다"고 외치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그러고 보니 이미 몇십년전에도 들었던 말 이다. 젊은 교꾼들은 "목이 말라 못가겠다"는 너스레로 술을 청하고, 짧은 겨울햇살을 소박하게 즐겼다.
누가 왔다 갔는지도 모르는 복잡한 예식장에서 30여분만에 초고속으로 치루는 오늘날의 결혼과 비교해 보면 그때가 그립고 정겹다.
함잡이와 함께 징과 꽹과리, 장고 등 농악대와 등불을 든 사람들이 이웃 형님, 누님의 혼인을 축하해주며 신명나게 놀아주던 마을 축제, 그때의 혼례풍습....
함잡이를 시끄럽다고 경찰에 고소하는 세태에 사는 우리네가 다시금 되돌아 봤으면 싶은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