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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상인의 걸쭉한 입담에 풀린 피로
2013-01-22 23:52:17최종 업데이트 : 2013-01-22 23:52:17 작성자 : 시민기자   유남규

지하철 1호선을 탔다. 같은 1호선 국철이라 해도 수원행은 인천행에 비해 배차 간격이 길어서 퇴근시간에는 항상 승객이 많다. 
비좁은 가운데 음악을 들으며 서 있는데 구로쯤에서 약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카트를 밀어 들이며 타는게 보였다. 카트 위에는 군청색 플라스틱 박스 같은게 실려 있었고 손에는 뭔가가 들려 있었다.
'아하,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아저씨구나' 금세 알수 있었다.

옛날에는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보면서 경제가 어려운지 잘 풀리는지 알수 있었다고 하지만 요즘은 지하철 안에서 장사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경기가 불황인지 호황인지 알수가 있는것 같다. 참고로 지하철 안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엄청 많아졌다.
혁띠부터, 수세미, 고무장값, 무좀약, 아이들 장난감, 칫솔, 면도기, 장갑 등 이루 다 헤아릴수가 없다. 

이 아저씨도 웬지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저씨는 헛기침을 몇번 하더니 손잡이를 양손에 쥐고 가방을 내려놓고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자 여러분 안~녕하쉽니까? 제가 오늘 이렇게 여러분에게 나선 이유는 가시는 걸음에 좋은 물건 하나 소개 드리고자 이렇게 나섰습니다."

 

지하철 상인의 걸쭉한 입담에 풀린 피로_1
지하철 상인의 걸쭉한 입담에 풀린 피로_1

우렁찬 목소리에 걸쭉한 입담이 기대되는 분위기. 모든 승객들의 시선이 그 아저씨 쪽으로 쫙 쏠렸다.
"자, 제가 지금 들고 있는 이게 무엇이냐? 무엇으로 보이십니까. 구둣솔입니까, 옷솔입니까. 아니면 이걸 운동화 빠는 빨래 솔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이쯤 되면 눈 감고 자는 척 하면서 애써 모른척 외면하려던 사람들까지 고개 들어 무슨 물건인데 이렇게 요란할까 싶어 쳐다볼만 했다.

하지만 아저씨가 들고 있는건 엄청난 물건이 아니었다. 아저씨 표현대로 하자면 프라스틱머리에 솔 달려 있는 것, 즉 칫솔이었다.
"이건 바로 칫~솔입니다. 제가 이걸 이걸 뭐할려고 가지고 나왔을까여? 구두 닦으려고 했겠습니까, 아니면 손님 양복바지 먼지 털어드릴려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이걸 손님 여러분께 팔려 나왔지요. 안그렇겠습니까. 왜냐? 저도 집에 있는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요"
아저씨의 입담이 정말 장난 아니었다. 

"이 칫솔로 말씀드릴것 같으면 한개에 200원씩 다섯개 묶여 있습니다. 엄청 싸지요. 그러면 손님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거 다 싸구려야, 오죽 싸구려 저질품이면 칫솔이 5개에 1000원이나 하겠어 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칫솔 한 개에 200원씩 5개에 천원입니다. 머리 좋은 승객 여러분은 벌써 제가 들고 있는 이 칫솔 한묶음에 1000원인거 금세 계산 끝냈습니다."
내가 타고있는 칸의 승객들 누구라도 그 쪽을 안쳐다 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저씨의 말은 계속 됐다.
"칫솔 뒷면 돌려 보겠습니다. 보이시죠? 영어로 써 있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이게 무슨 뜻일까요? 수출했다는 겁니다. 수출. 영어 잘하시는 우리 승객 여러분, 금세 이해하실겁니다. 수출이 잘 될까요? 아닙니다. 저희 회사 망했쉽~니다. 그래서 덤핑 가지고 나온겁니다. 그래서 값이 싼겁니다. 제품이 저질이래서 싼게 결코 아닙니다."

그 사이 전철이 정거장에 섰다. 적잖게 사람들이 내리고 다시 승객들이 올라탔다. 아저씨는 좌중을 휙 둘러보더니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아, 저기 저 손님 벌써 주머니 뒤져서 1000원 꺼내는게 보입니다. 어? 저기 저 사모님 지갑 열었습니다. 참 성격도 급하십니다. 남들 돕겠다고 저렇게 발벗고 나서시는 우리 대한민국 신사숙녀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어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칫솔을 샀다. 그리고 다른 몇 명이 더 구입했다. 
그 와중에 연세가 60대쯤 되보이는 어떤 분이 "거 참, 조용히좀 갑시다"라며 큰 소리로 핀잔을 주자 이 아저씨는 인사를 꾸벅 하며 "네, 너무 죄송합니다. 저의 처자식을 생각해서 조금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금방 사라지겠습니다"라며 재차 인사를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더 이상 조용히 가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저씨는 우리 칸에서 너댓명에게 물건을 판 것 같았다.

아저씨가 물건 판매를 마치고 다음 칸으로 옮겨 가기 위해 카트를 잡고 방향을 틀면서 날린 마지막 한마디.
"시끄럽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퀴즈 한 개 내겠습니다. 제가 다음 칸에 가면 이거 몇 개 팔수 있을까요? 궁금하신 분은 다음 칸에 와서 확인해 보세요. 안녕히~"라며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생각하기에 따라 조용히 퇴근하는 시간에 시끄럽게 잡상인들이 왔다갔다 하는거 싫어 할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분들도 먹고 살려고 그러는 것이다. 이것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며 우리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이 아저씨의 걸쭉한 입담을 듣고 피로도 풀렸다. 정망 이 아저씨 다음 칸, 또 그다음칸에서 얼마나 팔았을까 궁금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특이하고 희귀한 것들을 많이 경험한다. 그 중에서도 많이 보는 사람들, 그분들은 바로 지하철 상인들이다. 어떤때는 좀 비싼 5000원짜리 전기면도기 같은거 파는 분들도 있고, 이렇게 한 개에 200원짜리 정도의 칫솔 같은거 파는 분들도 있지만 그걸 파는 말 솜씨나 폼을 보면 꼭 홈쇼핑에 나오는 사람처럼 말한다. 상품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체험시키기도 하고.

일전에 오이 가는 기계를 파는 아주머니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 얇은 오이들을 얼굴에 손에 붙이고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붙여주면서 설명하는 아주머니의 모습. 예사롭진 않았다. 
저마다 사는 방식은 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에는 나와 가족들을 위한 몸부림이고 최선의 선택이고 열심히 사는 모습 아닐까 싶다.
지하철에서건, 노점상에서건 모든분들 다 마음 상하지 않고 돈 많이 벌고 잘 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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