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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우리에겐 과분한 보금자리
우리에게 희망과 행복을 준 수원에서 영원히 살고싶어
2013-01-24 12:12:31최종 업데이트 : 2013-01-24 12:12:31 작성자 : 시민기자   김지영
남편이 잠을 자지 않고 뒤척이다가 결국 잠이 완전히 달아났는지 거실로 나가 TV를 켰다. 우리 집은 아주 웬만한 내용이거나 뉴스나 특별한 일 아니면 거의 TV를 보지 않고 있었기에 그 시간에 느닷없이 텔레비전을 켠 남편이 마뜩찮았다.남편은 잠이오지 않자 별 궁리를 다 하다가 결국 케이블 TV를 켜더니 이리저리 채널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무슨 TV예요... 잠 안자고?"
남편 때문에 덩달아 잠이 깨어 거실로 나가 물을 한잔 마시면서 잠 자라고 말하자 남편이 대뜸 "당신, 저거 보면서 느끼는거 없어?"라며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에는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는데 주인공들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공간을 한동안 보니... 아, 옥탑방이었다.
케이블TV에서 오래전에 공중파 방송에서 상영한 드라마를 다시 보여주는것 같았다. 남편이 켜 놓은 TV에서는 옥탑방에 사는 남녀 주인공들의 애환을 그린 내용이 나오고 있었는데 날더러 생각나는거 없냐고 물은 이유는 우리가 한때 옥탑방에서 생활했기 때문이었다.

남편 덕분에 잠옷 입은채 결국 두 부부가 거실에 앉아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하릴없이 TV를 쳐다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할수록 우스꽝스러웠지만...
오래전의 우리 삶의 한자락이었던 모습이었기에 유난히 관심 가는 부분도 있었고 드라마를 보면서 "맞아, 맞아, 그랬지" 혹은 "그래, 옥탑방은 그럴만 하지. 얼마나 겨울에는 추운데"하면서 둘이 TV에 몰입돼 갔다. 일종의 감정이입 같은. 

신혼초 그때에 우리는 서로간에 큰 돈이 없었으니 옥탑방 생활부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부엌이고, 방 하나에 화장실 하나가 전부인 옥탑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화장실이 현관문 안쪽에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옥탑방은 여름에는 햇살을 그대로 받아 덥다 못해 뜨겁고, 겨울에는 남극 그 자체다. 찬바람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소위 외풍이 장난 아니다.

 
작지만 우리에겐 과분한 보금자리_1
작지만 우리에겐 과분한 보금자리_1

게다가 대부분이 불법으로 만든 것이라 단열재를 제대로 쓰지 않아 온도 유지가 거의 되지 않는다. 또 만약 불이라도 나면 위험천만이다. 내장재가 불을 무지 좋아하는 값싼 것들로 만들어져 있어서다.
겨울에는 보일러에 전기 히터까지 써서 어떻게든 견뎌냈는데 여름에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또한 어린 아기가 더위에 지치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수시로 옥탑방 지붕에 물을 뿌리고, 선풍기를 돌리고, 수건을 물에 적셔 아이의 몸을 연신 닦아 내면서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더위보다 더 큰 시련이 닥쳤다. 건물 주인이 은행 융자를 잔뜩 끌어쓰다 돈을 갚지 않고 잠적해 버린 것이다. 그때만 해도 세상 물정을 몰라 확정일자도 받아 두지 않았고, 그 건물에 살던 여섯 가구 중에서 가장 늦게 입주한 덕에 경매 후에도 우리에게 돌아 올 몫은 남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전세금이 일정금액 이하인 세입자들은 소액보증금을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그 당시 직장을 옮기게 되는 바람에 받은 퇴직금과 소액 보증금을 보태고, 대출을 조금 받아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옥탑방에서 워낙 고생을 했던 터라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옥탑방 만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기에는 가지고 있던 돈이 많이 부족했다. 그러다 이사를 하게 된 곳이 반지하 방이었다.
방도 두개로 늘었고, 반지하라고 해도 땅 위로 난 큰 창이 두개나 있어 그리 답답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비가 올 때마다 집이 잠기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불안했고, 구석진 곳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거기다 먼지는 어찌 그리도 많은 지 창을 열 수도 그렇다고 닫고 살수도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던중 IMF가 터졌다. 모두다 죽는다고 난리였는데 그게 우리집에는 우연찮게 큰 도움이 됐다. 
즉 반지하 셋방에서 3년정도 버티면서 생활에 노하우도 생기고 부부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적잖은 현금을 모았는데 그때 은행들이 금리를 최고 19%까지 주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지금 예금이자 고작 3% 주는것에 비하면 거의 천문학적인 이자였다.
우스갯소리지만 IMF덕분(은행들이 엄청 높게 준 이자)에 그후 2년만에 반지하에서 탈출해서 지상으로 올라오게 됐다. 

아침에 창을 통해 들어오던 햇살이 고마웠고, 아이들이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마당이라는 게 있는 곳. 우리는 어설픈 하늘과(옥탑방) 퀘퀘한 땅속(반지하) 셋방살이 끝에 결국 제대로 된 땅 위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사람에게는 그 그릇에 맞는 음식이 있고, 그 크기에 맞는 옷이 있고, 그 생각에 맞는 미래가 있는듯 하다. 그걸 인정하고 열심히 살면 신은 합당한 행복을 주는것 같다.

우리 가족은 큰 아파트, 값비싼 자동차 이런거 하나도 안부러워 하며 우리 처지에 맞는 적당한 집에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옥탑방에서 시작해 반지하를 거쳐 지금은 자그마한 주택이지만 우리의 꿈결같은 보금자리가 있어서 행복하다. 우리에게 행복을 준 수원에서 앞으로도 그렇게 열심히 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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