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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말썽꾸러기'로 키우기
2013-01-28 00:43:26최종 업데이트 : 2013-01-28 00:43:26 작성자 : 시민기자   오수금
나는 예체능에 워낙 소질이 없어서 그 분야에 능통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을 갖는 사람중 하나이다.
지난 1월초에 가까운 친구로부터 스마트폰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한 음악 파일을 받았다. 파일은 동영상이었고 동영상에 등장하는 내용은 미국의 피아노 가이즈(PIANO GUYS)라는 프로젝트 그룹의 뉴에이지 음악 연주 동영상이었다.

워낙 음악에 문외한이기는 하지만 듣는 것 까지 싫어하지는 않은 터라 어떤 음악인지 들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연주는 실로 놀라웠다. 
이들의 음악이 좋아서 기왕지사 다른 곡도 들을만한게 있는지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들이 전세계에 퍼트린 자신들의 연주 파일 동영상이 40여곡 정도 떠돌아 다니고 있었다.

이들의 음악이 좋다고 하는 이유는 이들의 연주 기법 때문이다.
연주의 핵심 악기는 피아노와 첼로 두 개뿐인데 중요한 것은 피아노를 그냥 건반만 친다든가, 혹은 첼로를 그냥 악보에 맞춰 현을 켜기만 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들어 A라는 곡이 있다면 그 곡을 피아노와 첼로로 연주하면서 피아노 건반 뚜껑을 여는 소리, 건반을 일부러 부딪치는 소리, 첼로를 그냥 켜기만 하는게 아니라 첼로의 현을 기타처럼 튕긴다든가 첼로 스틱으로 마치 드럼치듯 한다든가 하는 주변의 모든 요소들을 곡 하나에 모두 집어 넣어 그것을 기막히게 촬영하고 편집하여 연주하는 기법이었다.

아이들을 '말썽꾸러기'로 키우기_1
아이들을 '말썽꾸러기'로 키우기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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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말썽꾸러기'로 키우기_2
아이들을 '말썽꾸러기'로 키우기_2

물론 모든 곡이 다 그런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런 독특하고 창조적인 연주 방식으로, 그리고 장소와 방식을 각기 달리하면서 모든 곡을 소화한다.
유튜브에서는 전세계적으로 클릭수가 장난 아니라 한다.
내가 마치 이들에 대한 홍보를 하는 것 같은 오해를 받을수 있겠으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음악이든 공부든 체육이든 미술이든, 그리고 그 누구라도 어느 분야에서건 창조적으로 개척하는게 너무나 중요함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다.

우리같이 틀에 박힌 공부만으로는 이들같은 음악이나 미술 등이 절대 나올수 없을것 같다. 또한 그런 음악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수도 있다. 피아노 건반을 잘 치는것만이 훌륭한 연주가 아니라 그 모든 주변의 물건과 요소들을 가지고 연주하면서 독창적이고 특이한 방식으로 곡을 재해석해 대중에게 새로운 곡을 선사하는 능력은 그들만의 독특한 창조적 실험 덕분일 것이다.

이들을 예를 들어 본다면 우리는 지금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어느정도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수 있게끔 가르치고 있는지, 그리고 창조적인 발상을 할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언젠가 미국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가장 위대한 발명가를 꼽는 조사를 해 보았더니 가장 위대한 발명가로 에디슨과 스티브 잡스가 1위와 2위로 선정됐다고 한다.
그런데 가장 위대한 발명가로 손꼽히는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묘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지독한 말썽꾸러기로 살았다는 점이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에디슨은 초등학교를 중퇴했고, 잡스는 대학을 다니다 말았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 대학을 중퇴했다면 중소기업조차 입사할수 있을까. 
초등학교를 중퇴했다면 인생 포기한 사람 취급 할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말썽꾸러기형 인간이었을까? 오히려 이들은 시대의 흐름만 고집스럽게 따르지 않고 자신의 호기심을 창의성으로 승화한 혁신가이다.

그 덕분에 이들이 전세계에  남긴 족적은 매우 크고 위대하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 환경은 창의성이 풍부한 말썽꾸러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라 하기에는 부족하다. 
여전히 명문대학 진학만이 최고의 목표이고, 다양성에 대한 편견과 획일적 교육제도 등은 창의적 말썽꾸러기를 만들어내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기능올림픽을 헤아릴수 없이 제패한 대한민국인데도 여전히 그렇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려 있는 획일적 교육제도와 항상 1등만을 추구하는 문화적 풍토가 창의성을 막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의성이 살아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한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일수 있는 포용력과 실수를 인정하는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적에 유치원에 다닐때 일이었다. 유치원 참관수업이 있어서 갔는데 마침 수업 시작 전 아이들 서너명이 유치원 마당에서 땅을 파고 주전자에 물을 떠다가 부으며 물길을 만드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릴적에는 많이 해본 놀이이기에 '참 재미있게 노는구나' 생각하며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느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얘, 거기서 흙장난 하면 어떡하니? 옷 다 버리잖아"
물놀이 하는 원아의 엄마가 마침 유치원에 도착하면서 그것을 보고 제지하는 소리였다. 아이는 깜짝 놀라서 일어섰고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겼다. 한 아이가 빠지자 나머지 함께 놀던 아이들 모두 뻘쭘한 상황이 되어 다같이 놀이를 그만 두고 일어났다.

그 광경을 본 유치원 선생님은 속으로는 '이건 아닌데'하는 마음인듯 했으나 학부모가 워낙 완강하게 아이를 꾸짖으며 다그치자 뭐라 말을 하지는 못한채 어정쩡 지나쳤다.
과연 이 엄마의 행동이 옳은걸까. 겨우 옷 좀 버린다는 이유로 흙을 파고 물놀이를 하는 아이를 제지한 엄마의 행동.
이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어릴적 흙과 물놀이를 한 기억을 더듬어 수로를 연구하는 지리학자가 될지, 토목공학 전문가가 되어 4년씩 걸리는 댐 만드는 공사를 2년만에 해치울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낼지도 모르는 일인데 이 엄마는 당장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영어나 수학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게 오늘날 창의적 교육을 막는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유치원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 담당자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 역시 아이들의 창의성 교육을 막지 말고 다양한 토양을 만들어 주자.
또한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라는 영양분과 실수에 대한 인정이라는 따뜻한 햇볕도 함께 쬐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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