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회사에서 주최하는 보드게임대회로 인해 쉬는 날임에도 출근을 해야 했다. 아내는 벌써 쉬는 날 아이 둘과 지지고 볶아야 한다며 입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회사 일인데 빠질 수 없으니 어쩌냐며 다독이며 길을 나섰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에 와이프가 "어차피 코엑스에서 하는 대회니까 우리 애들도 가서 구경해도 되죠? 이따 중간에 한번 들러서 구경이나 좀 해 볼게요."
나는 잠시 멈칫하고 "됐어~"하고 말했다. 아내는 그냥 넘어가면 좋을 것을 왜 그러냐고 되물었다. "나중에 당신 살이나 빼고 와." 아내의 얼굴이 '치'하며 시무룩해졌다.
아내는 나보다 한 살 연상이다. 결혼 전에 하얗고 뽀얀 피부에 늘씬한 키와 웃는 얼굴이 예뻐 보여서 첫 눈에 반해서 쫓아다녔다. 아내는 나를 동생으로만 여기고 남자로는 시큰둥하게 여기다가 나의 끊임없는 대쉬에 넘어오고 말았다.
아내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누구나 나를 오빠라고 여길 만큼 동안이었다. 하지만, 아이 둘을 낳고 피부 관리며 자신의 외모에 좀처럼 신경을 쓸 줄 몰랐다. 나는 그런 아내를 보고 자기관리를 좀 해야 되지 않겠냐고 채근했고 아내는 매번 애들 키우랴, 살림하랴 정신 없는데 무슨 자기관리냐고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때때로 다이어트를 위해 노력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간혹, 저녁 6시 이후에는 먹지 않는다거나 집에서 덤벨을 들고 운동을 한다거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주말 밤이 되면 어김없이 나와 함께 야참을 즐겼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언제 다이어트를 하기나 했던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무섭게 음식을 먹었다. 그때마다 당신은 도대체 살을 뺄 생각이 있기는 한 거냐고 핀잔을 줬지만, 아내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한번 지내보라는 말 밖엔 하지 않았다.
물론 나의 아내는 심한 비만은 아니다. 169cm 키에 몸무게는 60킬로그램대 후반정도의 과체중이다. 마른 체형인 나는 결혼 전에도 조금은 통통한 모습의 아내가 좋긴 했다. 하지만, 아이 둘을 낳고 나서는 도통 자신의 몸을 돌보거나 관리할 줄 모르는 아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물론, 아이들 돌보랴, 살림하랴 얼마나 힘든지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남편으로서 그저 아줌마로만 푹 퍼져 있는 아내의 모습은 좀처럼 용납하기가 힘들다.
"여보, 내가 당신 위해서 다이어트 도시락 주문해 줄께."
"진짜? 그거 비싼데~"
"자기 애들 돌보느라 끼니 못 챙겨서 자꾸 한번에 먹어서 살 찌는 거 아냐~ 그러니까 이번에 내가 큰 맘먹고 쓰는 거야."
"아이구, 감사해라~"
혹자는 이런 나를 보고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의 아내가 어디서든 돋보이고 예뻐 보이길 바란다. 왜냐면 그 모습이 결국 나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얼마나 자기 관리를 잘하고 편안해 보이느냐에 따라 남편도 어깨를 펼 수 있다는 점이다.
뭘 그러냐는 남편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적어도 나와 함께 살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꾸밀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물론, 그래서 누가 보아도 네 아내 참 세련되고 멋지구나 라는 말을 듣기 원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런 생각조차 갖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아내가 자꾸 살 빼라며 채근하는 나를 원망하다가 오늘은 내게 다가와 웃으며 말한다.
여보, 언제나 해같이 빛나는 우리 부부가 되자
"자기야, 그래도 나는 사랑 받는 여자래."
"왜?"
"아니, 주변에 물어보니까 다들 남편이 살 빼라고 짜증만 부리지 자신이 스스로 무얼 해줄 생각을 안 하는데 자기는 날 위해 다이어트 도시락도 주문해주고 하니까 얼마나 좋으냐 그러더라."
"당연히 사랑하니까, 또 자기가 조금만 노력하면 멋진 여자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 거지, 괜히 그러겠어?"
그저 아내가 예뻐지기만을 바래서가 아니다. 아내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면서 자신의 진가를 알아가길 바란다. 지금은 그저 누군가의 엄마, 아줌마로서의 인생으로 살고 있지만 처음 나를 만났던 그 때의 당차고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던 그 모습을 부디 다시 찾길 바란다.
"여보, 나 오늘 싸이클 1시간 탔어."
"잘 했네~"
아이들을 돌보느라, 집안을 하느라 가 아닌 자신을 위한 시간 투자를 할 줄 아는 내 아내의 삶을 만들어주고 싶다. 언젠가 그래도 당신이 옆에서 그렇게 도와줘서 내가 이렇게 당당하고 멋진 여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