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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갓골마을에 '눈 뜬 사람들'이 살고 있었네
1959년부터 시작된 마을가꾸기 역사
2014-09-01 08:19:07최종 업데이트 : 2014-09-01 08:19:07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아침 일찍부터 바쁜 시간이었다. 보통의 수련회에서는 마지막 날은 식사하고 가볍게 산책을 하고는 곧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가벼운 구경거리를 찾아서 산책이나 하며 일행들과 도란거리는 여행이 전부다. 
역시 e수원뉴스 워크숍은 독특하고 특별하다. 

사실 문당마을 답사라는 행사 예정표를 보고 대체 어떤 곳일까? 무슨 마을 답사를 다하나? 더구나 시골마을 답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시골출신 까막눈의 허툰 상식의 말로는 문당마을에 정농회 회장이신 주형로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참하게 깨지고 있었다. 서툰 상식이 깨어질 때 사람은 절망하거나 환희에 찬 감정을 갖는다. 사실 오랜만에 환희에 가까운 그런 느낌으로 문당마을답사는 시작되었다. 

홍성 갓골마을에 '눈 뜬 사람들'이 살고 있었네_2
밝맑도서관이 마을에 있다. 주형로 선생과 마을을 안내하는 안내자 그리고 시민기자들이 안내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주형로 선생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빼놓고 들을 수 없었다. 
말씀이 시작되었다. "나는 살면서 아버지에 대한 감사, 공부 안한데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 
무슨 소린가? 사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 사회가 잘못 많이 배운 탓에 일찍 망가지고 있다는 시민기자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에 '옳소!'라고 외치고 싶었다. 
물론 100%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지식화라는 것이 전통적인 질서에서 올바른 것들까지 잠식시키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다. 

주형로 선생은 과거 할아버지 30년, 아버지 15년 합쳐 45년을 남의 집살이 한 9남매 중 독자 아들로 태어나셨다고 한다. 그러던 아버지가 몰래 일본가는 배에 타고 일본에 가서 농기구 만드는 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많은 땅을 소유하셨다고 한다. 이후 자식들에게 특히 주형로 선생에게 "밥 먹고 다니는 농업학교에 다니셨다고 한다. 

당시 풀무농업학교였는데 풀무농업학교의 교육이념은 '더불어 사는 평민이 되라!'였다고 한다. 주형로 선생은 77년부터 유기농을 시작하여 36년째 유기농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사실 한국 사람 일반의 상식에는 불과 10여년 이내의 일로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고 시민기자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유기농 선호지역과 유기농 여건이 좋은 곳은 무주, 진안, 장수이고 그 다음이 홍성지역이라고 한다. 유기농 선호지역이지만 가장 발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는 문당마을은 이미 오래된 협동조합이 있어 앞서는 농촌의 표본이었다. 
생산자협동조합과 계약재배를 통해 생활이 안정되고 귀농자들의 안정된 정착으로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주형로 선생은 말한다. 
"만약 귀농하려거든 더 늦기 전에 하라! 최근 그런 움직임은 매우 좋은 것 같다"면서 "최근의 귀농자들은 아이들을 자연과 접목시키려 왔다"고 말한다. 특히 홍성 귀농자들의 그런 생각에 희망을 갖는다. 

홍성 갓골마을에 '눈 뜬 사람들'이 살고 있었네_1
갓골마을, 문당마을과 풀무학교의 역사 그리고 협동조합과 유기농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손자뻘 되는 밝맑 선생은 '일소공도'라는 정신을 펼치셨다고 한다. '일만 하면 소가 되고,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된다' 실천없는 지성을 질타하는 멋진 말이란 생각이다. 
문당마을은 풀무학교의 풀무정신 아래 발전해왔다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었던 텃밭과 가정마다 있었던 가축을 기우는 곳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셨다. 

사실 시민기자가 어릴 때만 해도 일반적인 농촌 마을집의 전형은 텃밭과 동물농장이 있는 것이었다. 가난한 집이나 부잣집 모두 고르게 볼 수 있었던 그런 기반은 사랑과 생명이 기본으로 존중되는 농촌마을의 본질을 지켜준 것이리라. 
문당마을은 그런 기반은 조성하기 위해 도시의 아이들에게도 농토를 밟게 하고 그런 정신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문당마을의 농업실천교육을 이수한 후 욕설 없는 학교 그리고 폭력 없는 학교로 선정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전국 각 지역에 농업학교는 줄어들고 있고 농업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있다며 안타까운 가운데 문당마을에는 새로운 비전의 토대가 되고 있었다. 충남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3농 혁신대학은 1박 2일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잇다고 햇다. 
그런 가운데 최근 공주농고(생명과학고등학교로 개명)640명의 설문조사결과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장래 농사지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조사자는 믿을 수 없는 조사에 두 번씩이나 다시 조사한 결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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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있고 서점이 있고, 출판사가 있는 시골마을 현실이다. 아이에게 책읽어주는 어머니 그리고 취재에 열심인 장학관 선생님, 조화로운 이상국가를 보는 듯하다.
 
반면 풀무농업기술학교는 경쟁률이 5대 1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보였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서울에 목사, 교사 자제들도 입학하고자 찾아온다는 것이다. 
또한 입학이 어려워지자 농지 원부가 있는 자제들을 50% 입학시키는 수단으로 지역학생들을 입학시키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농업학교가 어려움에 처한 현실에 분노가 치밀어 어느 때인가 학교 간판에 농업이라는 글자를 페인트로 지우고 오는데 아내에게 들켜 붓을 빼앗기기도 했다고 한다. 

문당마을에 협동조합생활학교에서는 미생물, 발효, 기본 외국어 등 기본적인 소양교육과 농업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교육을 전담하고 있었고 실질적인 농업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주형로 선생의 "꿈을 꾸면 된다. 좋은 일에는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믿음이 새로운 농촌, 희망의 농촌을 만드는 중심이론처럼 여겨졌다. 그가 배운 일본인 선생의 "한국인들이여 일본의 농업을 뒤쫓지 말라!"는 메시지 또한 선진기술이라고 해서 농약과 비료로 육성되는 농촌이 인간의 정신과 질서를 황폐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을 통해 극복한 사례는 눈 뜬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다. 

홍성 갓골마을에 '눈 뜬 사람들'이 살고 있었네_4
난장이 있는 마을, 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아내와 김련은 시민기자, 마을 구직광고 등
 
그의 15년 눈물나는 세월이 이제 희망의 농업, 우리 농업에 희망이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만들고 있었다. 스스로 깨치고 스스로 이루어가고 있었다. 그가 말한 개인주의 교육의 토대에 협동조합 2000개를 설립하겠다는 것은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자성하며 들을 이야기란 생각이다. 
그런 교육실천이 초중등 모내기 의무이행 후 졸업과정이 있다는 것, 이웃을 바라보고자 하는 발달장애청소년들 씨앗 재배 모종 판매 사업, 지역장터 등을 통해 아름다운 가정 가꾸기에서 마을가꾸기로 전환되어야한다는 인식 등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의 실험과 성과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했다. 그의 실험성과는 그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제 그의 실험과 성과가 더욱 확대되도록 가능한 노력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또 다른 그의 주장에는 변별력이 있는 마을 만들기가 필요하다. 단체와 단체가 협력해서 싹이 돋는 협력이 필요하다. 그렇다. 그의 메시지 속에 우리의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당마을, 주형로, 정농회, 농촌의 미래, 희망을 만드는 사람, 김형효, 마을도서관, 마을출판사, 난장서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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