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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오죽헌에서 만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가족과 함께한 추석 나들이
2014-09-10 12:11:51최종 업데이트 : 2014-09-10 12:11:51 작성자 : 시민기자   김동언

추석 연휴를 맞아 부모님을 모시고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강릉에 도착해 먼저 찾은 곳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인 강릉시 죽헌동에 위치한 오죽헌이었다.

오죽헌은 대나무의 나무줄기가 까마귀처럼 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사임당은 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이자 율곡 이이를 낳은 어머니로 존경받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 나라의 지불수단인 지폐와 주화에는 존경받는 역사의 인물과 유물이 도안되어 있다. 우리나라 지폐 5만원권과 5천원권에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오죽헌에 들어서자 유학자이자 정치가로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율곡 이이선생의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동상 앞에는 오죽헌을 찾은 관람객들이 추억을 남기기 위해 동상앞에서 기념촬영이 한창이다. 추석명절을 맞아 우리가족과 같이 강릉 여행으로 오죽헌을 찾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고향을 찾은 귀성객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것으로 보였다. 또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도 간혹 눈에 띄어 여유로운 명절분위기를 실감나게 한다. 

강릉 오죽헌에서 만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_1
강릉 오죽헌에서 만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_1

'이이(李珥)'의 본관은 덕수이고 호는 율곡(栗谷)이며, 시호는 문성이다.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원수이고, 어머니는 우리 구원의 여성상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사임당(師任堂) 신(申)씨이다. 율곡은 1536년 지금으로부터 478년 전의 사람으로 어머니가 용꿈을 꾼 후에 이 곳 오죽헌(烏竹軒) 몽룡실(夢龍室)에서 태어나 1584년 서울 대사동(大寺洞)에서 향년 49 세로 별세하였다. 특히 성리학(性理學)에서는 독창적 견해로 '이기설(理氣設)'을 진일보 시켰고, 나라와 민생을 걱정한 현실의식에 투철하여 개혁의지를 구현하려고 힘썼으며, 그 유명한 '10만 양병론'도 이러한 의지의 표상이다. 

나는 오죽헌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율곡의 자세한 업적은 알지 못했다. 오죽헌에 비치된 안내문을 읽고 나서야 선생이 4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의 업적과 정치행보를 알게 되었다. 

오죽헌 살림집이 있었던 곳으로 들어서자 안채와 바깥채가 있다. 조선 초기에 지어진 오죽헌 내의 건물은 1505년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지낸 최응현(崔應賢)에 의해 전승되어오다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별당과 바깥채를 제외하고 모두 철거되고, 현재의 모습은 1996년 정부의 문화재 복원 계획에 따라 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강릉 오죽헌에서 만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_2
강릉 오죽헌에서 만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_2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申師任堂草蟲圖)화단 평풍은 당대의 대표적인 여인의 그림으로 오죽헌 뜰의 화단에서 자라는 식물과 풀벌레를 소재로 그린 것이다. 

'신사임당 신씨(1504~1551)'는 성심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다. 어려서부터 경문을 익히고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고 있다. 신사임당 신씨는 1504년 이곳 오죽헌에서 태어나 1551년 4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임당은 효녀로, 어진부인으로, 문학가로, 교육자로, 서예가로, 그리고 화가로 알려져있다. 

특히 그림과 자수에 뛰어났는데 당시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 8폭은 숙종 임금이 대궐에 병풍을 치고 감상하였으며, 좌의정 권상하는 이를 보고 "실물과 똑 같아 줄기와 잎사귀는 이슬을 머금은 것 같고, 풀벌레는 살아 움직이는 것 같으며, 오이와 수박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몰래 입에 침이 흐를 지경이라 하면서 천하의 보배"라 감탄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당대의 여인으로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보여준 것을 할 수 있다. 

오죽헌 뜰 안에는 오죽헌을 상징하는 줄기가 검은 대나무와 배롱나무, 율곡 송이 자라고 있다. 배롱나무는 꽃피는 기간이 100일이나 된다고 하여 '백일홍(百日紅)'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배롱나무는 고사한 원줄기에서 돋아난 새싹이 자란 것이므로 나이를 합치면 600년이 넘는다. 사임당과 율곡 모자가 어루만졌을 이 배롱나무는 강릉시의 시화(市花)로 지정되어 있다. 

강릉 오죽헌에서 만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_3
강릉 오죽헌에서 만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_3

율곡송도 오늘날 오죽헌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써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율곡송 소나무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군자(君子)식물이다. 곧은 덕과 굳센 절개에 대하여 옛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율곡송을 한참 바라보노라면 청아한 운치를 느끼게 되었다.

오죽헌은 한나라의 여인으로 상징되는 인물이자 현모양처로 자식을 훌륭하게 양육했던 신사임당이 기거했던 곳으로 단순한 역사유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한 인물이 태어나고 업적을 남기는 과정에서 어떠한 역사와 역경이 살아 있었을까하는 많은 생각을 하며, 추석연휴를 맞아 강릉 여행 중 생각에 잠기어 보았다. 

강릉 오죽헌에서 만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_4
강릉 오죽헌에서 만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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