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광교호수공원을 걸었다.
바쁘게 세상을 살다보면 계절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요 며칠 동안 업무로 인해 적잖이 스트레스가 쌓였나보다. 살아가는 것이 그렇다보면 세월이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조차 감각이 무뎌진다. 그런 와중에 가까운 친척 어른이 세상을 떠나셨다. 괜히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고 불안하기까지 하다.
답답한 마음을 좀 풀어보려고 광교호수공원으로 나갔다. 짝을 지어 호수공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한없이 행복해 보인다. 벤치에 앉아 고개를 첨� 하늘을 쳐다본다. 모르고 있던 사이 하늘이 부쩍 높아진 듯하다. 눈앞에 있는 나무들도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붉은 단풍보다도 이렇게 은은한 가을의 색이 더욱 좋다.
옛 원천저수지를 그려보다
원천저수지. 광교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이의동으로 유입이 되어, 이곳 광교호수공원인 원천저수지에 모여든다. 지금은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를 함께 묶어 광교호수공원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는 지금도 이곳이 원천유원지로 남아있다. 수원사람 누구나 한 번쯤은 이곳이 들려 추억을 만들어 가고는 했던 곳이다.
젊은 연인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 여기저기 쉴 수 있는 공간과 그네.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즐기고 있다.
낮과 밤의 시간이 같아진다는 추분이 23일이다. 그러고 보면 벌써 밤의 길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그동안 밤 시간에는 화려한 조명을 밝히는 이곳을 몇 번인가 돌아보았다.
"원천유원지의 옛 풍광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여기저기 그 당시의 흔적은 남아있네. 저쪽에는 산 뒤로 길이 있었고 그곳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곡차를 한 잔 하거나, 차 한 잔을 놓고 인생을 논하기도 했는데. 이젠 그럴 수 있는 장소들이 다 사라져버려 아쉽기도 하구만. 세월은 모든 것을 다 바꾸어 놓고 있네."
함께 동행을 한 지인이 하는 말이다.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옛 원천유원지를 잊지 못하는가보다. 하긴 그런 사람이 어디 하나둘일까? 낮 시간에 처음으로 들린 광교호수공원. 가을이 벌써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와있었다. 이런 가을을 아직 느껴보지도 못하고 몇 년 인가 훌쩍 세월이 지나버렸다.
방죽위에서 보는 정경에도 가을이 깊어
가을에는 잠시 여행을 떠날 일이다.
그리 수선스러운 준비는 하지 말고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아무데라도
가을은 스스로 높고 푸른 하늘
가을은 비움으로써 그윽한 산
가을은 침묵하여 깊은 바다.
우리 모두의 마음도 그러하길.
가을엔 혼자서 여행을 떠날 일이다.
그리하여 찬찬히 가을을 들여다 볼 일이다
박제영 시인의 '가을에는'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한다.
나도 이 가을에는 고향을 찾아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다. 세상을 훌쩍 떠나 먼 길을 걸어가실 어른의 명복을 빌어드리며 여행을 떠나고 싶다.
부쩍 높아진 하늘과, 벌써 나뭇잎에 내리 앉기 시작한 붉은 색. 이 가을에 광교호수공원은 나에게 연한 가을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