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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단한분의 ‘나의 어머니’
어머니 사랑합니다!
2014-10-14 16:04:40최종 업데이트 : 2014-10-14 16:04:40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세상에 존재하는 단한분의 '나의 어머니'_1
어머니 생신.

오늘은 세상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효도 할 수 있는 나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의 어머니는 나를 낳아주신 분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남편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시어머니시다. 사랑이 넘치시는 우리 어머니는 여자들이 그렇게 싫어 한다는 '시'자가 들어가는 '시어머니'이시지만 내게는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어머니이시니 굳이 '시'자를 붙여 친정어머니와 구분 지을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결혼 할 당시에는 양가 어머니 두 분만 살아 계셨고 양가 아버님 두 분은 돌아가신 이후라 시아버지 사랑을 받고 싶었던 나는 내심 서운했다. 

우리 시어머님은 전형적인 아들 선호사상으로 무장한 우리네 한국 어머니셨다. 어머니 생신이 한여름이라 항시 생신날에 아들들이 좋아하는 보양식을 손수 마련해 주시곤 했다. 시장에서 토종닭을 사다 가마솥에 푹 고아 아들 입에 들어가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시는 정말로 옛날 분이셔서, 처음에 시집 와서는 아들만 최고로 여기시는 어머님께 서운한 적도 있었다. 
한분 계신 시누이께서도 "우리 엄마는 오로지 아들들 밖에 모르셔!"하시며 가끔 투정 아닌 하소연을 하시곤 할 정도로 아들사랑이 지극하신 분이시다.

친정어머니는 시어머니보다 두 살이 많으셨는데 몇 년 전 돌아가시고 안 계신 탓에, 이제 내가 효도 할 수 있는 어머니는 이 세상에 한 분만 남은 셈이다. 친정어머니 살아 계셨을 때는 약간의 경쟁 심리가 발동하기도 해서 명절 때마다 시댁을 가느라 한 분 뿐인 친정어머니께 못가는 것에도 불만이 있었고, 어머니들 용돈 드리는 것도 똑같이 드려야만 자존심을 지키고 효도하는 길이라 생각해서 사소한 일에도 효도의 양을 따지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후회 할 일이 많아 졌다. 살아 계실 때 좀 더 잘 해드릴걸, 하는 후회는 아무래도 자식들의 단골 멘트인 모양이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한분 남은 어머님께라도 효도를 해야지 어머니 돌아가신 이후에 후회로 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항시 들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게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낼 수 없었고 무엇보다 며느리들을 아들처럼 살갑게 대하시지 못하는 우리 어머님과 친정엄마처럼 가까워 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떤 계기가 있기 전에는.

그러다 작년 말에, 어머니께서 무릎이 아프셔서, 수원에 인공무릎 관절 수술로 유명한 병원에서 인공 관절 수술을 받으셨다. 며느리 다섯명 중에 수원과 분당에 사는 세 며느리들이 번갈아 가며 병 수발을 했다. 처음에는 직장일로 피곤한 몸으로 퇴근해서는 어머니 병수발을 드는 것이 힘에 부쳤고 며느리인 죄로 아들들은 입원만 시키고 며느리들만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어 큰 효도를 하는양 남편한테 생색도 냈다. 그 속마음에는 내어머니가 아니고 남편어머니라는 생각도 조금은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 무릎 수술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하루 두 번 운동과 함께 씻겨드리거나 화장실 가는 일도 돌봐 드려야 하고 수술하며 생긴 상처가 아물면서 극심한 고통으로 어머니께서 극도로 예민해지셔서 짜증을 많이 내셨다. 세 며느리 중에 일요일은 어김없이 내가 당번이었다. 동서 둘은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교회를 빠질 수 없기에. 

일요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머니와 함께하다 보니 어머니와 대화도 많이 하고 무엇보다도, 같은 병실의 다른 분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이르렀다 별로 잘 한일도 없는데 주위 분들이 며느리들 칭찬에 침이 말랐고 그 소리를 들으시는 어머니는 내심 으쓱해 하셨고, 나중에 퇴원하실 쯤에는 그 병실(6인실)의 방장(?) 역할을 하고 계셨다. 
말씀도 많이 하시고 세 며느리가 극진하게 간호하고, 맛있는 것도 사다 나르다 보니 어느새 그 병실의 주요인물(?)로 급부상 하셔서 공용 TV 리모콘도 우리 어머니 몫이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병간호 하는 며느리들을 자랑삼아 소개하시기도 했다.

어머니는 평소에 며느리 자랑을 입에 담으시는 분은 아니셨다. 그런데 며느리들을 자랑스러워 하고 급기야 칭찬하시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문득 하시기도 했다. 나는 병간호도 제대로 못해 보고 떠나보낸 친정엄마 생각으로 어머니가 더욱 더 소중하고 가까워져서 허물이 없어졌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평생 받아보지 못한 며느리들의 극진한 간호에 마음을 여신 것 같다. 

퇴원하고 다른 아들집에서 좀 더 몸조리를 하시고 우리 집에서 설 명절을 지내고 나서 올 초에야 큰형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가시면서 평생에 처음으로 며느리들에게 "고맙다, 사랑한다, 수고 했구나!"라는 말씀을 하셨다. 감동이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전화를 드려도 며느리를 챙기시고 아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며느리들에게도 사랑 표현을 곧잘 하신다. "얘야, 내 걱정은 그만하고 니네 걱정이나 해라!" 하시며 낮 간지러운 말씀도 며느리에게 인심을 후하게 쓰신다. 아마 당신도 며느리가 아니라 자식이라는 생각이 드시는 모양이다.

내가 유일하게 어머니라 부르고 부모님께 사랑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세상에 단 한 분 나의 어머니 "당신을 사랑 합니다. 앞으로 효도 할게요. 오래오래 사셔요 어머니!"

어머니, 며느리, 간호, 병수발, 인공관절,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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