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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종교, 하지만 부처님 예수님 모두 좋다
2015-01-07 14:41:20최종 업데이트 : 2015-01-07 14:41:20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하고 누가 나에게 물을 때마다, 나는 조금은 망설이다 "그때 그때 달라요." 라는 답을 한다. 
언제인가부터 종교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정작 종교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게는 있다. 

나는 불교를 신앙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격하시고 미신을 별로 믿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어머니는 틈틈이 절에 가셔서 불공을 드리고 큰일을 앞두고는 절에 계시는 큰스님을 찾아 가셔서 상의하시고 신년 운세나 점들을 보곤 했다.
아버지는 크게 어머니를 나무라시지는 않았지만, 다른 종교가 없으셨기에 그냥 불교가 우리 집의 종교라 묵인하는 분위기에서 컸다.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는 주위에 불교가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나의 종교가 불교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학창시절 가정 조사서에 종교 란에 딱히 쓸 종교도 없고 해서 불교라고 적을 때가 많았다. 대다수의 불교 신자들은 가끔씩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것만으로도 불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시간을 맞추어 일요일이면 절에 가야 한다거나 하는 귀찮은(?)일이 없었기에 어머니의 불교 신앙을 존중하고 따랐던 것 같다.

그런 어머니는 집안에 큰일이 닥칠 때 마다 절에 불공을 드리러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시는 신앙심이 깊은 불자이셨다. 결혼하기 전 지금의 남편과 삼년을 교제했는데도 남편의 집안이 기독교 인줄은 까맣게 몰랐고 더군다나 남편의 대학시절에 기독교 청년회에서 활동을 했는지도 금시초문이었다. 

남편의 끈질긴 구애 끝에 친정어머니의 허락을 얻고 난후 또 미래의 시어머니께 첫인사를 드리러 남편의 시골집을 방문해서야 남편 집안이 기독교를 종교로 둔 집안이며 어머니를 비롯한 1녀 5남의 자식들이 모두 기독교를 모태신앙으로 두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무종교, 하지만 부처님 예수님 모두 좋다 _1
시동생이 장로로 있는 교회

어머니는 첫인사에 "한줌 밖에 되지 않은 야리야리한 몸으로 우리 아들 밥이나 제대로 해줄지 걱정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집안은 기독교를 믿으니, 친정이 불교라 하여 걱정이 되는구나..."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나는 속으로 너무나 예기치 않은 일임에 당황하여 배시시 미소 띠며 침묵으로 일관 했다. 
미래의 남편이 혹여 어머님이 딴 말씀으로 내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노심초사 하는 것이 보여 별말 않고 인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그동안의 사연을 다그쳤다. 

사연은 이러했다. 결혼에 골인하기위해 장모님께 기독교 집안이라 하면 반대 하실 것 같아서 일단 점수부터 따고자 비밀로 했고 그동안 우리 집에 와서는 제사도 지내고 미래의 장모님 모시고 절에도 가서 불공도 드리고, 그리고 어쩌다 일요일 시골집에 가게 되면 또 어머님 모시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열심히 보았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였다. 일단은 장모님의 허락으로 결혼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께는 무조건 결혼해야 하니 미래의 신부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어머니께 신신당부 했지만, 평생을 교회에 다니시는 어머니 눈에는 예비 며느리 감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탐탁치 않으셨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 그것도 효자인 둘째 아들이 장가를 가기위해 마음고생 하는 것이 안쓰러우셔서 흔쾌히 승낙 해 주셨고 남편도 평생 종교의 자유를 보장 하겠노라는 각서와 함께 기독교 아들과 불교 며느리가 결혼을 하여 결국 무종교인 부부가 탄생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이 종교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보다 몇 년 앞서 결혼하신 첫째 아들의 아내 즉 나의 손 위 동서의 집안도 불교였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 손 위 동서는 어머니와 한집에 같이 모시고 사는 처지라 어머니의 근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부부는 서울에 신혼살림을 차렸기에 어머니의 간섭은 벗어 날 수가 있었고 종교를 제외 한 다른 것으로 어머니가 예뻐 해 주시는 덕에 지금까지 무종교로 살아올 수 있었다. 
나 역시도 결혼한 후에는 친정에 가면 아버지 제사를 지내며 초파일에는 친정엄마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또 시댁에 내려갔을 때 일요일이 걸쳐 있을 때는 어김없이 교회에 가서 권사이신 우리 어머니의 "둘째 며느립니다!"하며 공손하게 목사님께 어머님의 체면을 세워 드리는 일을 마다않고 있다. 

결혼 한지 한 십년이 넘게 교회에 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주기도문이 외워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고마운 것은 시댁 식구들이 종교를 빌미로 나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불교 집에서 시집온 나의 손위 형님도 결국은 어머니의 권유로 기독교 집사가 되고 나서도 기독교가 아닌 집은 시댁에서 우리 집 뿐 이었지만 속으로는 걱정을 많이 할진대, 내색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다려(?) 주고 계신다는 것이다. 

불교 신자이신 친정어머니가 3년 전 83세의 연세로 별세 하시고 나니, 친정어머니 때문에 무종교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던(?) 나의 핑계가 사라 진 셈이 되었다. 지금도 어머니는 새벽같이 자식들 기도를 위해 교회에 나가신다. 우리 가족이 별 탈 없이 잘 살아 온 것도 부모님의 기도나 불공 덕분인 것도 같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 하신다. "천국에 갔는데 너희 가족만 없으면 어쩌냐?" 가슴에 콕 박히는 말씀이시다. 25년을 무종교로 살았는데 언제인가부터 종교란에 가끔씩 '기독교'라고 적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절에 가질 않아서 그런가?' 하고도 생각 해 본다. 

나이가 먹음에 가끔씩 종교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두 분 어머니 덕에 기독교도 불교도 나에게는 거부감이 없다. 아무도 나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도 안다. 

인간이 나약할 때 신을 찾는 것도 맞는 것 같다. 가끔씩 어머니의 새벽기도 가시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둘째 며느리 예뻐해 주시는 사랑도 신의 사랑 버금간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 있어 종교는 어머니의 사랑, 그것과 동격이다. 그래서 무종교이지만 기독교도 나의 종교라는 생각도 든다.

기독교, 불교, 무교, 박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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