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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부모노릇도 힘들단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요즘자식들
2015-01-12 15:54:17최종 업데이트 : 2015-01-12 15:54:17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얼마 전 작년 12월에 작은애가 시험을 보았던 '2015학년도 경기도 중등임용고시'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오전 10시에 발표가 있는 것을 알고는, 나와서 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합격을 했으면 금방 연락을 했을 터인데 연락이 없자 불안해하고 있는데 오전 11시가 넘어서 딸에게 '불합격'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의 상심은 둘째라 치고 작은애는 여태껏 좌절을 맛 본 적이 없는 터이라 어떻게 위로해 줄까 고민하고 있는 차에 넷째 동서에게 전화가 왔다. 

"형님! ○○는요? 우리 ○○는 일 년 더 공부해야 하네요! 한 번에 붙기 정말 힘든가 봐요.. ○○는 제 방에서 싸 매고 누워 실망을 못 감추네요!"한다. 
"우리 딸도 떨어졌다고 방금 전화가 왔네! 어쩌겠어? 둘 다 일 년 더 투자해야지..." 하고 전화를 끊었다. 1녀5남의 시댁 형제 중 둘째아들의 딸인 우리 딸과 넷째아들의 딸인 조카가 이번에 같은 경기도에 같은 영어선생님 시험을 본 터였다. 

두 손녀가 시험을 앞두자 어머니는 두 손녀를 위해 새벽 기도를 마다 않으셨을 터, 누구 하나라도 붙어야 했을 시험에 둘 다 낙방이라니 누구보다 어머니의 상심이 크셨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집으로 들어가 어머니와 시누이님께 전화를 드리고 작은 애한테 사촌언니의 불합격 소식을 알렸더니 "언니라도 붙었으면 나도 자극 받고 내년에는 꼭 붙을 텐데..."하며 말끝을 흐린다. 딸아이의 말이 100% 진심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에이, 언니만 붙고 너만 떨어 졌으면 더 상처 받았을 거면서?" 하니 배시시 웃으며 긍정도 부정도 안하는 폼이 자신도 딱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복잡 미묘함을 딸의 표정에서 느꼈다. 

"그나저나 할머니께서 두 손녀가 다 떨어졌으니 상심이 크시겠다. 내년에는 둘 다 열심히 해서 꼭 붙어야해!"하니 평소에 언니와는 달리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애가 '위로주(?)'를 사달란다.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하고 해서 잘 가는 숯불갈비 집을 찾았다. 맥주를 시키려니 소주의 쓴맛을 느끼고 싶다며 소주를 시켜달란다. 
나 참 엄마도 잘 못 먹는 소주라니...오가피주를 한 병 시켜 먹었다. 소주는 목에서 안 넘어가는데 약간의 달달함이 있어 둘이 1병을 남기지 않고 갈비를 안주삼아 다 먹었다. 

그 날 이후로 어른들의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둘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며칠간 카톡을 주고받더니 너무 실망을 감출 수 없어 힐링이 필요하다며 또 다른 사촌 동생이 유학하고 있는 필리핀에 1달간 여행을 다녀온 후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 하자는 제안을 사촌 언니가 했다며 아빠에게 허락을 맡아 달라 청한다. 
필리핀에는 사촌언니가 6개월간 공부를 하고 온 곳이라서 사촌언니는 익숙하고, 무엇보다 필리핀에 살고 있는 사촌동생이 숙식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오라 하니 좋은 기회라 한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남편은 "아무리 오라고는 했지만 ○○도 공부 하는 곳에, 둘이나 가서 민폐이고 필리핀은 작년에 여행으로 다녀왔고 무엇보다 치안이 불안한 나라인데 여자애들 둘만 보내기 불안하니, 차라리 당신이 애 데리고 안전한 나라로 여행이나 다녀오는게 낫지 않겠어?"한다. 
사실 둘을 다 보내는 것이 셋째아들의 딸인 조카에게 민폐가 될 것은 확실했고 넷째아들의 딸은 이미 6개월간 같이 지내 본 터라 혼자 가는 것이 더 편안 할 것도 같아 딸 애 더러 우리 집은 따로 간다고 사촌언니한테 이야기 하라하니 딸도 엄마와 같이 여행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얘들아! 부모노릇도 힘들단다_1
딸들과의 필리핀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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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부모노릇도 힘들단다_2
스위스의 알프스산맥
 
딸은 신이 나서 자신이 가보지 않았던 여행지를 물색하느라 여념이 없다. 맘 놓고 해외여행 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나는 극기 훈련을 시키고자 캐나다에 로키산맥을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니 너무 추워서 싫단다. 편안하고 힐링이 될 수 있는 지역으로 어디로 갈까 몇날 며칠을 검색 하더니 홍콩으로 자유여행을 가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이고 외고를 나와서 중국어를 배운지라 이참에 영어와 중국어를 마음대로 써 보고 싶으니 자신만 믿고 엄마는 따라오면 된단다. 

한 번씩 가 본 곳을 다시가기는 이번의 기회가 아깝고, 다른 곳은 자유롭게 다니기 불편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패키지는 가기 싫어서 정한 자유 여행지란다. 3박 5일 일정인데 생각보다 가격도 비싸지 않기에 그러자고 승낙을 했다.

참 요즘 자식들 우리 때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우리들이 자식일 때는 무슨 시험이라도 떨어지고 나면 지원해준 부모님께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못 들고, 다음 번에는 실수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자신보다 부모님 기분을 더 살폈다.
그런데 요즘은 시험에 떨어진 것이 무슨 부모 탓이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해서는 '여행을 가야한다', '힐링이 필요하다' 유세를 떠니 하자는 대로 해 주지 않았다가는 내년에 또 시험에 떨어지면 부모 탓이라 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 들어줘야 하니 부모노릇도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식 남의 자식 할 것 없이 속이 없는 자식들이 괘씸하지만 어떡하겠어? 그래야 다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하니...' 부모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털 것은 털어 버리고 새롭게 시작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이번 주말에 출발하는 비행기와 호텔로 예약을 하라고 하니 딸애는 물 만난 고기 마냥, 신이 나서 예매를 해 댄다. 
공항 면세점도 들러야 한다며 인터넷 면세점에서 화장품도 주문 한다. 딸의 당당함에 어이가 없어 " 야, 딸아! 시험에 떨어진 것이 무슨 유세냐?" 소리친다. 
딸 애는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드는지 "엄마 여행 다녀와서는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에는 꼭 붙을게용!" 하며 애교도 없는 애가 콧소리를 낸다. 

얘들아! 부모노릇도 힘들단다_3
에펠탑에서 바라 본 파리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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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부모노릇도 힘들단다_4
프랑스 파리 전경

부모노릇 힘들다.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부모노릇 이라면 이참에 엄마인 나도 힐링이 되는 여행을 하고 와야겠다. 
딸만 믿고 가는 자유여행이니 딸만 의지하고 딸과의 추억을 쌓고 오는 즐거운 여행이 되길 기도하고, 딸애도 즐거운 여행으로 시험에 떨어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또 다를 희망찬 내일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행, 힐링, 파리, 홍콩, 필리핀.박효숙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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