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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축구사랑에 대응하는 나만의 방법
2016-11-30 17:49:34최종 업데이트 : 2016-11-30 17:49:34 작성자 : 시민기자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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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장, 더운 여름날에도 갔다. 남편은 축구를 좋아한다. 아니다. 내가 봤을 땐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사랑한다. 축구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우리는 이따금 '서로의 소원 들어주기' 놀이를 하는데 그의 소원은 늘 거기서 거기다. 축구 경기 같이 관람하기! 매번 오케이 한 건 아니지만 내 딴에는 많이 들어줬다. 클래식(1부 리그)은 물론 챌린지(2부 리그) 경기까지도. 출산 후 조리원에 있을 때 남편의 소원은 이거였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하는 경기 보고 와도 될까?" 내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말하는 모양새가 불쌍해 가라고 했다. 이 남자 말로는 어렸을 때 처음으로 꾼 꿈이 축구선수였단다. 전문화된 축구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중학교에 가고자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접어야 했다. 그래도 원없이 축구를 했단다. 고등학생 때도 저녁밥을 굶어가며 공을 차야 공부가 잘됐다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직업군인인지라 지금도 '군대 축구'를 자주 한다. 실력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선배들에게 곧잘 이런 말은 듣는단다. "너는 비행은 못하는데 축구는 잘한다?" 기뻐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 걸까 싶을 찰나, 남편이 해맑게 한술 더 뜬다. "내가 축구를 진지하게 했으면 지금 기성용급은 됐을 거야." 기가차서 말이 안 나왔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나는 생각날 때마다 이유를 묻는다. "축구가 왜 좋아?" 그럴 때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혹은 "비행 안하니까." 말을 말자.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나나미는 이탈리아에 살며 그 나라 사람들이 왜 축구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를 연구했다. 대개의 경기가 1-2점이라는 적은 점수를 두고 22명의 남자들이 박력있게 전투를 한다는 점, 경기장이 광활한 잔디라는 점, 다리에 현란한 기술이 요구되는 구기종목이라는 점, 선수들 각각 위치와 역할이 있지만 적당한 장소에 공이 오면 가변적으로 넣을 수 있다는 점, 야구와 달리 출전을 하면 감독이 관리하는 범위가 적다는 점, 점수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아 관중이 감정이입을 잘 할 수 있다는 점 등등이다. 꽤 그럴싸하지 않는가? 그래서 난 요즘 그의 취미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전혀 다른 세계의 애인이라며 시샘하는 것도 그만뒀다. 아니 오히려 돈 안드는, 건전한 취미를 가진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관심'하나를 더 보탰다. 내 나름대로 애정어린 시선으로 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네이버 스포츠 뉴스를 내 입으로 읽어준다던가, (스포츠 아나운서처럼.) 사전에 축구팀 경기 일정을 검색해서 가까우면 가라고 귀띔해준다던가, 온라인 축구게임 피파를 하고 오라고 하다던가. ![]() 축구 경기장에서. 확실히 이런 긍정적인 지지를 마다하지 않는 걸 보니, 남편도 내 행동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그가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좋다. 그리고 나도 하나의 꿈이 생겼다. 앞으로 10년 안에 남편과 아들에게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티켓을 선물해주는 것이다. 물론 내가 번 돈으로 말이다! 엄마가 포메이션이나 전술, 축구 규칙 등은 몰라도 이런 물질적인 지원까지 해준다면 꽤나 근사해보일 것 같다. 배우자의 취미 하나로 내게도 꿈이 생기다니, 행복한 일이다. 아, 물론 지금은 수원 FC와 수원삼성블루윙즈 티켓을 사주는 걸로.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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