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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졌으면
2017-03-08 14:48:03최종 업데이트 : 2017-03-08 14:48:03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예전에 결혼하기 전에 친정어머니는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한숨을 쉬시며 "어디 하늘에서 돈다발이나 떨어졌으면 좋겠다"며 돈 걱정을 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많다.
어려운 환경에서 대학을 다녔기에 졸업과 취업을 동시에 할 수 있었고, 첫 월급을 타서 어머님 내의와 함께 그 당시 두둑한 현금봉투를 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기념일 날 사드리는 옷이나 식사대접이나 그 무엇보다도 현금이 두둑하게 든 봉투를 더 선호하셨고, 어느새 나의 머리속에는 어른들은 돈봉투를 좋아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결혼 후에 첫 시어머니 생신 때도 '어머니는 돈 봉투를 좋아 하실거야'라는 생각에 케이크와 함께 역시 현금선물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3명의 손아래 동서들이 시댁에 들어왔고 동서들은 어머니 생신 때면, 옷이며 화장품이며 모자며 가방 등을 사다드렸다. 의외로 어머님이 참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어머니께 드리는 현금선물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시어머니는 전형적인 우리시대의 옛날 부모님이다. 매달 자식들이 보내드리는 용돈으로 당신을 위한 물건을 사는 것에는 인색하시다.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 외에는 정작 당신의 옷을 산다거나 물건을 사는 일은 거의 드물다. 
같이 사는 손주들 용돈이나, 명절 때 내려오는 가족들 속옷, 그리고 교회에 내는 헌금, 그래도 남으면 틈틈이 모아 두셨다가 자식들을 위해 쓰신다.
그러기에 간혹 자녀들이 사다 드리는 물건들이 많이 고맙고, 혹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타박하시는 법이 없으시다. 그래서 요즘에는 나도 현금봉투 외에 어머니를 생각하며, 평소에 어머니가 뭘 필요해하실지를 많이 생각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정이 쌓이는 것을 느낀다. 

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졌으면_1
딸애가 내미는 생일선물 돈다발, 친정어머니가 좋아하는 거였는데..

어제 저녁 식사 후에 아파트 단지 내에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식구들이 다 자려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밤늦게 집안에 들어가니, 온가족이 자지는 않고 케이크를 준비하고 내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은 오늘이 내 생일인데, 전야제로 축하를 해 주는 이벤트였다. 어제는 식구들이 모두 밖에서 저녁을 먹었기에 오늘 저녁 같이 식구들이 외식을 하기로 하고, 혹시 내가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삐질까봐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한 모양이었다. 

며칠 전부터 웬일인지 큰애가 엄마 봄옷을 한 벌 장만해 주겠노라 너스레를 떨며, 같이 사러 쇼핑을 가자며 졸랐다. 나는 "그냥 현금으로 주면 사 입을게"하였더니 큰애는 현금은 없고, 회사 복지카드로 사주겠다며 같이 가자고 하였는데 귀찮기도 해서, "엄마 마음대로 골라 사고 싶으니 복지카드로는 네 봄옷이나 사라"하고 거절한 적이 있다. 

속으로는 미리 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마도 딸이 내 생일 선물로 옷을 사주겠다고 하는 것이라 짐작을 하였고, 그래서인지 딸은 끈질기게 나를 졸라서 결국 이번 주말에 같이 쇼핑을 하기로 약속을 하여 두었다. 그러기에 이번 나의 생일에 큰애의 선물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어젯밤 나의 생일파티에 초콜릿 다발에 현금을 끼워 넣은 돈다발을, 생일선물이라며 내민다. 

반색을 하며 "이거 뭐야? 웬 돈다발?" 하고 좋아하니, 딸은 의기양양 "엄마 좋아 하는 것 돈다발 아냐? 외할머니가 좋아하셨던 거라면서?"하며 주말에 사주기로 한 옷 선물은 보너스 선물이라고 한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우울한 일이 많았는데,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듯 했다. 액수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거 다 얼마냐?"하고 속물인 나는 묻고 말았다. "삼십만원"이라고 짧게 답한다.
오만원권 다섯장과 나머지 만원권으로 돈다발을 만든 딸애가 기특해, 그동안 별 일 아닌 일로 야단쳤던(나는 혼냈다고 하고, 딸은 엄마혼자 삐졌다고 말한다) 일이 새삼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생일 날 뚝 떨어진 돈다발을 보며,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많이 한다. 살아 계셨다면 얼마 뒤 생신이신 우리 어머니께 진심으로, 나도 이런 돈다발 만들어 선물하고 싶다. 어머니 생신이면 별다른 생각 없이 현금봉투만 삐죽 내밀었던 내가, 자식에게 이런 감흥을 받고 보니 새삼 반성이 된다.
자식들 등록금 때만 되면 돈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셨을 어머니, 꿈에서나마 돈벼락 맞고 싶다던 친정어머니가 많이 생각나는 생일날이다. 돈이 다는 아닐지언정, 돈이 있어야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던 시절을 사시다가, 돈 한번 원 없이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왠지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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