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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 젊은이들만 즐긴다고?
2017-03-13 18:51:09최종 업데이트 : 2017-03-13 18:51:09 작성자 : 시민기자   박효숙

요즘 젊은이들은 왜 그리 챙겨야 할 기념일이 많은지, 나 같은 기성세대들은 제과업체의 상술이라고 치부하며, 그동안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난 번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를 기념하여 딸이 회사 동료들에게 준다며 집에서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의외로 초콜릿 만드는 일이 재미있어 딸에게 이번 화이트데이에는 그런 것 안 만드냐고 물었다.
돌아온 딸애의 말로는 화이트데이는 2월14일 발렌타인데이에 받은 초콜릿의 답례로, 남성이 여성에게 3월 14일 사탕으로 답례를 하는 날이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발렌타인데이에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 선물했으니, 아마도 동료들이 화이트데이인 내일, 자신에게 사탕선물을 할 것이라며 벌써부터 김칫국을 마신다. 

'오호. 나도 남편에게 수제로 만든 초콜릿 선물을 했으니, 이번에는 남편이 내게 사탕 선물을 하는 거라고?' 하며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남편은 이런 날을 알고 챙길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한가닥의 기대를 버리지 않는 이유는 이제 딸들이 성장하니, 이런 멋없는 아빠를 나름대로 코치해주며 사랑받는 남편이 되라고 강조하기에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딸들은 어렸을 때부터 아빠를 무진장 좋아하며, 철이 들기 전에는 아빠처럼 자상한 신랑감을 찾겠다고, 엄마 아빠의 로맨스를 묻기도 하였다. 그러나 딸들이 생각하는 아빠와 내가 생각하는 남편은 다른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언젠가 딸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 아빠는 엄마에게 어떻게 프로포즈했어요? 무슨 이벤트로 엄마한테 청혼했어요?" 하고 말이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오랫동안 교제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을 하게 된 것 같은데, 요즘 애들이 말하는 거창한 프로포즈를 받은 기억은 없다. 그래서 단호하게 "너희 아빠 그렇게 멋진 남편은 아니야"하고 딸들의 아빠에 대한 환상을 깨게 만든 것 같다. 

그 이후로 딸들은 아빠에게 엄마에게 다정하게 해야 노후가 편안할 것이라며, 나름대로 여러 가지 코치를 하는 것 같다. 덕분에 요즘은 간혹 그동안 하지 않던 선물도 잘하고, 우리가 결혼하던 그 당시에는 별도로 청혼 퍼포먼스를 즐기는 연인들은 별로 없었다며, 자신을 합리화 시키며 새삼 우기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지난일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정말 백세시대라 하면 앞으로 둘이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데 말이다. 아직은 출가하지 않은 자식들이 둘이나 버티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아이들은 자신들이 떠나고 난 후에 우리 부부가 더 사이좋게 노후를 즐기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듯하다.

화이트데이, 젊은이들만 즐긴다고?_1
화이트데이를 젊은이들만 챙기라는 법이 있는가?

오늘 비로소, 내일이 화이트데이라며 남편에게서 사탕바구니 선물을 받았다. 아마도 딸애가 코치하여 사다준 바구니에 살짝 손편지 한 장만 얹어, 자상한 남편이라 내게 어필하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얼마 만에 남편에게서 받아 본 손편지인가?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내일이 젊은이들이 즐긴다는 화이트데이라네요. 결혼하여 두자녀 낳고 살다보니, 어느덧 당신께 무심한 남편이 되어있어 미안하오. 당신과 함께해온 지나온 날들의 다복한 시간, 이제 더 가야 할 시간을, 더욱 소중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서 노후를 아름답게 꾸미었음 하는 바람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니까 잊지 말고요. 사랑하는 남편이'

나는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손편지를 자주 수줍게 내밀던, 20대 후반의 젊은 청년시절의 남편을.
지금은 머리숱이 줄어 머리에 탈모약을 바르고, 눈가에 깊게 패인 주름과 함께, 조금만 운동하면 허리가 아프다며 엄살 피우고, 그저 맛있는 음식 하나에 고마워하는 같이 늙어가는 중년의 남편...같이 늙어 가기에 서로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짝이라 생각하니, 이제는 사랑보다는 연민이 느껴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화이트데이는 젊은이들만 즐긴다고? 아냐 중년의 우리도 화이트데이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이번 주말에는 우리도 신혼시절 즐겨 찾던 남양주의 한 카페를 찾아, 커피도 마시고 그윽한 중년의 사랑을 느껴볼 참이야. 기대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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