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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갓집에서 보낸 짧은 하루
풍산류씨 대종택인 '양진당'에서 하룻밤을 유하다
2017-04-24 11:15:00최종 업데이트 : 2017-04-24 11:15:00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종갓집' 듣는 것만으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단어다. 유교사회에서 종갓집은 커다란 의미와 무수히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다. 

한때 나의 별명은 '태순'이었다. 텔레비전에 푹 빠져 지낸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그런 내가 지금까지 봤던 수많은 드라마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아했던 드라마가 있다. 십 여 년 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로 어느 종갓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가문의 영광'이란 드라마다. 한 가문을 이어나가기 위해 가문의 구성원들이 희생 하는 것이 무엇인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었던 드라마다. 그러면서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이야기한 드라마였다. 

한 집안의 대를 이어간다는 것, 특히 종갓집의 대를 이어간다는 것은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와 역사가 숨어 있을 것이다. 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몇 사람의 아픔과 눈물쯤은 모른척했을 수도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래서 종갓집은 내게 썩 호감 가는 단어는 아니었다. 
그런 내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며 종갓집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종갓집은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귀하게 여기는 따뜻함이 있었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도리가 우선이기에 때로는 우직해보이기도 미련해보이기도 하는 이들이 종갓집을 지키는 이들이었다. 

안동 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안동 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안동 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안동 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며칠 전이다. 드라마 속에서만 보았던 그 종갓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풍산류씨 대종택인 양진당에서다. 여고시절 친구들끼리 1박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의 목적은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것이었다. 친구 중 한 명의 버킷리스트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하늘을 날아보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네 명의 친구 중 가장 겁도 많고 몸도 약해 늘 비실거리는 친구의 도전에 나머지 세 명의 친구들이 말렸지만 죽어도 도전해봐야겠다는 친구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패러글라이딩 장소로는 단양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는 정보였기에 단양 근처로 가볼만한 곳들을 몇 군데 선정하였다. 그러면서 단양과 가까운 안동 하회마을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다. 

옛날 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된 하회마을은 초가집과 기와집들이 적당히 섞여 있다. 몇 년 전 하회마을 숙박경험이 있었기에 이번 여행에는 명문가의 고택에서 하룻밤을 유하는 호사를 누려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며칠에 걸쳐 열심히 알아보고 결정한 곳이 바로 양진당이었다. 그저 이름 없는 고택에 비해 숙박료는 다소 비싼 편이었지만 친구들의 만장일치로 양진당이 숙박지로 결정되었다. 
양진당의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준 야경이 예쁘다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야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시골의 밤 10시는 한참 단잠에 빠져들 시간이기에 죄송스러운 마음이었으나 친절하게 맞아준 이는 풍산류씨 대종택을 지키는 종부였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이부자리와 욕실 사용에 대한 몇 가지 설명을 듣고 잠자리에 들었다. 고택에서의 잠자리는 아주 편안했다. 함께 한 몇 번의 여행 때마다 거의 잠을 자지 못했던 친구조차 새근거리며 단잠을 잘 정도로 편안한 잠자리였다. 한옥의 편안함이 단잠을 자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나누고 있을 때 아침식사를 하라는 주인아주머니의 전화가 왔다. 
우리가 지불한 숙박료는 말 그대로 하룻밤 자기 위한 숙박료였을 뿐이다. 식사비용이 포함된 금액이 아니었던 것임에도 종부의 인심은 아침식사까지 챙겨준 것이다. 

양진당 종부의 인심으로 대접받은 아침밥상, 이후로도 몇 가지의 반찬이 더 상에 올랐다.
양진당 종부의 인심으로 대접받은 아침밥상, 이후로도 몇 가지의 반찬이 더 상에 올랐다.
 
있는 반찬 그대로 차렸다면서 어느 틈에 녹두를 넣은 닭백숙까지 끓여놓았다. 상에 오른 반찬들은 역시 명문가의 종부답게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염치없지만 맛깔스러운 반찬에 아침부터 밥을 두 그릇씩이나 먹은 친구도 있었다. 나 또한 밥 한 그릇에 죽 한 그릇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아침밥을 먹고 나니 상 위에 놓인 그릇들이 텅 비었다. 직접 국화를 따서 말렸다는 국화차와 한과로 디저트까지 거창한 아침식사를 했다. 
우리가 아침을 먹은 방은 마치 작은 박물관 같았다. 오래되었지만 기품 넘치는 생활용품들이 아기자기 진열장에 놓여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종부가 집안을 구경시켜주겠단다. 600년 세월을 지켜온 양진당은 집 전체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크게 사랑채와 안채로 분리된 양진당은 남자들의 공간인 사랑채로 들어가는 솟을대문과 여자들의 공간인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분리되어 있다. 분명히 바깥에서 보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지만 집안에서는 서로 연결이 되어 있어 동선을 최소화한 지혜로움이 엿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안채의 며느리방에는 사랑채 쪽 벽으로 작은 문이 하나 나있다. 아래에서 위로 들어 올려야 밖이 보이는 구조라 밖에서는 이쪽을 보기 힘들지만 문을 들어 올리는 정도에 따라 바깥의 상황을 살필 수 있게 되어 있는 문이다. 이 문의 용도는 사랑채 댓돌 위에 놓인 신발로 사랑채를 찾은 손님의 수를 확인하고 음식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이 또한 지혜로움이 넘치는 건물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양진당의 안채에는 수 십 개의  소반이 놓여 있다. 종택을 찾는 손님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양진당의 안채에는 수 십 개의 소반이 놓여 있다. 종택을 찾는 손님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랑채 대청 뒷문을 통해서 부용대가 마치 액자에 담긴 그림처럼 다가오는 양진당, 연꽃모양의 하회마을에서 양진당은 꽃술에 해당하는 곳이고 바로 옆집은 서애 류성룡 대감의 집인 충효당이다. 

양진당은 서애 대감의 아버지인 입암선생이 살았던 집으로 서애의 형인 겸암선생의 후손이 대종택을 지키며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종갓집이다. 입암고택이라 부르기도 한다. 원래 아흔아홉 칸이었으나 현재는 쉰 세 칸만 남아 있다고 한다.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이자 풍산류씨 대종택을 찾은 이들은 다양하다. 
우리처럼 평범한 이들도 있지만 대한민국을 방문한 외국손님들이나 고위직 인사들도 많다고 한다. 그들이 남기고 간 선물만 해도 상당수인데 60대의 종부 혼자 그 넓은 고택의 살림을 하고 있다. 

아들이 둘인데 아직 며느리는 보지 못 했다고 하는 종부의 말에 일 년 제사만 열한 번을 지내는 친구는 남의 일 같지 않은 현실에 걱정이 태산이다. 친구 역시 종갓집의 종부로 살기에 종부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품위 넘치고 좋아 보이는 종갓집 대저택의 집 안팎으로는 일거리가 널려 있어 함께 손 걷어붙이고 도와주고 싶을 정도였음에도 하루 묵어가는 손님들에게 예정에 없던 아침밥까지 정갈하게 차려내준 그 마음 씀이 바로 종갓집을 이어가는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끔 내로라하는 명문가의 고택을 방문해보면 그들의 생활이 마냥 호화롭기만 하지 않았음을 전해 듣게 된다.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았으며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아마 그러했기에 후세에 명문가로 이름이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관람이 아닌 하루 숙박과 함께 종가의 인정을 직접 체험한 기억은 오래도록 나에게 귀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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