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 지켜주세요!
자리 양보하는 어른들 모습에 미소짓게 해
2019-07-31 16:13:05최종 업데이트 : 2019-08-01 11:15:17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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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를 위해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는 채로 운행되고 있다. 옆에 부착된 임산부 배려석 마크가 눈에 띈다. 30일 오후 4시쯤 수원역 방향 버스정류장 수원미술전시관에서 시내버스 5번을 탔다. 요즘처럼 덥고 후덥지근한 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이동할 때 시내버스를 타면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고마움이 절절해진다. 버스 안 승객들은 절반이 차지 않았다. 뒷문 뒤 중간자리에 앉았다.습도가 높고 푹푹 찌는 듯한 날씨에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도 금방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땀이 목 줄기를 타고 내린다. 버스 안은 시원했다. 비가 오다가 말다가 하는 습한 날씨가 반복 되는 가운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니 평화로운 바깥 풍경을 구경하면서 끝없이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버스는 장안공원, 화서문을 지나면서 빈자리는 채워지고 수원여고 앞에 닿았다. 교복대신 편한 활동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갑자기 버스 안은 수선거리고 여학생 특유의 웃음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대부분 시끌벅적 떠들었고 허리까지 축 처진 가방이 무거워 보이는 학생, 가방을 앞으로 메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 학생도 있었다. 한 어르신이 가방을 앞으로 메고 서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여학생에게 무어라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여학생은 몸을 비틀고 못들은 척 했다. 다시 어르신은 학생의 가방을 잡고 이야기 했고 여학생은 몸을 돌려 다른 자리에 가 섰다. 앞자리에서 소곤소곤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은 예전 같지 않지. 예전에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있으면 그 위에 온갖 가방을 다 올려놓았는데..." 어르신이 학생의 가방을 들어준다고 말했고 학생은 거절하는 모습이었다. 오래전이었지만 시내버스를 타고 등하교하던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등하교 시내버스는 항상 만원이었고 앉아가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앉아서 간다고 해도 요즘처럼 바깥 풍경을 감상하거나 여유롭게 다닐 수는 없었다. 서 있는 친구들의 가방이 얼굴 높이까지 무릎에 쌓였다. 당연히 자리에 앉은 사람은 가방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지난날이었다.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들어준다는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가 조금 안타까웠다. 버스에는 분홍색 커버로 된 임산부 배려석이 있다. 평소 버스를 이용하다보면 임산부와 무관한 사람들이 앉아 있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버스는 버스정류장 수원역에 막 들어섰다. 빽빽하게 서 있던 승객들이 내린 자리에 다른 승객으로 채워졌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진 시각, 다시 버스 안은 빽빽해졌다. 버스는 승객들이 타고 난 다음에도 출발하지 않았고 잠시 뒤에 쇼핑가방 여러 개를 든 여성 두 명이 탔다.
비좁은 승객들 사이로 두 여성은 중간 쯤 자리에 섰다. 그 앞에 앉아 있던 어르신 두 분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한분은 조금 전 가방을 들어준다고 했던 어르신이었고 또 한 분은 중년 여성이었다. 자세히 보니 두 여성은 임산부였다. 아직 눈에 띄게 배가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분명 아기를 임신한 여성들이었다. 쇼핑가방도 유아용품 브랜드였다. 임산부 여성들은 "괜찮다"라며 "고맙다" 인사했다. 두 여성은 어르신들의 거듭된 권유에 쑥스러운 듯 다시 "고맙다"며 자리에 앉았다. 버스에는 분홍색 커버로 된 임산부 배려석이 있다. 평소 버스를 이용하다보면 임산부와 무관한 사람들이 앉아 있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심지어 남성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도 있다. 여성이 임신하면 신체적인 피로감이 크고 빨리 온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알 수 있을 만큼 신체의 변화가 있을 때는 누군가의 배려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전에는 혼자 견딜 수밖에 없다. 임신했다고 내놓고 말하는 사회 풍토가 아니다보니 임신 초기의 여성들은 더욱 힘들다. 습하고 답답한 날 버스 안에서 시원하고 따뜻한 배려의 모습을 보았다. 수용하는 것은 받는 사람들의 몫이지만 배려하는 마음은 우리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서 배려받고 보호를 받아야 할 어르신과 자애로운 어머니의 눈빛으로 자리를 양보해준 두 분을 보면서 함께 사는 사회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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