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오브제> 프로그램 홍보지
"안녕하세요. 김혜진입니다. 수원화성에도 가보고 수원에 여러 번 왔었는데 공식 행사는 처음이네요. <너라는 오브제>에 『너라는 생활』로 참여하게 되어 참 좋아요"
김혜진 작가는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축복을 비는 마음』,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불과 나의 자서전』, 『경청』, 짧은 소설 『완벽한 케이크의 맛』 등이 있다. 중앙장편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대산문학상, 이호철통일로문학상 특별상, 젊은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2023년 9월에는 <푸른색 루비콘>으로 김유정문학상을 받았다.
<너라는 오브제>는 시민기획단 나침반에서 준비한 작가와 시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플랫폼이다.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에서 저녁 7시에서 8시 반까지 네 차례 열린다. 지난 8일 『술래 바꾸기』의 김지승 작가에 이어 9일 저녁 7시 김혜진 작가가 왔다. 22일에는 『젊은 근희의 행진』의 이서수 작가, 23일에는 『해가 지는 곳으로』의 최진영 작가가 온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은 관찰입니다. 너라는 오브제를 살뜰히 관찰한 소설과 산문을 통해, 너와 나를 연결하고 무수한 그 사이에서 탄생한, 이야기를 탐험합니다."
시민기획단 나침반 신연정 씨에게 <너라는 오브제> 이름이 참 멋지다고 했더니 이름이 정해진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첫 강연, 김지승 작가의 책 『술래 바꾸기』는 다양한 사물(오브제)에 가서 닿는 관계와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오브제'를 가져오고, 두 번째 강연 김혜진 작가의 『너라는 생활』에서 '너라는'이란 말을 가져와 조합했어요. 다음 강연자인 이서수 작가, 최진영 작가도 모두 나와 너, 우리, 세계의 연결됨,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네 작가의 고민을 모두 아우르는 제목이 아닐까 생각하며 <너라는 오브제>란 제목을 붙이게 되었어요."
김혜진 작가와 스몰토크를 진행하고 있는 시민기획단 나침반의 김정희 님
김정희 시민기획단 나침반 회원이 김혜진 작가에게 미리 준비한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시간을 함께 나눈 시민도 자유롭게 손을 들고 질문하고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약 20명의 시민이 김혜진 작가와 함께하는 따뜻하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너라는 생활』, 김혜진, 문학동네(2020) 출처:교보문고
Q. 『너라는 생활』을 읽으면서 수없이 많은 너를 떠올렸고 나에 대해서 공명했어요. 작가님과 가장 닮은 인물이 있을까요?
A. 모든 소설이 조금은 자전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100% 다 내 얘기거나 내가 경험한 얘기라기보다 저의 어떤 부분이 조금씩은 들어있죠. 책에서 화자는 1인칭의 '나'이지만, 2인칭인 '너'가 '나'일 때도 있어요. '나라는 사람이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하는 구나', '여기까지는 포용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이런 좀 의외의 면이 있네' 이런 것들을 좀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어떤 인물이 나와 가장 비슷하다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네요. 그냥 책 안에 제 모습들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나라는 화자와 관계하는 너는 항상 다른 생각으로 존재함을 리얼하게 표현한 것 같아요. 읽는 내내 독특하다고 느꼈습니다. 기존의 화자와 반대되는 네가 화자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목이 『너라는 생활』인데 의미가 궁금합니다. '너'가 '나'인 듯해서요. 독자를 '너'로 설정하신 건지 아니면 독자를 '나'로 설정하신 건지요?
A.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좀 알려면 그러니까 어떤 타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혼자 있을 때는 '나는 굉장히 너그럽고 착하고 멋진 사람이고 이런 것도 다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가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고, 어떤 부분에서 화가 나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이런 것들을 알게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나와 너의 경계를 세워 놓았어요. 이 소설은 쓰면서 제가 저를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Q. 『너라는 생활』에는 8편의 단편이 있는데, 저는 제목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호기심이 가는 제목인 것 같아요. 제목은 어떻게 정해졌나요?
A. 제가 책 제목을 잘 못 짓는데 놀랍게도 『너라는 생활』은 제가 지었어요. 단편 소설집은 단편이 잡지에다가 먼저 실리고 단편이 8개나 9개가 모이면 책이 되어서 나와요. 장편은 그냥 쓰면 바로 책이 나올 수 있지만 단편은 나오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저의 첫 번째 소설집 『어비』는 제가 데뷔를 하고 나서 한 3~4년 동안 썼던 것을 묶은 거예요. 그때그때 고민이 되었던 것을 쓴 것이긴 하지만 나중에 책이 된 것을 보니까 통일성이 없는 것 같았어요.
'내가 이런 얘기를 썼을 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지'라는 것을 저는 알지만, 이 책이 독자에게 갔을 때는 난해하고 산만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두 번째 소설집은 통일성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1인칭·2인칭으로 소설을 써볼까?' 해서 2~3년 동안 그런 단편들을 써서 발표했고 그것들이 단편집이 된 거예요. '너'랑 '나'가 같이 산다는 것은 내가 이제 너라는 사람은 끊임없이 견뎌야 하는 거잖아요. 같이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너라는 사람을 사는 거겠죠. 그런 의미로 지은 제목입니다.
Q. 제가 처음 작가님 책을 읽은 것이 『딸에 대하여』였어요. 작가님의 다른 글에도 동성애자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A. 『딸에 대하여』에 동성애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만, 엄마가 화자인 소설이거든요. 제가 엄마와의 관계가 힘들었어요. 엄마는 제가 글 쓰는 걸 워낙 싫어하셨어요. "신춘문예 당선되었으니 그만해도 되지 않냐? 책 한 권 냈으니 이제 그만해라" 엄마는 제가 직장을 다니기를 원하셨어요. 엄마와 저와의 관계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왜 엄마는 내가 이렇게 이해가 안 될까? 자식의 삶을 받아들이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라는 생각을 했고, '동성애'라는 것을 책 속의 엄마가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설정을 한 거예요. '딸이 이렇게 이것까지 하는데도 엄마가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하면서 썼어요. 소설 바깥에서 제가 엄마가 되어 쓴 거예요.
엄마를 좀 이해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 나이 때 엄마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냥 제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는 그런 시도였던 것 같아요. 이 소설집은 그런 관계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 관계가 남자·여자 연인 관계도 있지만 친구 사이도 있고, 동성 연인일 때도 있고, 형제일 때도 있겠죠. 그 '너'라는 것이 나와 지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양하게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지금 어머니는 응원해 주시나요?
A. 지금은 약간 포기하셨어요. 응원이라기보다는 그냥 이렇게 지켜봐 주시는 것 같아요.
Q. 『완벽한 케이크의 맛』에 실린 단편 <밀 베이커리>에서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님도 그런 선택을 하실 수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어요.
A. 예전에 어떤 평론가가 하는 말을 들었어요. "소설가는 두 가지 종류의 소설을 쓰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쓰고 또 하나는 자기가 못하는 것을 쓴다." 소설가는 자신이 못 하는 걸 쓰거나 할 수 있는 걸 쓴다는 거죠. 그런데 보통은 못 하는 걸 쓰는 경우가 많대요. 그분의 의견이에요. 어떤 소설의 결말에 뭔가 액션을 취하는 그런 소설들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막상 그 작가한테 '너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어?'라고 물어보면 저는 아닌 경우가 더 많을 거로 생각하거든요. 현실에서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쓰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저라면 그렇죠, 어렵겠죠. 아이가 너무 힘드니까, 그렇게 하기는 어려웠을 텐데. 그래서 소설 안에서는 주인공이 그렇게 결단을 내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던 것 같아요.
마지막 마무리 멘트이다. "저도 그것이 소설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항상 그래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다시 한번 따끔한 백신을 맞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그래 이렇게 살면 안 되지. 내가 '너라는 생활'과 부딪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네 옆에 있을 수 있어. 그리고 우리는 견뎌낼 수 있어'하고 힘을 냅니다. 그런 힘을 소설이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님 책 계속 잘 읽겠습니다."
멘트가 끝나자 박수가 절로 나왔다.
11월 9일 <너라는 오브제> 김혜진 작가와 함께 한 시민들 모습
"2023년 11월, 4명의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시민과 책이라는 매개로 환대하고 소통하고 싶다"고 시민기획단 나침반 김정희 씨는 말했다. 스몰토크 형식으로 진행된 두 번째 <너라는 오브제>에서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느끼는 장을 펼쳐 주었다.
"11월 22일과 23일에는 이서수 작가와 최진영 작가가 오십니다. 두 분 모두 약자의 목소리와 사회의 문제를 소설에 담아내는 분들입니다. 남아있는 강연에 많은 시민들이 함께하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남은 시간 홍보도 이어졌다. <너라는 오브제>를 찾은 최혜영 씨는 "묵직한 주제를 담백한 글로 표현하고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김혜진 작가는 수줍게 이야기하는 다정한 사람이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2018년 신동엽문학상을 받은 『딸에 대하여』가 '2023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영화에 대한 소식은 잘 모르고 있다가 제작자의 연락을 받고 보고 왔다고 한다. 영화 시나리오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는 김혜진 작가는 "원작이 있으면 영화를 만들기가 부담스럽다고 하더라고요. 비슷한 듯하면서 어딘가 좀 다르고 또 소설에 없는 장면들도 들어가 있어서 저는 훨씬 좋았어요. 투자를 받아야 해서 개봉을 내년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개봉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영화 소식도 전해 주었다.
지면에 담지 못한 환대와 소통 이야기가 많다. 22일과 23일에도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수성 가득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참 좋다. <너라는 오브제>에 많은 수원 시민의 발걸음이 향해서 2024년이 더 따뜻해지고 풍성해지기를 바란다.
『너라는 생활』을 읽고 필사와 느낌을 적은 종이에 김혜진 작가의 사인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