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수원화성박물관 임전필승' 특별기획전 열려..오는 12월까지
국가 안위, 예나 지금이나 군사력으로 지킨다
2024-10-10 13:34:24최종 업데이트 : 2024-10-10 13:34:22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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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싸우지 않을지언정 싸움을하면 반드시 이긴다
정조는 즉위하자 부국강병을 위한 민산(民産), 인재(人材), 융정(戎政), 재용(財用)등의 4대 개혁과제를 밝혔다. 특히 '융정'은 지금의 국방정책으로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임전필승' 의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군사 훈련용 각종 무예서를 표준화하고 '무예 24기'를 정립시켜 최강의 군대 '장용영(壯勇營)'을 양성하였다.
1. 조선의 무관 선발과 무예 전시회에 따르면, 조선시대는 무관(武官) 선발 방법과 내용을 법전(法典)에 자세하게 기록하고 이에 따라 엄격히 선발했다. 지금의 장교를 선발하는 무과(武科)는 초시(初試), 복시(複試), 전시(殿試) 등 3단계 과정을 거쳤고 무예 실기의 비중이 높다. 3년마다 치르는 식년무과(式年武科)와 시사(試射) 등의 특별시험도 있었다. 이러한 시험들은 뛰어난 무재(武才)의 발굴과 무예를 발전시키기 위한 국방정책이었다.
2. 조선 최초의 무예서 '무예제보' 조선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무예에 큰 관심을 가지게되었고 명나라 장수 척계광(戚繼光)이 지은 무예서 '기호신서'(중국 남방에 출몰하던 왜구를 격퇴하기 위해 만든 병법서)를 토대로 무예 연마와 진법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 조선 최초의 무예서인 '무예제보'는 임진왜란 기간에도 간행되었다.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편찬한 기호신서
전란 중이던 1598년(선조 31) 왕명으로 훈련도감 한교(韓嶠)가 '기호신서'에 실린 '무예 6기'를 한글로 번역해 '무예제보'를 편찬하였다. 이로서 한글로 번역된 조선 최초의 무예 수련교본이 탄생한 것이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의 '무예제보(武藝諸譜)'는 국내 유일한 초간본으로 2021년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최초의 무예교본 무예제보
1789년(정조13) 정조는 조선 최초의 무예서 '무예제보'와 사도세자가 편찬한 '무예신보'를 계승하고자 이덕무(李德懋) 박제가(朴濟家) 백동수(白東脩)등을 불러 '무예도보통지'편찬을 지시하였다. 정조의 국방철학은 '지고위무(止戈爲武)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진정한 무치(武治)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군제를 개혁하고 각종 병법을 연구해 조선의 실정에 맞는 병서를 편찬하고 한편 무예 실력을 갖춘 군사를 길러내고자 하였다. 조선 최고의 무예서 무예도보통지
4. 무예24기와 병장기 '무예24기'란 '무예제보'와 '무예 6기' '무예신보' '무예 18기'에 '마상무예'를 포함, 표준화시켜 만든 것으로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지금껏 전승, 재현되고 있다. 무예24기는 찌르기, 베기, 치기 등 세가지 공격 방법이 있다. '무예도보통지'도 이에 맞춰 창(槍), 도(刀), 권(拳)의 차례로 구성되었다. 또한 군사들이 무예를 익힐 수 있도록 '도보(圖譜)'를 판화로 만든 그림과 해설을 한글로 수록해 그 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조선후기 군제 장환도와 소환도조선후기 군제 병장기인 삼지창, 장검, 창
행궁마당에서 장용영 군사들이 무예24기 창 찌르기하는 모습단칼에 짚토마를 베어버리는 장용영 군사의 무예24기의 실전 모습
○ 일 시: 2024년 9월 26일 ~ 12월 15일 (매주 월요일 휴관) ○ 장 소: 수원화성박물관 1층 전시기획실 ○ 연락처: 031-228-4243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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