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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이종학이 남긴 유산을 생각한다
독도의 날을 맞아 광교박물관에 가다
2024-10-22 14:35:48최종 업데이트 : 2024-10-22 14:35:44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광교박물관에 가을이 깊게 물들고 있다. 박물관도 아름답지만, 주변 자연환경은 더 아름답다.

광교박물관에 가을이 깊게 물들고 있다. 박물관도 아름답지만, 주변 자연환경은 더 아름답다.


  광교박물관에 가을이 깊게 물들고 있다. 박물관 건물은 적당히 높고, 어울려 서 있는 나무들 속에 평온한 풍경으로 앉아 있다. 박물관도 아름답지만, 주변 자연환경은 더 아름답다. 
  2층 사운 이종학실로 향했다. 이종학은 수원군 우정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군 제대 후에는 서점을 했다. 독서 중에 충무공 이순신을 만나고 역사 연구와 사료 발굴에 힘썼다. 특히 주변국이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근거 없는 주장을 일삼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역사 자료를 수집했다. 
서지학자 이종학 선생은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해 평생 사료 수집과 연구에만 매진했다. 생전은 외로웠지만 남긴 유산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서지학자 이종학 선생은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해 평생 사료 수집과 연구에만 매진했다. 생전은 외로웠지만 남긴 유산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전시 공간에서 선생이 심혈을 기울였던 충무공 이순신 관련 사료를 만난다. 생전에 임진왜란 사료를 발굴하고 연구 성과도 자주 발표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왜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통영 수항루의 모습도 일본에서 발견했다. 선생은 이를 근거로 통영에 건의해 수항루가 복원됐다. 이순신의 백의종군 길과 유적지를 답사하기도 했다. 
  독도 관련 자료도 마음 뿌듯하게 다가온다. '한 줌 재 되어도 우리 땅 독도 지킬 터'라는 선생의 말이,  굳은 신념이 울려 온다. 일본은 조선해를 일본해로 둔갑시키고,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선생은 이런 주장이 억지임을 알리기 위해 사료를 발굴했다. 특히 일본 스스로가 만든 사료를 통해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증명했다. 이 사료들을 모아 독도 박물관 건립을 하고 관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충무공전서》. 선생은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관심을 두고, 관련 사료를 모았다.

《충무공전서》. 선생은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관심을 두고, 관련 사료를 모았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는 지도 제작을 하면서 울릉도 우측에 독도를 표시했다. 우산도라고 표기한 지도 등이 많은데, 여기가 독도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은 일본 지도에서도 볼 수 있다. '삼국접양지도'는 일본의 대표적인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 1785년에 제작했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 한가운데 큰 섬 하나와 그 오른쪽에 작은 섬 하나를 그렸다. 이 섬들은 모두 조선 땅과 같은 색으로 칠했다. 즉 우리 영토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왼쪽 큰 섬에는 죽도(竹島, 다케시마)로 표기했는데, 이것이 독도다. 여기에 '조선이 소유하고 있다'라는 기록도 남겼다. 오래전부터 일본은 스스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알고 있었다.
'삼국접양지도'. 일본의 대표적인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 1785년에 제작했다. 독도를 죽도로 표기하고, 조선이 소유하고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삼국접양지도'. 일본의 대표적인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 1785년에 제작했다. 독도를 죽도로 표기하고, 조선이 소유하고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동해 관련 표기 지도도 있다. '지구만국방도'는 1854년 일본에서 제작된 세계지도다. 여기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가 조선해로 표기되어 있다. '신제여지전도'는 프랑스인이 1835년에 만든 세계지도를 참고해서 일본인 미츠쿠리 쇼고가 제작한 지도다. 이 지도에는 동해를 일본해가 아닌 조선해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동해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일본 고지도다. 이런 역사적 자료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동해의 일본해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증명한다.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칙령 41호를 제정하여 울릉군의 관할구역에 독도를 포함한다는 내용을 대내외적으로 밝힌 날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독도 수호 의지로 민간단체에서 선포했다. 독도의 날에 만난 지도와 선생의 헌신이 더 뜨겁게 느껴진다.
'지구만국방도'. 1854년 일본에서 제작된 세계지도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가 조선해로 표기되어 있다.

'지구만국방도'. 1854년 일본에서 제작된 세계지도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가 조선해로 표기되어 있다.


  선생의 수원 사랑도 존경스럽다. 수원지역의 향토사학자로 수원성이라고 부르던 이름을 화성으로 제 이름을 찾는 데 공헌했다. 수원 화성 축성 200주년이던 1996년, 문화재관리국에 수원성을 '화성'으로 바로잡아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해 이름을 되찾았다. 수원화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화성성역의궤》를 영인해서 국내외 연구기관에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화성성역의궤》를 유네스코 위원에게 기증하여 수원화성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종학 선생은 수원지역의 향토사학자로 수원성이라고 부르던 이름을 화성으로 제 이름을 찾는 데 공헌했다.

이종학 선생은 수원지역의 향토사학자로 수원성이라고 부르던 이름을 화성으로 제 이름을 찾는 데 공헌했다.

선생은 수원화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화성성역의궤》를 영인해서 국내외 연구기관에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선생은 수원화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화성성역의궤》를 영인해서 국내외 연구기관에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이 밖에 정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수원 관련 사료를 모았다. 그리고 사료는 필요한 곳에 연구 활용되어야 한다는 선생의 소신을 받들어 유족이 2004년 수원시에 2만여 점을 기증했다. 박물관 전시 공간은 이렇게 탄생했다. 유산은 역사적 가치도 있지만, 선생의 정신도 담겨 있다. 우리가 깊게 만나야 할 것은 선생이 남긴 정신이다. 수원시청 1층 명예의 전당에 이종학(1927~2002) 선생이 헌액된 것도 이런 정신에 머리를 숙인 표시다. 
'금강산 병풍'. 선생은 정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수원 관련 사료를 평생 모았다. 그리고 사료는 필요한 곳에 연구 활용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유족이 2004년 수원시에 2만여 점을 기증했다.

'금강산 병풍'. 선생은 정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수원 관련 사료를 평생 모았다. 그리고 사료는 필요한 곳에 연구 활용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유족이 2004년 수원시에 2만여 점을 기증했다.


  선생은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해 평생 사료 수집과 연구에만 매진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외로운 운명의 길을 걸었다. 수많은 좌절과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지속인 열정을 보였다. 누구도 꺾지 못하는 신념이었다. 오직 한 가지를 위해 일생을 바친 선생의 묵직한 인생은 외로웠을 것이다. 생전은 외로웠지만 남긴 유산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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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학, 이순신, 독도, 조선해, 화성성역의궤, 광교박물관,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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