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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구조로 아름다운 수원화성 북동포루
(사)화성연구회 수원화성 모니터링 활동
2024-11-06 10:08:16최종 업데이트 : 2024-11-06 10:08:13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화성 장안문에서 모니터링 활동

수원화성 장안문에서 모니터링 활동


깊어가는 가을, 겨울을 준비하고 있지만 적응하기 힘든 날씨이다. 지난 주말에는 11월 역대 최고 기온이라 무더웠는데 하루 이틀 사이에 찬바람이 불더니 옷깃을 여미게 한다. 지속적인 지구온난화와 엘니뇨의 영향으로 상상을 초월했던 무더운 여름을 보냈는데 이제는 라니냐의 영향으로 어떤 이변과도 같은 날씨 패턴이 우리를 기다릴지 걱정이 된다. 

늦더위로 인해 단풍도 늦게 들고 있는 가을이다. 수원화성을 둘러싼 산과 숲에도 서서히 단풍이 들어가고 있다. 수원화성 서북각루, 동북포루 밖 억새 숲은 아름다운 자태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고 팔달산 둘레길, 수원화성 둘레길에도 가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수원화성 장안문에서 화성연구회 회원들이 모니터링 활동

수원화성 장안문에서 화성연구회 회원들이 모니터링 활동


지난 5일 오후 2시 수원화성 장안문 안쪽 옆 벤치에 (사)화성연구회 모니터링 회원들이 11월 모니터링을 위해 모였다. 이날 황인욱 회원은 장안문 문화재 안내판 앞에서 해설을 시작했다. 서울의 고궁과 수원화성, 서울 도성과 남한산성, 수원화성을 비교하고 영조, 정조 임금 전후의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수원화성 축성 배경과 위상을 정치적, 군사적인 관점에서 설명했다. 

"어느 문화해설사가 설명하는 것을 들었는데 화성행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고 합니다. 정조대왕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무덤을 1789년 수원으로 이장해 현륭원이라 했고 1800년까지 13차례 방문을 했습니다. 정조대왕 사후인 1816년 어머니인 혜경궁홍씨가 사망해 현륭원에 합장했는데 마치 정조대왕이 부모가 묻힌 묘에 참배했다는 식으로 해설하는 것을 봤습니다. 이와 같은 오류가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라며 현장에서 들었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수원화성 동북포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수원화성 동북포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식적인 수원의 문화해설사가 아닌 외부의 문화해설사가 수원화성, 화성행궁을 해설하는 것을 자주 보는데 수원의 정체성을 잘 모르고, 역사적인 맥락도 파악하지 못한 채 스토리 위주로 해설을 하다 보니 오류가 꽤 많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관계자들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해설을 듣던 한 모니터링 회원은 장안문 안쪽에 있는 장안문 설명 안내판에 오류가 있다고 했다.
"설명문 하단에 화성성역의궤에 있는 '장안문 외도, 내도' 그림이 나오는데 그림을 설명하는 문구에는 '정리의궤 장안문 외도, 내도'라고 표기했습니다. 화성성역의궤의 그림과 정리의궤의 그림은 기본적으로 구도는 같지만, 화성성역의궤 그림은 흑백이고 정리의궤 그림은 채색이 되어있습니다."라며 수정되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안내판의 그림을 살펴보니 오류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시, 수정해야 할 것이다.

수원화성 성벽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수원화성 성벽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안문을 둘러보고 문밖으로 나가 북동포루(北東砲樓)로 갔다. 포루는 벽돌로 성벽에 붙여 쌓아 밖으로 돌출시킨 성벽의 내부에서 대포로 적을 공격하도록 한 군사 시설물이다. 수원화성에는 5개의 포루가 있는데 남포루를 제외한 북동포루, 북서포루, 서포루, 동포루는 원형과 다르게 복원했다.

"수원화성에서 가장 특이한 시설물 중 하나가 포루입니다. 5개의 포루는 모두 벽돌로 지어졌고 북동포루와 북서포루의 지붕 형태는 안쪽은 맞배지붕, 밖은 우진각 지붕으로 되어있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포루를 복원한 당시에는 원형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화성성역의궤에 있는 그림처럼 복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 포루 원형을 알 수 있는 사진 자료들이 발굴되어 화포를 쏘는 구멍, 총을 쏘는 구멍의 위치와 개수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앞으로 해체 복원을 할 경우에는 정확히 복원할 수 있습니다."라고 모니터링 위원장이 포루에 관해 설명했다.

수원화성 화홍문 마루 목재 부식으로 수리 필요

수원화성 화홍문 마루 목재 부식으로 수리 필요


화홍문으로 이어지는 성벽에서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우리나라 성제를 설명했다. "우리나라 성제는 고구려가 가장 먼저 발달했는데 성벽을 튼튼하게 쌓았고 치성과 성가퀴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후 삼국이 전쟁을 치르면서 신라, 백제도 고구려 성의 영향을 받았고 중국으로도 전해졌습니다. 만주에 있는 고구려 산성과 충주 주변 남한강 유역과 소백산맥 주변에 있는 신라 산성을 비교해보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원화성에는 이러한 고대 산성의 유전자가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의 지식인들은 우리 고대 산성에 대해 잘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수원화성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수원화성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정조대왕은 수원화성을 축성하기 전에 전국에 있는 성을 그림으로 그려 바치도록 했다. "멀리는 중국의 법을 모방하고 가까이는 유성룡이 논한 것을 취하고 경들도 모름지기 널리 상고하고 자세히 헤아려 후세 사람들에게 오늘날 조정에 인재가 있었음을 알게 하라."라고 했지만, 현장을 답사하지 않은 한계가 보인다.

1797년 1월 수원화성 축성이 완료된 후 처음 수원을 방문한 정조대왕은 "우리나라 성의 제도는 고루하여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치첩(치성과 성가퀴) 제도가 본래 없었다. 유독 김종서가 쌓은 종성의 성 제도가 중원의 제도를 조금 모방하여 그 형상이 홀과 같아 굽어보기에 편하였으나 오히려 치첩 제도만 못 하였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성은 전체가 둥글고 모퉁이가 없으므로 성가퀴와 여장에 두루 서서 지킨 뒤에야 도적을 막을 수 있다. 이번에 새로 쌓은 성은 치첩 제도를 처음 만들었는데 치첩 마다 서너 사람만 서더라도 좌우로 살피기에 편하고 아래에서 보더라도 치첩을 지키는 사람의 수를 분간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해 우리 고유의 성제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 하다.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앞에서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앞에서


깊어가는 가을날, 수원화성을 모니터링 하면서 돌로 쌓은 성의 특징을 살펴보고 산성의 역사와 당대의 성곽 발달사, 현재 남아있는 고대 산성을 답사하면서 어떤 점을 관찰해야 할지 등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비교 답사를 통해서 수원화성의 객관적 역사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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