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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의 으뜸 관광명소, 화성행궁 답사
정조대왕의 원대한 꿈과 효심 및 고궁의 정취가 느껴지는 화성행궁
2025-01-31 10:26:56최종 업데이트 : 2025-01-31 10:26:53 작성자 : 시민기자   홍명후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전경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전경

 

지난 25일 필자는 을사년 설 연휴 첫날 팔달구 행궁로에 있는 화성행궁(華城行宮)을 답사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포근한 날씨에 연휴 첫날과 주말이지만 한적하여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답사하기에 매우 좋았다. 지난 2023년 우화관, 낙남헌 동행각, 별주 등 복원된 건물을 둘러 보니 궁궐의 규모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화성행궁은 궁궐의 규모와 격식을 갖춘 궁궐이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대왕(13년, 1789)은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옮기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원화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화성행궁을 건립했다. 평상시에는 수원부 관아로 사용되다가 정조대왕 행차 시에는 화성행궁에서 머무르며, 혜경궁 홍씨 회갑연(진찬연) 및 과거 시험, 활쏘기 등 여러 행사를 거행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낙담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 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

 

화성행궁은 1996년 1단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2003년 10월 공개되었다. 또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발굴 조사를 해 우화관 건물터를 찾아냈고, 2020~2021년 화성성역의궤와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고증해 복원설계를 완성했다. 2021년 7월 복원공사를 시작해 2023년 준공했다. 지난 2023년 우화관을 비롯하여 낙남헌 동행각, 별주가 복원되어 현재에 이른다.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정조는 1790년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차를 했다.

 

먼저 접하는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신풍이란 '임금님의 새로운 고향'이다. 신풍루 앞에는 350여 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 고목 3그루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 
 

화성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봉수당은 삼도(三道)를 지나는데 삼도의 중앙길은 왕이 다니는 어도이다. 문관은 오른쪽, 무관은 왼쪽으로 통행하며 이 두길을 합쳐 양반길이라고도 하였다. 즉, 양반은 조선시대 품계상 정 9품, 종 9품 이상의 벼슬을 한 신분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궁궐에서 어도는 국왕외에는 함부로 걸을 수가 없다. 백성이 어도를 걷다가 걸리면 곤장 80대의 형벌이 주어진다.
 

봉수당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정당(正堂) 건물로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진찬연)을 열었다. 현재는 당시 정조대왕의 신하 접견 및 진찬연, 휴식의 모습이 재현되었다.봉수당의 임금 편전에 병풍인 '일월오봉도'에서 오봉은 조선의 명산인 백두산, 금강산, 북한산, 지리산, 묘향산을 상징한다.
 

장락당(長樂堂)은 정조 19년(1795)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열면서 혜경궁 홍씨가 머물 처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장락당은 임금이 화성에 내려오면 머무는 처소로도 사용되었다. 정조는 장락당과 복내당 사이의 담장에 다복문과 장복문을 설치하여 이를 통해 어머니의 복을 기원하는 정조의 효심을 확인할 수 있다.

 

유여택(維與宅)은 과거 시험에 합격한 무사들에게 상을 주고 신하들의 보고를 받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복내당은 수원읍 고을 수령과 가족이 거처하는 건물이다. 

 

행궁내에는 임금님의 수라상을 차리는 곳으로 드라마 '대장금' 속 수라간을 연출한 곳도 있다. 또한 건물 벽에는 '화성성역의궤'와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있어 그 당시 행사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낙남헌

특별과거 시험과 양로연을 베푼 낙남헌(원형대로 보존된 건물)

 

낙남헌(落南軒)은 일제 강점기에도 훼손되지 않고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물이다.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특별 과거 시험과 양로연을 열었다. 다른 건물과 달리 기초 돌이 원형대로 보존되었다는 것을 시민들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노래당(老來堂)은 낙남헌에 잇대어서 지은 화성 행궁의 별당이다. 정조는 화성에서 노년을 보내기 위해 '늙음이 찾아온다'라는 뜻을 지닌 노래당을 짓고, 아들 순조의 나이가 15세가 되면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에 내려와 지내려 했던 정조의 뜻이 담긴 건축물이다.
 

우화관

2023년 복원된 화성유수부 객사인 우화관

 

우화관(于華館)은 임금을 상징하는 '전(殿)'이라는 글자를 새긴 나무패를 모신 화성유수부 객사(客舍)로 1789년 화성행궁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건물이다. 객사는 지방 수령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 앞에서 의례를 행하는 곳이면서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문 장소다. 우화관은 수원군공립소학교로 이용되다가 1933년 일제 치하에서 수원공립보통학교(현 신풍초등학교)가 건립되면서 철거됐다.
 

2023년 복원된 별주와 연봇

2023년 복원된 제물, 잔칫상을 준비하는 별주와 연못


별주(別廚)는 임금이 행차할 때 음식을 준비하고, 임금이 머물 때 대접할 음식의 예법을 기록한 문서를 보관하는 장소였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1795년) 때에는 별주에 처마를 덧붙여 만든 임시 건물 12칸에서 잔칫상을 준비했다. 별주는 제사에 쓰이는 제물, 임금의 수라, 반과, 왕실 잔칫상에 필요한 식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는 것을 관리하는 일종의 관서(官署)였다.
 

낙남헌 동행각

2023년 복원된 낙남헌 동행각 

 

낙남헌 동행각은 낙남헌(洛南轩)과 우화관의 경계를 이루는 행각이다. 낙남헌은 화성행궁에서 공식행사나 연회를 열 때 사용된 건물이었다. 2단계 사업에서 낙남헌 동행각과 연못, 취병(나무가지를 지지대에 엮어 만든 생울타리)을 복원하면서 낙남헌 일원이 '임금의 정원'으로 재탄생했다.
 

정조대왕 어진이 보관된 화령전 운한각

정조대왕 어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화령전 운한각

 

화령전 운한각(雲漢閣)은 정조의 어진(임금의 초상화)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건물이다. 중앙에는 정조 어진을 모신 합자를 두고, 좌우에 있는 익실에는 정조가 편찬한 책과 제사에 쓰는 물품을 보관했다.
검소한 정조의 뜻을 받들어 소박하게 만들고 학문을 좋아하던 왕을 기리기 위해 익실에 서책을 봉안한 것이다. 이곳은 우화관이 복원전까지 공사 등으로 관람이 중지된 건물인데 우화관 준공과 함께 개방되었다.
 

궁궐후원 정자인 미로한정에서 바라본 화성행궁 전경

궁궐후원 정자인 미로한정에서 바라본 화성행궁 전경

 

부산에서 어머니와 딸과 함께 온 40대 부부는 "수원에서 대학교를 다녔는데 설 명절 연휴를 맞아 이곳 관광명소인 화성행궁을 어머니와 아이에게 구경시켜주며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매우 좋다"라고 말했다. 용인시 기흥에서 아이와 함께온 30대 부부는 "평소에 바빠서 못와 봤는데 설명절 연휴기간에 아이와 함께 정조대왕의 효심이 깊게 서린 화성행궁을 관람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고궁의 정취와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화성행궁을 보존과 복원하는 사업은 역사의 교육장으로 활용 등 매우 뜻깊은 일이다. 이번 을사년 설 연휴기간을 맞아 자랑스러운 역사적 문화재를 가진 수원시를 방문하여 화성행궁 등 관람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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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수원행궁, 정조대왕, 정조효심, 우화관, 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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