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박물관, 화성 축성과 화성 문화 전시회 열어
역사의 도시, 문화의 도시, 관광의 도시... "수원은 정조의 유산"
2025-02-24 17:47:43최종 업데이트 : 2025-02-24 17:47:41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
관람객들이 화성축성 과정을 살펴보는 모습
조선시대는 반상제가 엄연한 양반들의 나라였다. 모든 권력이 군주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나 왕 혼자서 정치를 할 수 없었다. 양반 관료들에게 일정 부분 권력을 나누어주고 국정을 위임하는 양반 관료사회였다. 그러다보니 당쟁이 끊이질 않고 때로는 왕권을 위협하기도 했다. 정조의 충신 채제공 72세때의 초상화
조선 22대 임금 정조는 조선후기 문예 군주이자 개혁군주로 규장각을 설치하여 학문을 발전시키고 장용영을 창설하여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탕평책을 추진하여 정국을 안정시켰다. 정조는 조선시대 세종임금과 더불어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다. 정조임금은 수원화성축성과 신도시 수원 건설을 통하여 오늘의 수원을 탄생시켰다.
1790년 부사직(副司直) 강유(姜遊1722~?)는 사도세자가 묻힌 곳, 화성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인 수원에 성곽을 쌓을 것을 정조에게 건의하였다. 정조는 신도시 수원의 건설로 정치, 경제, 사회, 국방 전반에 걸친 개혁의지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경험을 토대로 조선 성곽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게 하기 위한 축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위해 서학을 익힌 규장각 소속 정약용에게 축성계획을 지시하였다. 정약용은 정조의 의중을 꿰뚫고 선진국 중국과 일본의 축성제도는 물론 중국을 통해 입수한 서양의 과학 기술 서적을 연구하여 1792년 성(城)을 쌓기 위한 이론과 기술을 정리한 보고서 성설(城說)을 정조에게 올렸다. 정조가 직접 축성의 기본 방향을 밝힌 '어제 성화주략(御製城華鑄略)' 에는 정약용의 의견이 반영되었다. 1796년 완성된 수원화성
조선시대 건축보고서의 진수,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수원화성 축성은 큰 토목건축 공사로서 많은 경비와 기술이 필요하였으므로 그 공사 내용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겨야 하겠다는 판단으로 정조는 봉조하(奉朝賀) 김종수(金鐘秀)에게 편찬을 명령 1796년 완공된 수원화성의 축성에 관한 기록을 집대성한 책이다. 수원화성 축성의 기록을 집대성한 화성성역의궤
화성행행도(華城幸行圖) 1795년 윤 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행해진 수원행차의 중요행사를 묘사한 8폭의 그림이다. 19세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8폭의 배열 순서는 행사 일정에 따라 화성성묘전배도, 낙남헌방방도, 서장대야조도, 봉수당진찬도, 낙남헌양로연도, 득중정어사도, 환어행열도, 한강주교환어도로 하였다.
정조의 수원행차를 묘사한 8폭의 그림
을묘년 봉수당에서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 모습
정조는 신도시 수원을 건설하면서 화성일대에 만석거를 비롯한 동서남북에 인공 저수지를 만들고 국영 농장인 둔 전을 만들어 안정적인 농업기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농지가 없는 백성들에게는 둔전을 경작케하여 삶에 안정을 추구하게 하였다.
배수로 물을 수차로 논에 퍼올려 모내기를 하는 모습
조선 시대에는 반상제가 엄연해 상인들을 천대시 하였으나 정조 시대에는 장사와 유통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상업정책이 변화하는 시기였다. 정조는 상업을 발전시켜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나라의 재정을 튼튼히 하고자 했다.
서북공심돈의 내부 단면도, 맨 위 누각에서 지휘하는 장수의 모습
120 여년 전 주일(駐日) 독일대사관 무관인 독일군장교 헤르만센더(Hermann Sander,1868~1945)씨는 조선에서 1년간 근무한바있다. 1905년 경부선철도가 개통되자 기차를 타고 일본인 사진사와 함께 조선과 중국여행을 다녔다. 1907년 3월 헤르만센더씨는 수원을 방문하였다. 이때 수원화성일대를 촬영한 15컷의 귀중한 사진이 전시되었다 1907년 헤르만센더씨가 촬영한 남 공심돈일대의 모습(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907년 헤르만센더씨가 촬영한 화홍문의 모습(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취재 중 두 자녀들과 함께 관람 온 가족과 인터뷰를 했다. "수원에 살면서도 수원에 관련해 별 관심 없이 살았는데 박물관에 와서 전시된 유물과 사진, 기록물 등을 살펴보니 수원은 정조임금이 만든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며, "방학 중이라 아이들과 함께 오기를 잘 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화성축성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 연관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