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로 보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수원시평생학습관, 400명의 중국황제중 유일한 여성황제 무측천을 다시 보다
2025-03-04 08:10:49최종 업데이트 : 2025-03-04 14:19:22 작성자 : 시민기자 진성숙
|
|
유덕화 주연 적인걸 영화포스터. 적인걸은 측천무후의 총애를 받은 현명했던 실존인물이다.
지난 2월 27일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영화를 통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세 번째 강의가 열렸다.
강사는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이자 문학박사인 이종철 교수다. 중국 문화에 정통한 전문가와 중국 역사에 녹아있는 문화, 그에 관련한 영화를 논한다니, 참 멋진 수업 아닌가.
앞서 제1강은 이연걸 주연의 영화 '영웅'을 통해 절대 카리스마 진시황에 대한 면모를 살펴보고 2강에선 영화 '초한지- 영웅의 부활'을 통해 유방의 한제국 건설과 유방, 항우, 한신의 인물됨과 처세역학들을 공부했다.
이종철 교수가 강의하는 모습
진시황은 최초로 황제 연호를 쓰며 나라마다 제각각인 문자를 통일하고 중구난방인 도량형도 통일하고 도로같은 것도 다 정비하는 등 치적이 예사롭지 않다. 분서갱유로 유학자들의 미움을 산 나머지 그의 사후 평은 어쩌면 평가절하된 면이 없지 않다.
부국강병, 불로장생의 꿈을 키우며 불로초를 구하려 그의 심복 서복을 우리나라 제주도까지 보낸 진시황이지만 수은중독으로 갑자기 사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진나라는 황망히 무너지고 만다. 항우와 유방, 한신의 삼각구도에선 헌신적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개국에 일등공신이었던 한신등 개국공신들을 유방은 다 숙청한다. 이로써 '토사구팽'이란 사자성어가 생긴 건 유명한 일화이다. 측천무후. 중국 5000년 역사상 왕위에 오른 유일한 여성. 40년간 일세를 풍미한 탁월한 정치가
그럼 무측천은 어떤 인물인가. 무측천(624~705)의 생애를 살펴보자면 평민출신으로 신흥재벌인 아버지 무사확과 한족의 명문집안 출신인 어머니 양씨와의 사이에서 624년 둘째딸 무조로 태어났다. 예쁘고 똑똑하고 나름 출신도 좋은 무조는 어렸을 때부터 관상가들이 그의 범상치 않은 용모를 보고 용이 될상, 즉 큰 인물이 될거라 예언했다고 한다. 14세때 세간의 평판을 전해들은 태종의 부름을 받아 당태종(598~649)의 후궁이 된다. 무조는 굉장히 현명하면서 후궁으로서 태종에게 배우며 학문이 뒷받침된 조언도 하고 뛰어난 정치적인 식견을 보이며 능력을 발휘한다. 이 무렵 당나라의 번영을 이끈 당태종은 왕권이 강화되고 제국의 번영을 쭉 이끌게 된다.
그후 연로한 태종이 서거하고 자식이 없는 후궁인 무조는 궁에서 쫒겨나 비구니가 된다. 그러나 우연찮은 계기로 태종의 아들 고종(고종이 네 살연하)과 만나게 되며 무조에게 반한 고종은 그녀를 환속시켜 궁으로 들이게 된다. 그야말로 드라마같은 이야기가 아닐수 없다. 읽을만한 책들. 샨사의 '측천무후'가 충실한 묘사로 알려짐
고종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측천무후는 일종의 권모술수로 정실인 왕황후를 폐하고 자신이 황후 자리에 오른다. 이때 그의 나이가 32세였다. 자신이 황후 자리에 오르며 역사에서 유방에게 배운 듯이 반대파들을 차례차례 숙청한다. 그는 원래의 태자를 폐하고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책봉한다. 고종이 병약하여 중요한 정사는 그의 몫인 적이 많았는데 늘 바른 판단으로 옳은 정치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여성이 황제가 될수 있느냐'라는 명분을 찾기 위해서 홀로 그 화두에 천착하고 백방으로 노력을 한다.
683년에 고종도 승하하자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세운 다음 수렴청정식의 권력을 휘두른다. 측천무후는 보통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만 3년상을 치른 것을 어머니가 돌아갔을때도 3년상을 치르게 하는등 남녀평등문화에도 일조했다. 그리고 남녀가 대등하니까 여자도 황제에 오를 수도 있다고 내심 벼르면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인 황제가 왕재가 못된다는 생각에 폐하고 마침내 690년 황제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때가 67세. 그리곤 82세까지 15년간 여인으로서 중국대륙의 황제 자리에 앉게 된다.
역사는 그가 당제국을 더욱 강하고 부유하게 정치를 무척 잘했다고 평하고 있다. 세금과 노역을 줄이고 과거제도를 장려해서 인재를 등용하고 영토를 최대로 확대하며 실크로드를 활성화, 동서교류도 활발히 했다. 여자가 뭘 하겠어'라는 편견을 보기좋게 깨뜨리고 그녀가 실질적 권력을 휘두른 40년간 당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무측천황제는 마지막 자신의 아들에게 권좌를 물려줄 때 자신을 황제라 하지말고 황후라 부르라해서 측천무후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죽기전 많은 정적들을 사면복권해주기도 하였다. 행여 자신의 악행이 적힐 걸 염려한 건지 하도 업적이 많아서인지 '자신의 묘비에는 아무글자도 쓰지마라' 는 인상적인 유언을 한다.
2200년 황제역사에서 유일한 여황제 무측천, 비록 정적제거과정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지만 (술로서 독살했다는데 확실치는 않다) 역사는 무측천의 업적을 인정하고 있으며 부정적으로 묘사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프로그램표. 5회차 수업이 남아있다
1~3회 강의를 모두 수강한 홍혜영 씨(매교동)는 자신을 수원농악단 단장으로 소개하며 "영화를 통해 중국을 알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우거나 암암리에 알고 있던 중국의 역사들이 조각조각 퍼즐처럼 환하게 맞추어지는 느낌이다. 또 10대때 알고 있던 중국과 지금 나이에서 바라보는 중국이 많이 달라보여 새롭기도 하다."라고 수강소감을 전한다.
○ 수원시 평생학습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월드컵로 381-2 (208호실) ○ 대표번호: 031-248-9700 ![]()
연관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