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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화성궐리사 석전대제 열려
2025-03-19 16:50:57최종 업데이트 : 2025-03-19 16:50:56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화성궐리사 전경

화성궐리사 전경


화성궐리사(華城闕里祠)는 경기도 오산시 궐동에 있는 공자의 사당이다. 공자의 64세손인 공서린(1483-1541) 선생이 낙향해 강당을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공서린 선생 별세 후 폐허가 되었는데 1792년 정조대왕의 어명으로 사당을 짓게 하였다. 향교와는 달리 공자만을 모시는 사당이다. 이문원(조선의 행정기관)에 보관되어 있던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게 하고 성묘(聖廟)라는 어필 현판을 내렸다. 그곳의 지명을 수원부 구점촌에서 궐리(闕里)로 고치게 하였다. 궐리란 공자가 태어난 곳이다. 

수원은 1,000년 이상 수원(水原)이란 명칭을 사용했는데 1793년 정조대왕이 수원이란 이름을 화성(華城)으로 바꾸면서 화성이란 이름이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다. 1895년 다시 수원군으로 바뀌었다가 1949년 수원군이 수원시로 승격하면서 156년 만에 화성군과 분리되었다. 1989년 화성군에 속해있던 오산읍이 오산시로 승격하면서 분리되었고 화성군은 2001년 화성시로 승격했다. 

화성궐리사 내삼문 앞

화성궐리사 내삼문 앞



화성궐리사가 있는 곳은 수원부에 속해있다가 화성유수부, 수원군, 화성군에 속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오산시에 속하게 되었다. 원래는 수원이었었는데 현재는 수원, 화성, 오산으로 분리되어 역사적 정체성은 공유하면서도 실제 위치는 다른 도시에 있어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실제 많은 사람이 화성궐리사보다는 '오산궐리사'로 인식하고 있으며 오산시에서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이름이 바뀌고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수원 땅에 화성(수원화성)이 있고, 화성 땅에는 화성이 없고 융건릉이 있으며 오산시에는 화성궐리사가 있다. 유형문화유산, 무형문화유산의 명칭에도 혼동이 생겨 문화유산을 찾는 관광객도 혼란스러워한다. 세 도시는 역사 문화적 뿌리가 같은 공통성을 가지고 있기에 시민들만이라도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화성궐리사 내삼문 앞, 석전대제를 준비하고 있다.

화성궐리사 내삼문 앞, 석전대제를 준비하고 있다.



화설궐리사에서는 매달 음력 1일과 15일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공자가 탄생한 음력 8월 27일에 탄신 석전대제, 사망한 음력 2월 18일에 기신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다. 지난 17일이 바로 공기 2576년 기신 석전대제를 올리는 날이었다.

석전대제란 전통 유교의식으로 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석전대제의 순서는 초헌관이 분향하고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로 시작해 첫 잔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 초헌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례, 음복을 하는 음복례, 축문과 폐비를 태우는 망료례의 순으로 진행된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화성궐리사 장의(掌議, 궐리사 회원)로 있으면서, 고증을 통해 석전대제의 홀기(笏記, 제례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를 바로잡고, 석전대제를 올릴 때의 음악인 문묘제례악을 담당하고 있다. 제례 의식에 따라 영신, 문무, 무무라는 음악이 제례를 엄숙하면서도 기품있게 하고 있다.

화성궐리사 성묘 앞에서 석전대제를 봉행

화성궐리사 성묘 앞에서 석전대제를 봉행



이날 춘기 석전대제는 오전 10시 50분에 시작해 50여 분간 진행되었다. 석전대제는 국가무형유산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홀기가 한문으로 되어있고 비슷한 의례가 반복되고 있어 관람객이 보기에는 지루한 감이 있다. 홀기는 한문으로 읽은 것을 우리말로 해설을 하고 있지만, 전체 제례의 진행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편이다. 종묘대제, 사직대제와 같은 국가의 제례도 마찬가지이다. 유교 전통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대중에게 외면받으며 고립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홀기를 아예 한글로 읽는, 현대와의 조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1792년 설립한 화성궐리사는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아니었음에도 어이없게 훼철되었다가 1900년에 유림들이 성묘를 중건했다. 화성궐리사는 경기도기념물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고, '궐리사 성적도(공자가 평생 실천한 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성궐리사 공부자 성상전

화성궐리사 공부자 성상전



화성궐리사는 외삼문 밖에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고 외삼문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공서린 선생이 손수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오산시의 명물로 수령은 500여 년으로 추정된다. 그 옆에는 공자의 교학사상을 이어가기 위한 시민들의 전통교육 수업이 진행되는 양현재가 있다. 그 위에는 공자문화전시관이 있고 내삼문 오른쪽에는 행단이 있다. 행단이란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비슷하게 지은 것이다. 내삼문 안으로 들어가면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성묘가 있다. 성묘 왼쪽에는 화성궐리사 창건 당시에 식재된 것으로 추정되는 향나무가 있고 그 옆에는 공자의 고향에서 기증한 성상전이 있는데 공자석조상과 좌우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석조상이 있다. 

전통문화를 지키고 계승하고 보존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현대의 문화와 괴리가 크면 클수록 현대인의 외면을 받게 된다. 전통과 현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는 중요한 과제이다. 화성궐리사는 수원시에 있는 수원향교와 마찬가지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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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화성궐리사, 석전대제,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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