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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이 사랑하고, 수원시민이 사랑하는 방화수류정
수원화성박물관에서 테마전 '방화수류정' 열리고 있어
2025-05-23 11:35:32최종 업데이트 : 2025-05-23 11:35:31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수원화성 중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방화수류정을 소개하는 전시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수원화성 중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방화수류정을 소개하는 전시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수원화성 중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방화수류정을 소개하는 전시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5월 22일부터 8월 17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방화수류정'이다. 전시는 1부 정조의 시선이 머문 곳, 2부 조선 누정, 건축의 정수, 3부 시간을 품은 정자 등 3개 주제로 구성된다.
  수원화성 중 유독 방화수류정이 아름답다고 할까. 방화수류정은 화홍문과 용연을 굽어보는 곳에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있다. 정조도 이런 풍경에 반해 이곳에 방화수류정 건립을 지시했을 것이다. 자연의 일각에 세워져서, 자연 풍광을 한층 빛나게 하고 있다. 방화수류정 주변은 늘 사람이 많은데, 이런 풍경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방화수류정에 대한 정조 사랑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 회갑연 다음날에 군복을 입고 방화수류정을 찾았다. 1797년에는 이곳에서 활쏘기해 3발 모두 적중했다. 그런가 하면 구경하는 사람들을 골라 활쏘기를 하고 과거 응시 자격을 주었다.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도 남겼다. 
전시장에서는 방화수류정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방화수류정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방화수류정은 1919년 3월 1일에는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함성이 쏟아졌다. 수원 만세운동이 여기서 시작됐다. 16일 팔달산 서장대와 동문 안 연무대 등에서 이어진 운동은 전국에서도 가장 격렬했다. 
  왕실의 공간이 독립운동의 성지로 변한 데는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당시 김세환 선생이 방화수류정 근처에 있는 삼일여학교(지금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에 근무했다. 김세환 선생의 제자 김노적이 이곳 학생들을 이끌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아울러 이곳은 성안 사람들이 많이 모이던 곳이고, 팔달문 성 밖 시장도 가까웠기 때문이다. 
지도에 그려진 방화수류정 모습.

지도에 그려진 방화수류정 모습.


  일제 강점기 사진에는 일본 학생들이 화홍문과 방화수류정까지 꽉 들어찼다. 수학여행단이다. 당시에도 여행 경비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 학생들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무엇일까. 사진 상황이 반갑지 않다. 마치 나라를 잃고, 문화유산까지 빼앗긴 기분이다. 여행이 조선 역사 이해에 중점을 둔다는 명분이었겠지만, 식민 통치 의도로 진행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명승고적을 다닌다. 교통도 편해야 한다. 수원은 수원화성과 수원역 등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사진에는 차를 타고 온 여행 사진도 보인다. 그들이 견문을 넓히고, 추억을 남기기 위해 온 것은 좋지만, 우리 유산을 소중히 여겼는지 의심이 든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작품들에는 방화수류정이 보인다. 수원화성은 역사와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방화수류정 주변 자연경관은 화가들에게 좋은 소재가 된다. 나라를 빼앗긴 시절에 내 고장 풍경을 화폭에 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방화수류정은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으로 시민의 나들이 장소로 인기다.

방화수류정은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으로 시민의 나들이 장소로 인기다.


  문화유산은 역사적 격변에 다양한 영향을 받는다. 특히 전쟁은 문화유산이 손실되고 파괴되기도 한다. 수원화성도 6.25 전쟁으로 상처를 입었다. 다행히 방화수류정은 크게 손실되지 않았지만, 가치와 의미가 잠시 훼손됐다. 
  방화수류정 주변에 피란민이 사는 사진이 있다. 누각이 온전하고, 기와와 잡상도 훼손된 것이 없다. 전쟁 포탄은 피한 듯하다. 하지만 방화수류정 주변에 아름다운 경치는 안 보이고, 움막이 보인다. 집이 없이 성곽에 기대어 살아가는 피란민들의 모습이다. 누각에도 가마니가 처져 있고, 아래로는 움막집이 틈도 없이 들어앉았다. 앞길에 물동이를 이고 가는 소녀와 여성이 보인다. 엄마와 딸이 가족을 잃고 힘겹게 사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다행히 국토가 회복되고 문화유산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화성성역의궤를 토대로 수원화성 복원사업을 진행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방화수류정은 2011년 보물로 지정됐다. 
일제 강점기 사진. 일본 학생 수학여행단이 화홍문과 방화수류정까지 꽉 들어찼다.

일제 강점기 사진. 일본 학생 수학여행단이 화홍문과 방화수류정까지 꽉 들어찼다.


  전시장에서는 방화수류정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건축 설계도와 가까운 바닥과 지붕 평면도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여행 책자, 사진과 그림 등으로 표현된 방화수류정 모습이 있다. 전시기획을 한 김근옥 학예사는 "방화수류정은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으로 시민의 나들이 장소로 인기다. 자연의 결핍을 앓고 사는 도시민들에게 문화유산이 쉼터가 되고, 사색과 휴식을 즐기는 곳이 됐다는 의미다. 이번 전시에서도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과 시민들이 어떻게 어울려 왔는지 담아 보았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수원화성에서도 방화수류정을 가장 많이 찾는다. 정자에 앉으면 멀리 광교산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주변 용연에 버드나무도 여유와 온유의 곡선으로 늘어져 있다. 어떤 속박도 벗어나는 시원함과 평온함이 있다. 이것이 정조대왕이 꿈꾸던 인인화락(人人和樂)이 아닐까. 

기획 전시 '방화수류정'

일시: 2025.5.22.(목)~8.17.(일)
장소: 수원화성박물관 기획전시실 
관람: 화~일, 월요일은 휴관
관람 시간: 09:00~18:00(입장 마감은 17:00)
윤재열님의 네임카드

방화수류정, 정조, 일제겅잠기, 수원화성,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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