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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빛난 목소리들, 경기도시각장애인도서관 낭독회 <보이지 않아도, 선명한 이야기>
7월 12일(토) 오후 1시 30분, 수원 윤아트홀에서 열린 네 번째 낭독회
2025-07-14 18:49:47최종 업데이트 : 2025-07-14 18:49:46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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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윤아트홀에서 만난 낭독회, 온기가 전한 보이지 않는 삶의 기록. 장마가 잠시 숨을 고른 지난 주말, 7월 12일의 오후는 유난히 뜨거웠다. 아마도 그 날, 경기도시각장애인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낭독회에 다녀왔기 때문이리라. 제목은 <보이지 않아도, 선명한 이야기>, 무심코 흘려보냈던 '보이지 않음'이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이야기를 전하는 낭독자의 목소리, 글을 써 내려간 작가의 삶,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한 청중들의 표정까지도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이번 낭독회는 책을 읽는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오롯이 마주하고 함께 숨 쉬는 깊은 체험의 시간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정보를 손쉽게 얻고, 다양한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전문 도서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성로157번길에 자리한 경기도시각장애인도서관은 2001년 개관한 이래,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권 보장과 문화 향유를 위해 힘써온 도서관이다. 점자책, 음성자료, 큰글자책 등 다양한 대체자료를 제작하며, 경기도 전역의 시각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도서를 배달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경기도 31개 시·군의 공공도서관 및 장애인도서관과 연계해 대체자료를 공유한다. 전국 단위의 공공도서관에도 배포되며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 최근에는 비대면 낭독회, 스마트기기 활용 독서모임 등 디지털 시대에 발맞춘 다양한 서비스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는 전문 기관이다. 낭독, 진심을 담은 문장이 마음을 울리다! <보이지 않아도, 선명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잔잔하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번 행사는 경기도시각장애인도서관의 가장 큰 연례행사로, 낭독의 감동과 강연의 울림이 함께 어우러지는 특별한 자리다. 낭독회 1부에서는 시각장애인 작가 조승리의 자전적 에세이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중 두 편의 이야기가 릴레이 낭독 형식으로 전해졌다. 목소리를 따라 이야기가 펼쳐지고, 청중들은 문장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어 가는 시간. '자귀나무를 듣던 밤'은 시력을 잃어가는 딸과 그런 딸을 위해 애쓴 어머니의 사랑이 깊이 스며 있는 이야기다. 15세에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은 조승리 작가는, 정작 자신의 두 눈보다도 먼저 이 사실을 엄마에게 어떻게 전할지를 걱정했다고. 그 어린 마음에 담긴 배려와 사랑에 가슴이 저려온다. 문득, 그 아이의 시절로 돌아가 조용히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각기 다른 목소리로, 각기 다른 울림을 전한 낭독 봉사자들. '에릭 사티가 내리던 타이베이'는 세 명의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의 도움 없이 떠난 타이베이 여행기를 담고 있다. 불편과 거절 속에서도 그들은 낯선 친절과 따뜻한 배려를 마주하며, 진짜 여행의 의미를 발견해간다. 낭독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느끼고 경험하며 자신만의 기억을 쌓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삶이자 여행이라는 본질임을 깨닫게 된다. 진솔한 목소리를 통해 작가가 겪었을 감정은 더 선명하고 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읽었더라면 울컥해서 끝까지 읽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낭독을 맡은 봉사자들은 울지 않고, 오히려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릴 줄 알았다. 이는 오랜 시간, 진심을 다해 목소리를 낸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을 터. 문장이 가진 슬픔은 어느새 따뜻한 용기와 공감으로 변해, 청중의 마음에 고요히 스며들었다.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그저 개인의 고통을 나열한 책이 아니다. 갑자기 시력을 잃은 사람들, 그 가족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이 책을 통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 그들과 살아가는 방식,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친절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쉬는 시간 인터뷰에서 나눈 이야기, 봉사자 김석현 씨의 진심이 담긴 낭독 모습.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평택에서 올라온 김석현입니다. 오늘은 어머니와 고등학생 딸과 함께 와서 더욱 특별한 날입니다. 저는 16년 차 낭독 봉사자이고, 이번 낭독회는 세 번째 참가했습니다. 재작년에는 아들과, 작년에는 혼자 왔고요. 올해는 딸과 어머니와 함께 오게 되어 더욱 뜻깊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은요, 평택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고 치과 경력은 25년 차입니다. 학창 시절 방송반과 합창반 활동을 했고, 중학교 때는 소년 조선일보 명예기자로 활동했습니다. 대학에서는 교육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하기도 했고요. 전공은 치과지만, 방송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치과 건강 잡지에서 시각장애인 점자도서관의 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참여하게 되었어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며 지금까지 꾸준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낭독회에서는 동료 봉사자들과 청중분들께 많은 격려와 따뜻한 피드백을 받으며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의미 있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마비된 손끝에서 시작된 기적, 일러스트레이터 미긍(강주혜) 작가의 이야기. 낭독회 2부에서는 장애 일러스터 '미긍(강주혜)' 작가의 강연이 이어졌다. 작가는 사고 당시를 회상하며 말을 잇지 못했고, 이내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 청중은 말없이 그 시간을 함께 기다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음주운전 사고는 그녀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분노하고 아파야 할 일이건만…, 작가는 그 이후 겪은 세상의 시선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손가락질 받는다"는 표현이 유독 반복되었는데, 시각장애인에게 세상이 보내는 그 무언의 비난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느낄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그건 보이는 거라고 말하는 듯했달까. 장애가 잘못이 아닌데 차가운 시선이 오히려 그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면,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낭독 봉사자 김미숙, 이선주, 박미정, 정난영, 이미숙, 김윤희, 박경선, 조선이, 그리고 미긍 주혜 작가까지—서로 다른 이들이 한데 모여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경기도시각장애인도서관의 낭독회는 누군가의 살아 있는 목소리이자, 용기의 기록이었다. 그 현장에 있었기에, 진심 어린 말들을 들었기에 더욱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이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서 단절보다는, 오히려 더 깊이 연결되는 감정과 삶을 떠올리게 된다. 낭독자와 작가, 그리고 함께한 이들이 전한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마음들이 있다.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배웠다. 강연을 들은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몇 번이나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배려와 존중 위에 서 있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 조용한 낭독회가 남긴 여운은 오래도록 마음을 두드릴 듯하다. 귀로 들었지만, 마음에 남은 건 목소리가 아닌 온기다. 언젠가 다시, 이 조용한 온기를 만나러 도서관을 찾아야겠다. 한편 경기도시각장애인 낭독회는 올해로 4회를 맞이했다. 내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낭독의 감동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경기도시각장애인도서관 안내] ○ 주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성로157번길 27-4 3층(화서역 1번 출구에서 396m) ○ 운영시간 :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 휴관일 : 매주 토/일요일 및 국가 공휴일 ○ 홈페이지 : lib.eyes1004.com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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