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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에 만나는 수원 독립운동가 김세환
3.1운동 민족대표 48인, 근대 교육 개척자, 사회운동가
2025-07-24 10:50:16최종 업데이트 : 2025-07-24 10:50:36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시민과 공직자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수원 독립운동 역사 특강'이 열린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시민과 공직자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수원 독립운동 역사 특강'이 열린다.

  수원시(시장 이재준)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시민과 공직자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수원 독립운동 역사 특강'을 연다. 7월 22일 오후 2시 권선구청에서 시작해 25일 오후 4시 팔달구청, 8월 8일 오후 4시 영통구청, 8월 26일 오후 4시 장안구청으로 이어진다.
  첫 특강으로 권선구청 대회의실에서 '3.1운동 민족대표 48인 김세환'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이 있었다. 강사는 박환 이사장(고려학술문화재단)으로 수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세환의 국권 회복과 근대 교육계에서 활약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 이사장은 "38년 동안 수원(전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연구해온 덕분에 지역 애정이 많다.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로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업적은 꼭 정리하고 싶었다. 올 6월 '필동 임면수' 평전을 냈다. 임면수 선생이 태어난 날 6월 10일에 맞춰 냈다. 그리고 이번 8월 15일에 '동방 김세환' 평전이 나온다. 광복 80주년이며 동시에 김세환 서거 80주년을 기념해 낸다. 김세환은 생전 활약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유는 관련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최초의 연구서로 선생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올해 광복 80주년이며 동시에 김세환 서거 80주년이다. 여기에 맞춰 오는 8월 15일에 '동방 김세환' 평전이 나온다.

올해 광복 80주년이며 동시에 김세환 서거 80주년이다. 여기에 맞춰 오는 8월 15일에 '동방 김세환' 평전이 나온다.


  "독립운동가들은 신분을 숨기기 위해 가명을 쓴다. 김세환은 동방이라는 이름을 썼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 것처럼 동방은 곧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걸 강조한다. 일본이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지만, 당당한 조선인임을 밝힌 것이다."라고 말하며, 호 동방도 이번 평전 작업하면서 처음 발견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강의 내용도 8월에 나올 책을 중심으로 하겠다며 시작했다. 
  김세환은 수원군 남수리(242번지)에서 출생했다. 목재상 집안의 장남이었다.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중국어과 졸업 후 와세다대학 경제학과를 중퇴했다. 유학 후 수원에서 교육 활동을 했다. 
  1909년 수원상업강습소(현재 수원중고등학교)에서 직조감독관으로 일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소장 및 소감을 겸임하며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1913년에는 삼일여학교(현재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 교장 밀러(감리회 여선교사)의 요청으로 이 학교 교사 겸 학감으로 부임했다.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자리매김도 되지 않았다. 선생은 교육을 통해 여성들의 지위 향상에 노력했다. 차인재(독립운동가)와 나혜석(서양화가)이 이 학교 학생이었다. 수원 근대 교육 공로자이며, 근대 여성 교육 선구자다. 
 
김세환은 수원 출신으로 3.1운동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이다.

김세환은 수원 출신으로 3.1운동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이다.


  독립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지식인으로서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현재 화성행궁 광장 앞 종로교회(당시 보시동 북감리 교회)는 수원성 내 최초의 개신교회로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교회 내에서 지식인으로 성장한 인재들은 민족의식을 나누고, 독립운동을 펼쳐 나갔다. "그때 교회에 다녔던 대표적인 인물이 필동 임면수다. 김세환은 15살 위인 임면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1919년 2월, 김세환은 삼일여학교 교사 충원 문제로 박희도를 만났다. 이때 독립운동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게 된다. "선생은 수원과 충청도 일대 독립운동을 준비하는 순회위원 책임을 맡았다. 지방에 다니며 동지를 모집하고 민족대표 서명식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도착했다. 그러나 서명식은 33인으로 이미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민족대표 48인이라고 한다. 선생은 태화관에서 직접 서명은 안 했지만,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탑골공원에 도착해 독립운동을 했다. 종로에서 무교동을 거쳐 경성역까지 행진을 펼쳤다."라고 사진과 함께 설명을 이어갔다.
 
삼일여학교 교사로 수원 근대 교육 공로자이며, 여성 교육 선구자다.

삼일여학교 교사로 수원 근대 교육 공로자이며, 여성 교육 선구자다.


  독립운동으로 체포된 선생은 출옥 후 삼일여학교 교사도 사임해야 했다. 수원읍내에 곡물상, 목재상 등을 운영하며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1920년대 초부터 민립대학설립운동에서 수원 지역을 대표해 참여했다. 이는 식민지 교육정책에 대항해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심어주는 대학 설립을 위한 운동이었다. 
  "요즘 통합을 강조하는데, 선생은 신간회 활동을 통해 통합을 실천했다. 신간회 수원지부 지회장 등을 했다. 또 선생은 수원에서 최초로 체육회를 설립하고 회장을 역임했다. 축구부, 야구부, 정구부, 육상 경기부, 빙상 경기부 등을 두고, 수원 시민 대운동회 등도 개최했다. 1935년 10월 15일에는 남창리에 체육회 회관을 건립하는 등 수원 지역 체육 역사에 주춧돌을 남겼다."라고 소개했다. 
  "선생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해방이 된 지 한 달여 만인 9월 26일 수원에서 돌아가셨다. 민족대표 33인이 말년에 변절을 많이 했는데, 김세환 선생은 끝까지 일제에 저항한 지사다. 국가 서훈도 건국훈장 독립장이다."라고 강연을 끝냈다. 
 
선생은 3·1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 수원에서 시민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선생은 3·1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 수원에서 시민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수원 독립운동가로 임면수 동상은 시청 앞 공원에서 봤다. 그러면 김세환 선생은 동상은 우리 시에 없는 상태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박 이사장은 "그렇다. 김세환 선생은 우리 지역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독립운동가다. 당연히 동상 건립이 필요하다. 선생의 서거 80주년인 9월 26일에 수원박물관에서 김세환 학술회의가 있다. 이런 노력이 쌓여 동상 건립이 실현됐으면 한다."라며 간절한 바람을 남기는 답변을 했다. 
  "오는 8월 15일부터 12월 7일까지 수원박물관에서 광복 80주년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 '다시 만난 민족대표 김세환'이라는 주제로 수원의 독립운동가 임면수, 김향화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인물들을 인공지능[AI]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다."라며 가족과 꼭 방문해 보라고 부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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