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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역사 특강, 영통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려
80주년 8.15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라 사랑의 마음을 품다
2025-08-11 16:05:56최종 업데이트 : 2025-08-11 16:05:54 작성자 : 시민기자   안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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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인 김세환 선생

 

지난 8월 8일 오후 3시 30분. 영통구청 대회의실에는 많은 영통구 공직자와 구민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운동 역사 특강이 열렸다. 전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며, 현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인 박환 교수가 강의했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수원 독립운동 역사 특강을 개최하여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강의는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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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 선생의 독립운동과 교육사업 업적을 설명하는 박환 교수


3.1 운동 민족 대표 48인 중의 한 명인 김세환 선생(1889∼1945)과 임면수 선생(1874∼1930)에 대하여 세밀하게 강연했다. 김세환 선생은 민족대표 48인으로서 수원의 3·1운동을 주도했다. 박 교수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한 이력이 말해 주듯 강연을 물 흐르듯 진행하여 편한 마음으로 경청할 수 있었다. 전공이 만주 역사, 한국의 전 근대사여서 그 주변 부분에 대하여도 재미있게 설명했다. 간간이 수원에 소재한 역사와 음식문화 등에 대하여서도 친숙하게 설명했다. 사실 김세환 선생은 유명한 애국지사임에도 논문과 학술적인 기록들이 남겨있지 않았다. 다행히 박환 교수가 김세환 선생과 임면수 선생에 대한 평전을 출판하여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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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 선생 가족 사진

 

이날 강연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수원 토박이인 김세환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한 활동이다.

김세환 선생은 수원에서 포목상, 양곡상을 하기도 했다. 재력가에 속했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고생한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일본 감시자들이 순순히 봐줄 리 없었다. 심지어 사진이 부착된 요시찰 감시자 명부를 작성해서 철저히 감시했다. 수원 사람들이 독립운동하는데 전면에서 진두지휘했다. 점조직 형태로 만들어 시민들을 규합했다. 본인은 일본의 와세다 대학교를 나올 정도로 지식인임에도 부귀영화를 버리고 백성과 함께했다. 결국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광복절 한 달 뒤인 9월에 순국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변절했음에도 김세환 선생은 끝까지 지조를 지켰다. 사진으로 봐도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다. 1962년 제3공화국 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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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여고 정문


기록에 의하면 수원 시민 중 멕시코, 쿠바에서 독립운동했던 인물들도 있다. 이후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갔던 이들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군자금을 모아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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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여학교 학생들의 모습

 

둘째 김세환 선생은 망국의 슬픔과 새로운 길을 찾아서 교육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수원 상업강습소(수원중· 고등학교 전신)를 개교하여 교사, 교감,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수원 중·고등학교 건립 기초를 닦기도 했다. 수원 여성 교육의 선구자였다. 삼일 여학교가 경영이 어려울 때 독지가를 찾아 지원 요청하기도 했다. 수원이 배출한 여류화가 나혜석의 스승이기도 했다. 그 당시 소학교는 신풍·세류 등 두 군데였고, 수원 농림고와 수원 여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중학교가 없어서 진학하려는 학생은 서울에 유학 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이 들기도 한다. 김세환의 영향을 받은 이들도 많다. 김노적, 차민재, 최문순, 이선경, 박선태 등이다.

셋째 수원체육회를 만들어 시민화합에 앞장서기도 했다. 추후 기록이 발견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활동도 했다. 이 부분도 박환 교수가 발굴했다. 수원 독립역사를 조명하기 위하여 여러모로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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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인근 종로교회 전경

 

김세환 선생이 민족의식이 싹트게 된 연유는 아무래도 기독교 영향이 컸다그는 수원 화성행궁 앞에 소재한 종로교회 교인이었다. 수원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다서양 선교사들이 민족의식을 많이 심어주었다. 이에 따라 심지어 서양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쫓겨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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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면수 선생의 사진 

 

김세환 선생보다 열다섯 살 많은 임면수 선생을 만난 것도 큰 행운이었다. 임면수 선생은 신흥무관학교 교장 출신의 애국지사였다. 이 학교는 신민회가 서간도에서 개교한 독립군 양성 기관이었다. 유명한 애국지사들이 교관을 맡기도 했다. 임면수 선생은 삼일공고 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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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의 키즈들

 

이번 특강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역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하고, 애국정신을 계승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역사 교육의 장이 지속적으로 마련되어 후세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수원시에서도 수원 시민대합창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하여 광복의 참뜻을 되새기는 행사를 치를 예정이다. 특강에 참여한 한 시민은 "김세환 선생에 대하여는 조금밖에 알지 못했는데, 나라를 위하여, 또 교육사업 등을 위하여 헌신한 분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라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또 다른 시민은 "이런 훌륭한 분이 수원 출신이라서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녀들에게 이 분의 업적을 알려 주어야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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