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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정조보묵’에 담긴 이야기
2025-08-13 14:38:16최종 업데이트 : 2025-08-13 14:38:14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경기도박물관 정조보묵

경기도박물관 정조보묵

 

(사)화성연구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의 보존과 회복에 관한 연구, 교육, 홍보 등을 통하여 축성 정신을 계승하고 지역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수원화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모여서 만든 순수 시민단체이다. 수원화성에 관심이 있는 시민을 대상으로 '수원화성 바로 알기' 강좌를 통해 많은 시민에게 수원화성 축성 당시 철학, 역사, 문화 등 수원화성의 가치를 알렸고, 문화유산 지킴이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화성연구회는 모니터링위원회, 시니어지킴이위원회, 답사위원회, 역사문화도시위원회, 문화유산교육위원회, 사진기록위원회, 학술위원회, 홍보위원회 등의 분과활동을 통해 수원화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모니터링 활동을 하고 있다.


경기도박물관 정조보묵

경기도박물관 정조보묵

 

모니터링위원회에서는 매월 수원화성을 구간별로 모니터링을 하면서 성벽과 건축물의 보존상태를 점검하고 수원화성의 가치를 공부하고 있다. 미공개 시설물인 팔달문, 남수문, 봉돈, 동북공심돈, 동포루, 북서포루, 서북공심돈 등의 건축물 내부도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모니터링 결과는 화성사업소에서 보존, 복원, 보수 등의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보고서로 만들어준다.

최근에는 폭염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여름철에는 수원시와 주변의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모니터링 활동을 대신한다. 박물관에서 정조시대의 역사와 유물을 통해 수원화성 축성 정신을 이해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성곽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경기도박물관, 전패 궐패

경기도박물관, 전패 궐패

 

화성연구회 8월 모니터링 활동은 지난 12일 경기도박물관을 방문했다. 경기도박물관은 1층에 기증유물실, 기획전시실, 선사실이 있다. 2층에는 고려실, 조선실이 있는데 조선실에는 수원과 관련된 유물인 화성성역의궤, 1807년에 화성유수를 역임한 홍명호 초상화가 전시되어있다. 홍명호는 화성유수 재임 당시에 지지대비의 전액(비석 위 가로로 쓴 전서체 글씨)을 쓰기도 했다.

조선실에는 정조대왕이 직접 짓고 글씨를 쓴 '정조보묵'이란 유물이 있다. 이 유물은 분명히 왕실 서고에 있었을 것인데 외부로 반출되어 민간인이 소장했던 것으로 추정되어 이동 경로가 궁금하기도 하다. 두루마리로 된 유물 뒤에 '공산무인수류화개(空山無人水流花開)', '영수(潁叟)', '몽중몽(夢中夢)' 등 3개의 인장이 찍혀있는데 2개의 주인은 알 수 없고, 1개만 알려져 있는데, '몽중몽'이 정학교(1832-1914)의 인장이다. 2개의 인장을 서첩과 화첩 등에서 찾아보았으나 아직 찾지 못했다. 


경기도박물관 2층 조선실

경기도박물관 2층 조선실

 

'정조보묵'은 정조대왕이 1795년 윤2월 9일부터 16일(양력 3월 29일 – 4월 5일)까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수원을 다녀간 후에 짓고 쓴 것이다. 내용은 1795년 3월 7일(양력 4월 25일)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 사당 육상궁,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 생모인 영빈 이씨 사당 선희궁,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 사당 연호궁을 참배하고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 옛터 인근의 세심대에 올라 당시의 감회를 쓴 것이다.

'정조보묵' 내용은 일성록과 홍재전서에도 실려 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신하들과 세심대에 오르는데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 꽃 구경을 하면서 한가롭게 즐기려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을 처음 세울 때 터를 잡았던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해 세심대에 오른 것이다. 


경기도박물관 2층 고려실의 청자

경기도박물관 2층 고려실의 청자

 

1735년 1월 21일은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태어난 날로 나라에는 큰 경사였다. 이때 암행어사로 유명한 영성군 박문수(1691-1756)는 여러 친구와 세심대에 올라 사도세자 탄생을 축하하는 시를 지었다. 정조대왕은 신하들과 세심대에 올라 박문수의 시를 읊으면서 아버지를 추억한 것이다.

'군가아소상운대 이백도홍만수개 여차풍광여차락 매년장취태평배(君歌我嘯上雲臺 李白桃紅萬樹開 如此風光如此樂 每年長醉太平杯) 그대는 노래하고 나는 휘파람 불며 필운대에 오르니 오얏꽃은 하얗고 복사꽃은 붉게 수많은 나무에 피었네. 이런 풍광을 이렇게 즐기면서 해마다 태평 술잔에 길이 취하리라.' 박문수의 시이다.

정조대왕은 윤2월 수원행차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지지대고개에서 박문수의 시에 차운한 시를 지었다. 세심대에서는 지지대고개에서 자신이 차운한 시를 읊고 신하들에게도 차운시를 지으라 했다. 


경기도박물관

경기도박물관

 

조선실에는 앞면에는 전(殿)자가 뒷면에는 궐(闕)자가 새겨진 패를 전시하고 있는데 1610년에 제작된 것이다. 평택 진위향교에서 사용한 것으로 전은 왕을 상징하고 궐은 황제를 상징한다. 이 패가 특이한 것은 앞면의 전자는 양각으로 되어있는데 뒷면의 궐자는 붓글씨로 썼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각 군현의 전패를 궐패로 변경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때 전패로 사용하던 것을 뒷면에 궐자를 써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패를 살펴본 한 회원은 "화성행궁 우화관은 원래 전패를 모시던 장소여서, 화성행궁 건물 중에서도 유일하게 남쪽을 향해 지어진 건물입니다. 건물 내부에는 전패를 북쪽에 모셨는데, 이는 왕이 있던 한양이 북쪽에 위치했기 때문입니다. 우화관 복원 시 전패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물건이 전시되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등에는 진품 전패가 여러 점 있으니, 이를 참고하거나 복제해서라도 전패를 우화관에 모시면 건물의 역사적 의미가 더 잘 드러날 것 같습니다."라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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