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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찬(進饌): 기억의 향연 - 혜경궁 홍씨를 기리다
혜경궁 진찬연, 비극을 넘어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치유의 연회
2025-10-10 12:08:02최종 업데이트 : 2025-10-10 12:03:15 작성자 : 시민기자   진성숙

진찬 하이라이트

진찬 하이라이트


엄혹한 한 시대를 살얼음판을 딛듯 살아간 여인, 혜경궁 홍씨. 비극의 세월을 관통하며 무한히 참고 인내해야 했던 한 슬기로운 여인의 이야기가 묵직하게 마음을 울린다.


혜경궁 홍씨는 오늘의 시선으로 보면 시아버지 영조는 끊임없이 아들을  의심하며 불안케 하는 인물이고, 남편 사도세자는 아내의 마음을 하루도 편히 해주지 않는 이상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마침내 스물일곱의 나이에 남편인 사도세자를 잃는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한다. 그 슬픔을 이겨내고 지성과 덕성으로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조선 최고의 임금으로 키워낸 지혜로운 여인이다. 아들이 왕위에 올라서도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마음 졸였으며, 끝내 자신보다 앞서 사랑하는 자식 정조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참척의 슬픔을 겪는다. 그 일생이 가뭇없이 사라지는 안개처럼 처연하고도 애틋하게 다가온다.


진찬 기억의 향연이 펼쳐지는 봉수당

진찬 기억의 향연이 펼쳐지는 봉수당


지난 10월 첫날 저녁, 수원화성문화제의 일환으로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혜경궁 홍씨의 진찬 무용극이 화려하게 열렸다. 밤이었지만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알맞은 쾌적한 날씨에, 하늘에는 반달이 진찬연을 내려다보며 구경하려는 듯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앙증맞게 떠 있었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헌경왕후, 1735~1815)를 위해 봉수당에서 연 진찬례. 이 잔치는 단순한 효심의 축제를 넘어,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남겨진 가족의 슬픔을 위로하고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며 태평성대를 기원한 정치적·역사적 제의였다. 전통의 품격에 현대적 미학을 더해 재창조한 혜경궁 홍씨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보는 '이머시브 아트 퍼포먼스'라고 한다. 이전에는 실제 진찬연을 재현하며 음식을 차려 잔칫상을 열었으나, 이날의 제전은 현대적인 레이저쇼를 가미한 45분간 펼쳐진 무용극이다.


모자의 대화

모자의 대화


레이저 조명으로 한껏 멋스러운 무용극은 그녀가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하는 시점부터 회상을 시작한다. 무용을 잘 모르는 필자도 몸동작 위주의 행위만으로 이야기의 행간이 읽히는 듯했다. 남녀 10명으로 구성된 무용단은 검무, 현대적인 춤 등 다양하고도 멋진 동작으로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침묵으로부터 기억을 불러내어 혜경궁 홍씨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정중하면서도 비감이 어린 곡조 속에 격조 있는 춤으로 펼쳐진다.
 

정조는 1795년 사도세자와 동갑인 어머니의 회갑을 맞아, 아버지 사도세자(고종때인 1899년  장조황제로 추존됨)도 염두에 두며 그녀의 회갑 잔치를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성대하게 연다.


관객들의 찬사와 환호성

관객들의 찬사와 환호성


"그간 어머니의 노고는 해와 달이 증명할 것이며, 제가 드리는 정성은 산과 강이 기억할 것입니다. 오늘 회갑을 맞으신 자유로운 그 얼굴에 기쁨이 머물고 수복과 건강이 오래도록 함께 하시기를 만복이 고이 내리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옵니다. 이 정성 어린 진찬은 선왕의 영령께서도 기뻐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련하였사옵니다. 부디 마음 편히 흥취를 누리시고 이 잔치를 오래도록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레이저 조명 속 신선한 춤의 제전이 신성한 기운을 자아낸다. 진찬: 찬란한 순간을 반추하며 태평성대를 원하고도 원하는 모자의 애틋한 해원을 그리는 장면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한다.


정조의 이 말씀에 혜경궁 홍씨가 화답한다.

"주상께서는 눈길 닿는 곳마다 정성을 기울이시니, 이 어미 감히 기쁘고도 송구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물자와 준비가 풍족하였으나 나라의 곳간을 쓰지 않으시고 궁 안의 힘으로 손수 마련하였다 들으니 주상의 지극한 효성과 깊은 마음이 더욱 빛나옵니다. 그러나 저의 두렵고 불안한 마음, 그리고 사무치는 그리움은 끝내 이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혜경궁 홍씨의  고뇌

혜경궁 홍씨의 고뇌


"내 아들아,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니 너는 마음 상하지 말고 부디 스스로를 아끼거라. 어미는 바란다. 너의 발길 닿는 곳마다 태평의 빛이 고이 깃들기를..."


혜경궁 홍씨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심쿵한 잔향을 남기며 오늘 우리 가슴 속에 난초처럼 아로새겨진다. 정조(1752~1800)가 승하한 후 15년을 더 산 혜경궁 홍씨는 창경궁 경춘전에서 1815년 생을 마감했다.

공연이 끝나고 경기도 광주에서 부부가 오신 신윤경님을 인터뷰하였다. "두 해 전에 진찬연을 보고 감명받아 올해 또 왔는데, 한 편의 사극을 보는 듯 멋지고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몰입도가 굉장히 좋았고 무용수들의 기량이 너무 뛰어나서 마치 그때 당시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선물 같은 멋진 공연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지금으로부터 230년 전, 1795년 진찬연. 그날 있었던 일을 혜경궁 홍씨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반추해보며 향수에 젖은 시간이었다. 필자는 음력 6월 18일이 혜경궁 홍씨의 생일과 같아, 본인이 회갑상을 받는다는 느낌으로 더 진심 어린 관람을 한 것 같다.


몇 시대를 앞서 살아간 지혜로운 인물들을 통해 살아가는 슬기를 배우며 오늘의 나를 위로하는 마음의 잔치상 같은 향연이었다. 혜경궁 홍씨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검무의 한 장면

검무의 한 장면

신풍루로 관객들이 속속 입장하고 있다

신풍루로 관객들이 속속 입장하고 있다


"당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 관계였습니다. 고통 어린 삶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효성과 지성으로 승화시켜 더 반듯한 나라를 세우고자 애쓴 당신들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이제는 번영하는 대한민국 후손들을 보며 편안히 안식하시길 바랍니다."


이날 약 300명이 관람하였으며, 이제는 외국인들도 많이 보이는 위대한 K-컬처 '진찬: 기억의 향연'은 10월 4일까지 매일 오후 7시 30분에 공연된다. 예매는 인터파크에서 가능하며, 간혹 현장에서도 표를 구할 수 있으니 가족·친지와 함께 많은 시민들의 참관을 바란다.

진성숙님의 네임카드

수원화성문화제, 진찬: 기억의 향연, 봉수당, 혜경궁 홍씨, 진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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